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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의 길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야훼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보고 있다가 만일 궤가 그 본 지역 길로 올라가서 벧세메스로 가면 이 큰 재앙은 그가 우리에게 내린 것이요 그렇지 아니하면 우리를 친 것이 그의 손이 아니요 우연히 당한 것인 줄 알리라 하니라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에 가두고 야훼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삼상 6:7~12)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목요일, 금요일 우리가 세계 선교대회를 가지면서 선교사 수련회와 함께 또 미스바기도회와 함께 큰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전 세계 699명의 선교사님들이 나아가서 지금 그곳에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하고, 1200개 교회 10만이 넘는 원주민들을 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45년 동안 선교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고 계신 것입니다.

이 선교는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오실 그날까지 힘써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하여 행해야 되는 것입니다. 복음이 들어가지 않는 저 북녘땅에도 복음이 증거되어야 하고 이슬람권에도 복음이 증거되어야 하고, 또 기독교를 탄압하는 힌두교 국가에도 복음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모든 선교지역이 부흥되게 하여 주시고, 북한의 문이 열려서 그곳에 교회가 서고, 북한의 2500만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 믿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도록 하나님께서 크게 우리의 삶 가운데, 교회 가운데, 선교 가운데 복을 주시도록 통성으로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찬송가 324장(통:360):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죄와 절망 가운데 있던 저희들을 구원하여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것 감사합니다. 한평생 이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주위에 아직도 예수님을 믿지 아니하고 절망에 찬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전 세계에 흩어져 복음을 전하는 모든 선교사님들의 선교사역에 복을 내려 주시고, 선교지에 큰 부흥이 있게 하여 주옵시고, 굳게 닫힌 북한의 문이 열려 북한의 2500만 동포들에게 복음이 증거되게 하여 주옵시고, 기독교를 박해하는 힌두교 국가나 중동 이슬람 국가에도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어 수많은 영혼이 주님께 회개하고 돌아 나오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사무엘상 6장 말씀 가지고 "십자가의 길",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길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해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길", "십자가의 길"

사람의 일생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런데 대부분 사람들이 자기중심적 사랑 이기주의적인 사랑을 합니다. 그래서 늘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갈등이 있고 문제가 생겨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사랑, 성숙한 사랑, 참사랑은 아낌없이 조건 없이 이해득실을 따지지 아니하고 주는 사랑입니다. 희생을 동반한 사랑입니다.

우리는 이 사랑을 예수님께로부터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죄와 절망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예수를 믿기만 하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먼저 주님이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아낌없이 다 주시고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무조건 사랑하셔서 이와 같은 놀라운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으므로, 이 구원의 은혜를 받고 우리가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이 자리에 오게 된 우리가 한평생 주님 은혜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고, 또 감사해야 될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을 주님 구원하여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한평생 감사의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이와 같은 희생적 사랑의 모습을 오늘 본문 말씀에서 벧세메스로 가는 소에게서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

오늘 이야기의 배경은 엘리 제사장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을 때입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이 처한 상황은 참 좋지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과 이웃 블레셋과의 전쟁이 일어났는데, 전투에서 늘 열세였고, 계속 밀리고 있었습니다. 블레셋이란 나라는 바로 이스라엘 옆에 붙어있어 가지고 호시탐탐 이스라엘을 노리고 또 쳐들어오고, 또 쳐들어오고, 또 쳐들어오고 그래서 이스라엘을 역사 가운데 계속 괴롭혔던 이웃 나라입니다.

