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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맡긴 심판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요한복음 5장 26~29절)

성경은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씀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을 가진 존재입니다. 이 불멸의 영혼이 육체라는 흙으로 된 집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육체에서 영혼이 떠나면 죽음이 다가옵니다. 그러므로 죽은 사람은 육체에서 영혼이 떠난 사람인 것입니다.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다른 점은 죽은 사람은 사지백체가 산 사람과 같지만 죽은 사람은 모든 일에 반응이 없고 아무리 고함을 쳐도 대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무덤에 가서 죽은 사람을 한 번 불러 보십시오. 죽은 사람이 대답을 어디 합니까? 죽은 사람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것입니다.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은 사람이 살 곳이 못되는 곳이었습니다. 집 앞에 뒤로 공동묘지가 있었고 집이라고는 우리 집 한 채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서 일꾼들 네 가정하고 살았지요. 나는 친구가 없으니까 혼자 놀면서 공동묘지만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고향하면 떠오르는 것은 낮이면 “어화홍 어화홍 어화낭차 어화홍 이제 가면 언제 오나 어화흥 어화흥”하며 곡하는 소리와 남편 잃은 여인들이 묘를 쥐어뜯으면서 우는 모습, 그리고 밤이면 여우들이 “캥캥”하면서 무덤가를 돌아다니며 흙을 파헤치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적막하고 음산한 공동묘지의 공동묘지는 그야말로 신들의 집합장소로 보였고 두려움 그 자체였습니다.

나는 무덤에 가서 태어나 그 곳을 놀이터로 삼고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다른 아이들이 가지지 못하는 질문들을 품었습니다. “산다는 게 무엇인가?” “죽는다는 건 또 뭔가?” 이런 질문들이 일생을 따라다녔지요. 그때 나는 비록 어린 아이였지만 분명히 죽음이라는 불청객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내가 내렸던 결론은 “인생은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로구나. 사람은 매일매일 사는 게 아니라 죽어가는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또 질문했던 것은 “죽으면 다 끝나는 것인가? 죽은 다음에는 아무것도 없는 것인가?” 그런 생각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경을 보니까 사람은 영적인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죽는다고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죽는다는 것은 말은 없어진다는 말과 다릅니다. 이 세상에서는 아무것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종이를 불에 태우면 재로 남아 있을 뿐, 이 우주에서 아주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1. 죄로 인한 인간의 실상

사람이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죽으면 다른 사람과의 대화가 그칠 뿐, 그 사람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조금 전까지 대화하던 사람이지만 일단 죽으면 대화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죽음은 대화의 단절을 뜻합니다. 죽은 사람은 아무리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영이 죽은 사람은 하나님이 불러도 대답이 없습니다.

원래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영적인 존재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말미암아 그 영이 죽은 것입니다. 그리고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도 모두가 다 영이 죽은 사람들입니다. 영이 죽은 사람도 하나님이 불러도 대답하지 않습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그들은 복음을 듣고도 반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 마음에 은혜가 되지 않고 성령의 감동하심에 대한 반응도 없고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어디서 와서 무엇 때문에 살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고 길을 잃어버린 채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 방황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살고 있습니까?”라고 물으면, “그저 살지요.”라고 대답합니다. “당신은 죽은 뒤에 희망이 있어요?”라고 물으면 “죽은 뒤에 희망이요? 그런 것 없어요.”라고 대답하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잘 산다고 할지라도 그런 눈에는 보이는 환경은 잠시 잠깐 후면 다 사라지고 맙니다.

영이 떠나면 아무리 화려한 환경이나 생활도 그림의 떡에 불과한 것입니다. 전도서 5장 15절에 “그가 모태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가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자기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아도 죽을 때는 하나도 가져갈 수 없습니다. 부귀, 명예, 권세, 모든 것이 헛된 것입니다. 성경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이 범죄한 후로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죄인인 것입니다.

