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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오빠들을 죽인 사람들까지 용서하는 믿음의 삶

손양원 목사의 딸 손동희 권사의 참된 사랑

사랑의 원자탄이라고 불리는 손양원 목사님 이야기는 많은 분들이 아실 겁니다. 일제 강점기에는 신사참배를 반대해 옥고를 치르셨고, 순천의 나환자시설 애양원에서 목회를 하다 1948년 혼란스러운 해방정국에서 벌어진 군사반란 사건 와중에 두 아들을 잃었는데 아들을 숨지게 한 같은 또래의 학생을 양자로 삼고 사랑을 베푼 분이십니다. 손 목사님은 결국 6.25전쟁 때 인민군에 총살당해 순교하셨습니다.

 손 목사님에게는 모두 5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그 중 장녀이면서 하루아침에 두 오빠를 잃은 동희는 아버지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가장 사랑하고 따랐던 오빠를 하루아침에 공산주의자의 손에 잃은 것만 해도 커다란 충격인데 오빠를 죽인 사람을 자신의 집에 데려와 오빠라고 부르라니요. 거기다 아버지는 아들을 죽인 공산주의자들을 용서했지만 그들은 끝내 아버지까지 죽였습니다.

 동희는 아버지만 아니라 하나님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니, 과연 하나님이 계시기는 한 것일까, 의문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교회를 나가기는 했지만 예배당 장의자에 앉아만 있었을 뿐 그의 마음은 닫혀있었습니다. 2008년 무렵 제가 만난 손동희 권사는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습니다.

 “내 가슴은 돌이 되었고 내 입술에선 하나님을 원망하는 말만 나왔습니다. 두 오빠의 죽음이 입술의 슬픔이었다면, 아버지의 죽음은 영혼의 독이 되어 내 온몸에 퍼졌습니다.”

 손 목사에게 이끌려 양자가 된 안 모 군의 인생도 평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목사가 되기 위해 부산의 신학교에 진학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손가락질 했습니다. ‘손 목사도 그가 죽였다’는 헛소문까지 있었습니다. 그는 끝내 신학교를 그만두고 교회와 인연을 끊어버렸습니다.

 평생 죄책감에 시달렸던 안 군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다시 하나님의 손을 잡았습니다. 그는 편도선암으로 죽음을 기다리던 1979년 동희를 찾아갔습니다. 간신히 그를 찾아간 안 군은 눈물을 쏟았습니다.

 “동희야. 나 지금 집으로 돌아가면 곧 하늘나라로 간다. 내 죽어서 천당에 가면 네 두 오빠에게 무릎 꿇고 사죄하겠다.”

 동희도 그 순간에는 안 군이 불쌍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를 붙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그 것이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는 죽기 전 아들 경선에게 “신학교에 가서 주의 종이 되거라”는 유언을 남겼습니다. 신학생이 된 아들은 뒤늦게 아버지의 과거를 알게 됐습니다. 그 역시 아버지를 원망하며 죄책감에 시달리다 급성폐렴에 걸렸습니다. 한쪽 폐를 잘라내는 큰 수술을 받고 병실에 누워 망연자실해 있던 그에게 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모든 사람이 손가락질해도 나는 네 아버지를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했다. 다른 사람이 너를 다 욕해도 넌 내가 십자가에서 피 값으로 산 아들이다.”

 그는 다시 신학교로 돌아가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2004년, 그는 용기를 내어 국민일보에 자신의 이야기를 공개했습니다. 순교자의 양아들이었던 아버지는 죄책감에 시달리며 살았지만 자신이 목사가 되어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애양원 교회에서 그를 초청했습니다. 처음으로 그곳을 찾아 설교를 하기 위해 강단에 섰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과 손 목사가 겪었던 고통이 물밀 듯 그에게 밀려왔기 때문입니다. 10분 동안 눈물만 흘리다 내려왔습니다. 애양원의 오랜 성도들이 손 목사를 대신해 그를 말없이 끌어안았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단번에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지만 그 용서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는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습니다. 이제는 은퇴권사가 된 동희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하늘나라로 간 오빠에 대한 그리움은 지금도 남아있어요. 용서와 화해, 하루아침에 이뤄지긴 힘든 것 같아요.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요.”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기사입력 : 2019.04.14. am 11:08 (입력)
김용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