이때도 블레셋이 쳐들어 왔는데, 이때 이스라엘 군인이 나가서 전투에 지고 또 졌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당시 엘리 제사장이 나이가 많아 영적 분별력이 무뎌지고,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망나니가 되어서, 죄를 짓는 데도 그것을 제지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홉니와 비느하스는 제사장직을 수행한다고 하면서 함부로 주님 앞에 드리는 제사물건에 손을 대고 음식을 탈취하고 성막에서 회중드는 여인들과 동침하는 악한 일을 행했습니다. 사람들이 모두가 와서 이야기합니다. "제사장이여, 제사장이여, 당신의 아들이 또 이런 잘못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엘리 제사장은 나이가 많아서 그 아들의 잘못들을 바로 잡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와 같이 영적으로 침체되 있는 상황에서, 전쟁에 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계속 전투에 지고 불리하니까, 이제 저들이 하나님의 언약궤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저들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하나님의 언약궤를 전쟁터에 갖고 나온 것입니다. 하나님께 기도하고 물어보지도 않고, 갖고 오면 이길 줄 알고 무조건 갖고 나왔다가, 그만 그 언약궤마저 빼앗겨 버리고 엘리 제사장의 두 아들이 그곳에서 죽고 말았습니다. 사무엘상 4장 11절은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자식이 잘못된 길로 가면, 부모가 야단을 치고 바로잡듯이,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는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가면 몇 번 경고를 주시다가 돌이키지 않으면, 사랑의 채찍으로 때리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가 죄짓고 잘못해서 매 맞을 때, "주님 잘못했습니다." 빨리 회개하고 돌아나오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이 언약궤를 빼앗아간 블레셋에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언약궤를 빼앗아가 그들이 섬기는 다곤신의 그 신전에 두었는데, 아침에 가서 문을 열어 보니, 다곤 신상이 넘어져 있었습니다. 엎어져 있어요. 그래서 놀래서 신상을 바로 세워놓고 다시 저들이 그날 밤을 지내는데, 다음 날 아침 와보니까 다곤신의 목과 팔이 부러져가지고 그 앞에 거꾸러져 있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이 언약궤가 있는 그 온 지역에 악성 종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마다 악성 종기가, 이 종양이 막 생겨나는데, 고통 가운데 견딜 수가 없어서 사람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왜 우리에게 이런 재앙이 왔느냐? 전에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는데, 저 언약궤가 이스라엘에서 우리 아스돗 지역으로 온 다음부터 이런 일이 일어났으니, 빨리 이 언약궤를 딴 데로 옮기자."

그래서 언약궤를 가드라고 하는 지역으로 옮겼는데, 또 가드에서도 악성 종기가 창궐해서 모든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되었습니다. "안 되겠다, 이것을 저 에그론으로 보내자." 에그론 사람들이 왜 우리한테 이걸 가져오냐고, 우린 안 받겠다고.

그래서 블레셋 방백들이 모여서 의논을 합니다. "어떻게 할까? 이것을, 우리가 괜히 빼앗아 가지고, 괜히 우리에게 큰 피해가 주어지게 됐으니 이제 돌려보내자. 근데 돌려보낼 때 과연 이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 그들의 신께로부터 온 것인지 아닌지 우리가 좀 살펴보기 위해서, 갓 새끼를 낳아서 젖을 먹이는 어미 소 둘을 가져와다가 수레에 매어서 언약궤를 실어서 한번 보내보자. 만약 이 어미 소들이 똑바로 제 길을 간다면, 그들의 신이 내린 벌이요, 그렇지 않다면 우연히 오는 벌일 것이다." 이렇게 의논했습니다. 사무엘상 6장 7절, 8절입니다.

그러므로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야훼의 궤를 가져다가 수레에 싣고 속건제로 드릴 금으로 만든 물건들은 상자에 담아 궤 곁에 두고 그것을 보내어 가게 하고

그래서 이 두 마리의 암소가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그 다음에 그들이 금으로 만든 재물을 실은 것을 싣고 벧세메스로 올라갑니다.

벧세메스로 가는 소

둘째로, 벧세메스로 가는 소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 원합니다. 6장 11절, 12절은 설명합니다.

