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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에델과 어니스트>


평범하지만 빛나는 부모님의 아름다운 인생

1928년 런던. 성실한 우유 배달부 어니스트는 날마다 가정부 에델과 마주쳤다. 매일의 인사가 두 청춘 남녀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고 사랑에 빠지게 했으며 둘은 마침내 결혼에 이르렀다. 가난하지만 성실했던 두 사람은 집 한 칸을 렌트하여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침대 하나 덩그러니 놓인 공간에서 둘은 ‘작고 확실한 행복’을 가꾸어가기 시작했다. 안과 밖의 풍경을 나누기 위해 커튼을 드리웠고 작은 옷장 하나를 들여놓았으며 중고 소파를 얻어 커버를 씌웠다. 두 사람의 공간은 두 사람의 향기와 색깔을 입으며 따뜻하고 아늑한 ‘홈’으로 바뀌어갔다.

 에델은 집 안팎을 쓸고 닦고 꽃을 심었으며 어니스트는 날마다 우유를 배달하며 돈을 벌었다. 두 사람이 성실하게 살아가는 동안 문명은 더욱 발전하고 어느새 그들의 공간에도 전화와 텔레비전과 자동차가 생겼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아이가 태어났고 뜻하지 않은 전쟁이 일어났으며 전쟁 속에서 아이를 지키기 위해 생이별을 견디기도 했다. 아이는 자라서 학교에 가고 엄마가 바라지 않았으나 화가가 되었고 참한 여인을 만나 결혼하였다. 그 사이 두 사람은 늙어가고 급기야 에델은 치매로 어니스트의 존재조차 까맣게 망각한 채 가족들을 떠나갔다. 홀로 남은 아버지도 엄마 곁으로 급히 떠나갔다.

 화가인 아들은 성실한 큰 나무처럼 튼튼하게 살다 가신 부모님을 기억하였고 그림으로 그려 한편의 이야기를 만들었다. 아들은 어머니와 아버지가 평범하여 더 아름다운 사람들이었음을, 그래서 두 사람이 살았던 시간을 기억함으로써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무럭무럭 살아내었음을 고백했다. 아들이 추억한 부모님의 이야기, 바로 영화 <에델과 어니스트>(로저 메인우드 감독, 짐 브로드벤트, 브렌다 블레신 주연)이다.

 칠순에 이른 어느 장로님이 들려준 이야기를 기억한다. 장로님의 어머니는 “내가 살아온 이야기를 책으로 쓰면 한두 권으로도 모자랄 거다”라고 자주 말씀하셨다. 장로님은 어머니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듣고 넘겼다. 그러다가 퇴직한 뒤 여유를 가지면서 문득 어머니의 말씀이 떠올랐다. 어느 날 대학노트 몇 권을 사서 어머니를 찾아뵈었다. “어머니, 이 노트에 어머니께서 살아오신 이야기를 한번 적어보셔요.” 그때 어머니 연세는 아흔이 넘어 무엇을 기록할 기력조차 없어 보였으나 어머니는 의외로 반색하셨다. “왜 이런 걸 이제 말하누. 그동안 써 온 걸 버린 게 얼마나 많은데…. 진작 말했으면 그런 걸 잘 모아두었을 거 아니냐.”

 그날 후로 어머니는 집필에 몰두하셨다. 쓰다가 기운이 떨어지면 몸져눕기도 했으나 어머니의 집필의지는 날이 갈수록 굳세어졌다. 저토록 많은 이야기를 쌓아두고 어떻게 참고 계셨을까 의아했다. 장로님은 어머니가 쓴 글을 타이핑하고 수정하여 컴퓨터에 저장했다. 글을 옮기다 이해가 어려운 부분은 다시 질문하고 보충했다. 때로는 어머니의 삶을 나름 해석도 했다. 그러는 동안 예전에 알지 못한 어머니의 삶에 관심이 깊어졌다. 누구보다 자식들에게 떳떳하게 살아온 어머니의 삶이 얼마나 빛나던지 당신의 열정과 인내 없이 오늘의 나는 없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고 아들의 삶을 응원해온 어머니의 은혜가 새록새록 느껴지기 시작했다. 어머니와 나누는 이야기들이 깊어졌고 예전처럼 겉돌지 않았다. 그런 변화가 그로서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신비했다.

 어머니의 글쓰기는 2년을 넘겨 완성되었고 A4용지 150매나 되는 분량을 가지고 그는 직접 편집을 하여 그리 화려하지 않은 책 몇 권을 제본했다. 그 책을 어머니께 드리던 날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선물을 받는 표정으로 기뻐했다. 장로님은 “세상에서 내가 어머니께 한 일 가운데 가장 잘한 일 하나를 꼽으라면 어머니가 자서전을 쓸 수 있도록 권유하고 응원한 일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렇게 고백했다. “한 생애를 성실하게 살아오신 어머니의 세월과 어머니의 눈물을 알게 되면서 비로소 어른이 되어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우리는 부모님의 삶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간다. 때로는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그분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알았을 때 가져다줄 신비한 경험마저 함께 포기하고 사는건 아닐까.

 

기사입력 : 2019.05.05. am 10:33 (입력)
박명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