2.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죽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어서 하나님을 몰라봐도 영은 멸하지 않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위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에서 어린 양을 잡아 가죽을 벗겨 아담과 하와에게 옷을 만들어 입힌 것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속죄하심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 죄를 씻기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이신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고 죽임 당하실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12절에 그리스도께서는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를 위한 영원한 속죄제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속죄제는 죄를 속하기 위해 드리는 제사인데 예수님께서 자신의 피로 하나님께 속죄제를 드리신 것입니다. 히브리서 9장 22절에 “율법을 따라 거의 모든 물건이 피로써 정결하게 되나니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아무리 우리가 윤리와 도덕적인 행위를 가지고 산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아름다운 종교와 의식을 행한다 할지라도 성경은 피 흘림이 없은즉 죄 사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우리 스스로는 피를 흘리면 죽어버리고 말아요. 그러므로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피를 흘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여러분과 나를 위한 것입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모두 다 죄 값으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질 수밖에 없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이 오셔서 죄 있는 여러분과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이 얼마나 절박했던지 하나님이여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몸부림을 쳤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라고 외칠 때 우리의 모든 죄를 주님께서 도말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님을 믿는 여러분은 더 이상 아담의 자손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하기를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라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에 이제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제 우리에게 무서운 심판자가 아니라, 자비로운 아버지로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청산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더 이상 심판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제 재판석에서 내려와서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무서운 재판장이 아니라 친아버지가 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믿어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면 영혼이 잘되었기 때문에 범사에도 잘되고 강건하게 됩니다. 요한삼서 1장 2절에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우리 영혼이 잘되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삶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죽었던 영혼이 살아나고 변화되었는데 어떻게 육신의 변화가 따라오지 않겠습니까? 당연히 육체도 건강하고 환경도 바뀌는 것입니다. 집 주인이 바뀌면 집도 바뀝니다. 주인이 술주정뱅이면 집의 서까래까지 내려앉지만 그 집에 착실하고 근면한 사람이 주인으로 들어오면 그 집이 반질반질하고 윤기가 나고 생명이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사람의 주인인 영혼이 변화를 받으면 우리의 환경도 자연히 변화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모두 예수님을 알고 믿고 영혼이 살아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3. 우리를 위해 예비된 천국

여러분, 사람은 누구나 죽지만 죽은 후에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무신론자들은 인간은 불멸의 영혼도 없고 하나님도 계시지 않고 천국도 없다고 주장합니다. 인간의 생명은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고 만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또 불가지론자들은 영혼 불멸도 신도 천국도 지옥도 인간의 힘으로는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예수님 옆에 매달린 강도가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눅 23:43) 즉 “바로 이 시간에 너는 나와 함께 죽는다. 그러나 너는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께 고백 안한 사람은 어디로 갔겠습니까? 낙원의 반대는 지옥이 아니겠습니까? 지옥으로 떨어지고 만 것입니다. 사후 세계에는 믿는 자는 낙원에 가고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사후 세계의 실상을 분명히 알고 살아야 합니다. 죽으면 그뿐이지, 뭐 죽고 난 다음 뭐 있겠느냐? 그러는데, 천만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 중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도시에 한 부자가 있는데 그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며 살았습니다. 자색 옷이라는 것은 높은 사람이 입는 옷이요, 베옷은 부자들이 입는 옷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권력도 있고 많은 재물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날마다 호화로운 잔치를 벌이고 날마다 즐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 집 대문 밖에는 나사로라는 거지가 있었습니다. 몸이 병이 들어서 일도 못하고 대문 앞에 드러누워 있으면서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가지고 연명 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거지 나사로도 죽고 부자도 죽었습니다. 거지 나사로가 죽자 종들이 와서 가마니 떼기에 둘둘 말아서 공동묘지에 던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가 그 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천사들이 와서 그를 받들어서 아브라함의 품, 낙원으로 데려갔다고 말합니다. 나사로는 이 땅에 살 동안 몸이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그러한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경외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가 죽었을 때, 사람들은 호화로운 장례를 치렀습니다. 상여를 아름답게 꾸미고 수많은 종들이 왔다 갔다 하고 아름다운 묘지를 만들어서 비석을 세웠지만 성경은 그가 그 묘지에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음부에 떨어져서 불꽃 가운데서 고통을 당한다고 말한 것입니다. 부자는 불꽃 가운데 고통당하면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여러분, 얼마나 고통스럽기에 냉수 한 방울을 원합니까? 한 바가지를 원하지 않고 한 방울을 원한 것입니다.