야훼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언약궤를 싣고 가는 이 어미소들이 자기가 젖먹이는 송아지들을 떼어놨는데 얼마나 안타까웠겠습니까? 짐승이나 사람이나 자식을 사랑하는 것은 똑같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울면서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똑바로 벧세메스를 향해 올라갔습니다. 벧세메스라는 말은 '베히트'와 '세메스'라는 말이 합쳐진 말인데 '베히트'라는 말은 집입니다. '세메스'라고 하는 것은 태양을 말합니다. 태양의 집을 말하는 것입니다. 베들레헴은 베트, 레헴 떡의 집이란 뜻이고, 그런데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라는 말인데 이것은 의의 태양이 되신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이 벧세메스로 가는 소가 주님 계신 곳을 바라보고 똑바로 나아갔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주님을 섬길 때에 우리를 붙잡는 것들이 있습니다. 주님을 섬기는 데 걸림돌이 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과감하게 뿌리치고 나아가야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물질이 내게 장애물이 될 수가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나의 지위가 명예나 권세가 주님을 섬기는데 걸림돌이 될 수가 있습니다. 주일날, 하필이면 주일날 예배드려야 하는데 거래처 사장이 와서 "우리 다음 거래 성사를 위해서 한번 골프를 치자."고 합니다. 그러면 망설임이 생기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려야 하느냐? 예배를 빠지고 골프를 치러가야 하느냐? 그런데 믿음의 사람들은 과감하게 거래 성사는 주님께 맡기고 예배드리러 나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 잘 믿는 것을 알고 주일날 일부러 직장에 자꾸 불러냅니다. 없던 일도 만들어 시키려고 합니다. 처음에 "저는 이렇게 못하겠습니다. 저는 주일날 교회에 나가서 주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에 내가 다른 날 더 열심히 과외로 시간을 내서 하겠습니다." 해야 하는데, 윗사람이 시키니깐 그냥 할 수 없이 끌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벧세메스로 가는 소보다도 못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를 붙잡는 것이 있어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면 과감하게 뿌리치고 그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가야하는 것입니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우리가 선택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야할 것이냐? 아니면 나의 유익을 위한 길을 가야할 것이냐? 반드시 주님이 원하는 길을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의의 태양이 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고 나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시선을 딱 예수님께 고정시키고 주님만 바라보고 나갈 때, 주님께서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12장 2절은 말씀합니다.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NIV 성경에는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자"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Let us fix our eyes on Jesus. 예수님께 초점을 맞추자. 여러분,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님께 딱 초점을 맞추고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해나가기를 바랍니다. 옆을 바라보고 한눈을 팔다가 우리가 실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나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늘 기도하고 찬양하며 감사하며 말씀을 묵상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도전이 다가오고 어려움이 다가올 때 기도하십시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하고 그럴 때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할 바를 알지 못할 때 성경을 묵상하면서 주님의 가르침을 깨닫고, 믿음으로 전진해나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 나의 발걸음을 인도하여 주셔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그 길을 가기 원합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그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찬송가 324장(통:360):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주님이 원하시는 길, 주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번제로 드려진 소

벧세메스로 가는 소는 그 곳에서 희생되어 번제로 드려집니다. 번제로 드려지는 소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로 원합니다. 6장 10절~12절입니다.

그 사람들이 그같이 하여 젖 나는 소 둘을 끌어다가 수레를 메우고 송아지들은 집 에 가두고 야훼의 궤와 및 금 쥐와 그들의 독종의 형상을 담은 상자를 수레 위에 실으니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 치지 아니하였고 블레셋 방백들은 벧세메스 경계선까지 따라 가니라

이 암소들은 한 번도 멍에를 메본 경험이 없습니다. 처음으로 멍에를 메고 무거운 수레를 싣고 각종 또 금으로 만든 제물을 신고 가니깐 얼마나 얼마나 어깨가 아팠겠습니까. 여러분! 때때로 주님을 섬길 때 우리에게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핍박을 당하기도 하고, 또 주님을 섬기기 위해서 아침 일찍부터 나와서 봉사하다보니까 몸도 지치고 피곤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면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그 길을 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을 봉사하는 것이 기쁨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 기쁨이고, 감사고 감격이 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한 번도 메어보지 않은 멍에를 메고 무엇보다 갓 태어난 송아지의 울음소리를 뒤로 하고 갔다는 것은 얼마나 큰 고통이고 어려움인지 모릅니다. 아이가 태어난 다음 직장 다니는 어머니들이 아침에 아기 울음소리 듣고 직장을 가는 것이 그렇게 힘들다고 하는데, 그래도 직장 마치고 돌아오면 되니깐 문제가 없는데, 이 어미소들은 자기 송아지들과 영원한 이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울며 울며 뒤를 돌아보지 아니하고 똑바로 그 길을 올라갔던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이 원하시는 길이라고 하면 내게 어려움이 다가오고 고통이 다가오고 또 나를 붙잡는 것이 있어도 절대로 머뭇거리지 말고 똑바로 똑바로 그 길을 올라가면 하나님의 큰 은혜와 상급과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소 둘은 암소들은 누가 고삐를 끄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진정한 헌신과 순종은 자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나와서 봉사해라, 봉사해라 해서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기뻐서 감사가 솟아 나와서 할 때 그것이 진정한 봉사이고, 기쁨으로 드리는 참된 헌신인 것입니다. 누가 이 소들을 끌고 가지 않았는데도 소들은 처음으로 멍에를 메고 수레를 끌면서 똑바로 똑바로 그 길을 올라갑니다.