그만큼 음부는 괴롭다는 것입니다. 음부는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입니다. 생명의 빛이 사라진 곳이므로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모릅니다.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너무나 괴로운데도 죽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죽을 수 있으면 없어지니까 좋지만 영혼은 죽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영혼이 죽을 수 있는 육체 속에 살고 있는데 이 영혼이 지옥에 떨어지면 지옥의 고통 가운데서 몸부림을 치지만 죽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절대로 지옥은 가서는 안 됩니다. 불꽃 가운데서 소금 치듯 하는 고통을 당하는 곳이 지옥입니다. 그곳에는 생명 대신 사망이 있고 기쁨과 즐거움 대신 슬픔과 고통이 있으며 다정한 교제 대신 끝없는 고독이 있는 곳입니다. 모든 부정적인 세력이 꽉 들어차 있고 하나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게는 천국이 예비 되어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장 17~18절에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우리가 천당 올라가면 앞서거니 뒤서거니 가서 한 자리에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이고, 장로님 오셨네요? 아이고, 권사님, 왔구나. 다행으로. 아이고, 구역장님은 오셨네요? 아이구, 그 사람은 왜 못 왔노? 교회 왔다 갔다 하더니만 그만 못 왔구나.” 엉터리는 못 가고 진짜는 다 올라가는 것입니다. 거기에서 부모, 형제, 자매들을 다 만나는 것입니다.

가족을 구원하라고 하는 이유는 천국에 올라가고 난 다음에 내 부모가 못 올라왔으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내 형제가 자매가 못 올라오고 음부에 떨어진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얼마나 고통스럽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땅에 살 동안에 열심히 부모, 형제, 자매, 친척들을 주께로 인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인생은 하나님께로 와서 이 땅에 살다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땅의 부귀, 영화, 공명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내가 과거의 시간을 돌아보면 부귀도 공명도 영화도 명예도 다 바람결에 지나가는 것밖에 없고 오직 남은 것 하나, 예수님만 남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이 없으면 인생은 껍데기입니다. 텅 빈 껍데기로서 인생을 방황하면서 살다가 불안과 공포 중에서 죽음으로 떨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모든 것은 다 떠나갔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날 위해서 십자가에 죽고 날 위해서 죽었다가 부활하시고 날 위해서 천국을 예비해 놓았으니 예수님 한 분이 마음속에 날이 갈수록 더 보배롭게 되고 더 아름답게 되고 감사하고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없는 인생은 살았다 하나 죽은 인생이요, 예수 있는 인생은 “죽어도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요 11:2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활의 날에 우리는 새 몸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입혀 주신 새 몸을 입습니다. 그 때에 새 하늘과 새 땅을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귀를 막고 하나님께 나아오지 않으면 심판을 면할 도리가 없습니다. 사느냐 죽느냐, 구원이냐 심판이냐, 천국이냐 지옥이냐가 여러분의 선택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요 3:20)고 말씀하십니다.

아직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지 않으신 분은 오늘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분도 매일매일 주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 안에 굳세게 서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살다가 천국에서 우리 다 같이 만나십시다. 할렐루야! 아멘.

<기도>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아버지 하나님! 사람의 죽고 사는 것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이 땅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는 자는 천국에서 영생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지옥의 유황불에서 영원히 죽지도 못하고 고통받게 된다는 것을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주님 계신 천국에 가기까지 인도해 주시고 우리와 동행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연약하오니 늘 도우시고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9.05.12. pm 14:54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