그리고 그들이 언약궤를 멨습니다. 언약궤를 끌고 가는데 이 언약궤는 그 안에 십계명이 들은 하나님의 법궤인데 이것은 우리 모두가 꼭 주님을 따를 때 들고 가야 할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십자가는 생명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에게 고난이 되기도 합니다. 십자기의 길이 넓고 많은 사람들이 우르르 가는 길이 아니라 좁은 길입니다. 험한 길입니다. 예수 믿는다고 핍박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불이익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때때로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내가 손해 볼 때도 있고, 억울한 일을 당할 때도 있지만, 그러나 주님을 바라보고 십자가를 지고 나갈 때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무리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8장 34절에 이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러분! 주님을 섬기는 일이 쉬운 일만은 아닙니다. 대대로 미신을 섬기는 집에 시집을 가가지고 주일마다 교회를 나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미신을 섬기는 그러한 직장에 가서 혼자 믿음을 지킨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믿음을 지키며 꿋꿋히 그 길을 가게 될 때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여시고 복을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 소들은 가는 길이 자기가 죽음의 길인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 교회에 크게 축산업을 하고 계신 장로님이 계신데 물어보면 소들이 도살장에 가면 벌써 그 차에 실을 때부터 죽으러 가는 것을 안데요. 안 타려고 몸부림치고 난리를 친답니다. 아니 이 차가 산에 가서 방목해서 풀을 뜯어 먹으러 가는지, 도살장으로 가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런데 도살장으로 가는 그 트럭을 그렇게 한사코 안 가려고 그러고, 도살장에 입구에 오면 몸부림을 치고, 발을 막 앞굽을 뒷굽을 해가지고 몇 사람이 겨우겨우 끌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이 짐승들도 예지의 능력이 있는 것 같아요. 미리 자기가 죽을 운명인 것을 아는 것 같아요. 이 소들이 자기가 죽을 것을 알고 가서 자기가 끌고 간 수레가 그 제단이 되어서 거기에 얹혀져서 번제로 드려집니다. 6장 14절은 설명합니다.

수레가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이르러 선지라 무리가 수레의 나무를 패고 그 암소들을 번제물로 야훼께 드리고

이 번제, 두 암소를 거기서 죽여, 피를 흘려 죽이고 그 메고 왔던 수레를 장작으로 제단을 만들어가지고 그 위에 얹어서 불로 태워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희생입니다. 드리는 것입니다. 여러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아까워하지 마십시오. 드리면 드릴수록 더 많이 주실 것입니다. 시간을 드리고 물질을 드리고 내 재능을 드리고 내 정성을 드리면 하나님의 큰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믿음의 기초가 없는 사람에게는 드리는 것에 인색합니다. 시간을 드리기도 아까워하고 물질을 드리기도 아까워하고 재능을 드리는 것도 아까워합니다. 그러나 드리면 드릴수록 더 큰 은혜가 임하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의 법칙입니다. 로마서 12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난 고초를 다 당하시고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 언덕에 올라가셔서 그곳에서 달려 죽으셨습니다. 얼마나 그 사면이 가파르고 또 높고 십자가가 무거운지 올라가시다가 여러 번이나 쓰러져서 그 쓰러진 곳마다 지금 가면 표시가 되어 있고 비아 돌로로사라고 그 순례자들이 그곳을 순례합니다. 너무 힘들어 자꾸 쓰러지시니깐 그 옆에 멀뚱히 서 있던 키 큰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너 좀 이리와 봐" 해서 대신 십자가를 지워서 올라가게 했는데, 예수님 대신 이 십자가를 진 이 구레네 시몬도 그 자손이 모두 크게 복을 받았던 것입니다. 우리가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때로 힘들고 어려워도 묵묵히 이 소처럼 울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똑바로 갔던 그 모습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국 6.25 전쟁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한 아이가 미국에서 온 종군기자에게 발견되어서 전쟁 후에 집에 입양이 되었습니다. 이 아이는 자라면서 사춘기를 겪을 때, 자기의 외모가 다른 미국인들과 다른 것을 보면서 늘 열등의식에 좌절했습니다. 또 아이들이 머리가 새까맣고 눈이 작다고 놀리니까 그것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이가 삐뚤어졌습니다. 나쁜 친구들을 사귀고 밤마다 술을 먹고 와서 난리를 치고 그것을 지켜보던 아버지가 어느 날 아들을 불렀습니다. "아들아, 아들이 이리 좀 와라." 그 아이가 말합니다. "내가 전쟁터에서 어떤 사람이 어떤 부모가 나를 버렸기에 아버지가 저를 주워오신 것이죠? 나 우리 부모를 원망합니다. 아무리 전쟁 중이라 해도 나를 이렇게 내동댕이 칠 수가 있습니까?" 그러니깐 그 아버지가 말합니다. "너는 그렇게 발견된 게 아니다. 한참 UN 연합군이 미군을 중심으로 해서 인천상륙작전을 통해 죽 북쪽으로 올라가서 압록강까지 도달했을 때, 갑자기 중공군이 수십만의 군대를 이끌고 내려왔다. 그래서 1951년 1월 4일 1.4 후퇴가 되어서 모든 병력들이 철수를 하는데 철수하는 중에 어느 다리를 건너가는데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나서 내가 차를 세웠다. 그래서 아기 울음소리가 나는 다리 밑에 내려가 보니깐 왠 한 여인이 거기서 속옷 차림으로 아이를 붙들고 꽁꽁 얼어 죽어있는데 아이는 죽지 않고 응애응애 하고 울고 있었어. 보니깐 어머니가 추우니깐 아이에게 옷을 다 싸서 입히고 얼지 말라고 부둥켜 안고 체온으로 아이의 생명을 살리려고 하다가 어머니는 죽고 너는 살았단다. 그래서 내가 너를 데려와서 전쟁 후에 입양을 한거다."

이 아이가 아무 소리를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더니 자기 방으로 돌아갔습니다. 그 날부터 이 아이는 술을 끊고 열심히 공부해서 의과대학에 가서 흉부외과 의사가 되었고 군의관으로 한국에 신청을 해서 한국 미 8군의 군의관으로 봉사하면서 아버지가 말해주는 어머니 산소를 찾았습니다. 추운 날 어머니 산소를 가보니깐 초라하고 비석도 제대로 세워져 있지 않고 저 한 귀퉁이에 있는 어머니 산소를 보니 너무나 마음이 찢어질 듯 아팠습니다. 달려가서 어머니 산소를 부둥켜 안고 울면서 "어머니, 어머니" 그러더니 그가 입고 있던 코트를 벗어 그 무덤에 덮습니다. 그리고 군복도 벗어 그 위에 덮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그날 몹시 추우셨죠?"

그 어머니의 위대한 사랑이 이 아들을 살린 것입니다. 예수님의 위대한 사랑이 우리 모두를 살린 것입니다. 한평생 이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사랑의 빚을 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은혜로 받고도 감사하지 아니하고 사소한 일에 원망과 불평하고 내 유익을 위해서 주님의 곁을 떠나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소홀히 했던 것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다시는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시는 길을 가지 않게 하여 주시고 어미 소가 울면서도 똑바로 맡겨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그 길을 갔던 것처럼 우리 모두가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바른길 가게 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게 하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한 길을 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올리옵나이다. 아멘.

 

기사입력 : 2019.06.02. pm 14:0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