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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명가:이영훈 목사] <3> 믿음의 가정을 세운 아버지와 어머니

순복음가족신문은 ‘신앙의 명가’ 코너를 통해 한국교회에서 신앙의 명문가를 이룬 목회자 가정을 찾아 소개합니다. 첫 번째 소개하는 신앙의 명가는 4대째 신앙을 이어오며 많은 목회자와 장로 권사를 배출한 이영훈 위임목사의 가족입니다. 세상 문화인 맘몬주의와 인본주의가 교회 안에도 들어와 참된 신앙을 이어가기 힘든 세태 속에서도 믿음의 본질을 잃지 않고 신앙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분의 신앙에 많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편집자 주>

‘한 마음 한 뜻’ 주의 일에 헌신한 부부
부모님 모시고 다섯 남매 양육하며 1년에 100명 이상 전도
형편 어려운 신학생 전액장학금 후원하며 주의 종 양성


전도를 생명처럼 여긴 김선실 목사

“예수 믿으세요.” “예수 믿으세요.” 이영훈 목사의 어머니 김선실 목사는 평신도 시절 주위 사람들로부터 ‘최자실 목사님의 분신’으로 불릴 정도로 대단한 전도자였다.

 평양신학교를 졸업한 김종삼 목사의 딸로 태어나 어릴 때부터 장로교에서 신앙생활 하던 김선실 목사는 성경과 말씀으로 충만했다. 시아버지 이원근 장로의 인도로 온 가족이 순복음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뒤 가족 중에서 가장 먼저 성령 침례를 받았다. 그야말로 장작(말씀)에 불(성령)이 붙자 활활 타오르는 기세가 대단했다.

 김선실 목사는 시부모를 봉양하고 다섯 남매(이영혜 권사 이영범 장로 이영훈 목사 이영찬 선교사 이영석 안수집사)를 기르는 상황 속에서도 순복음신학교 16기에 청강생으로 들어가 공부하다가, 故 변종호 목사의 권유로 제 18기에 정식 입학했고 졸업 후 1972년에는 우리 교회 전도사로 사역하며 주의 일에 밤낮으로 헌신했다. 주의 일을 하느라 바쁜 생활 가운데도 매일 새벽 성전에 나가 ‘하나님 이 자녀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이니 주님이 키우시고 맡아 달라’고 간절한 기도를 드렸다.  

 당시 최자실 목사가 ‘화요 잃은 양 찾기 기도회’를 인도하며 성도들의 구령의 열정을 독려했던 시절 여집사님들은 오전 10시 교회에 모여 최 목사의 인도 하에 두 시간 동안 뜨겁게 기도했다. 그리고 두 사람씩 짝을 지어 노방 및 축호전도를 했고 김선실 목사는 냉천동 천연동 현저동 홍제동 홍은동 북아현동 지역을 중심으로 매년 100명 이상을 전도했다. 김선실 목사의 전도 열정은 이때부터 시작되어 이 땅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은 병원 침상에서도 변함없었다. 김선실 목사는 89세를 일기로 지난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까지 중국과 일본 제3세계를 꾸준히 오가며 선교했다.

 김선실 목사는 생전 인터뷰에서 전도한 사람 중에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교도소에서 전도한 사형수(김을윤)라고 했다. 김을윤은 위장 부부 고정간첩으로 사형언도를 받은 상태였다. 사형수로 확정된 탓에 누구도 접근을 꺼리던 그에게 김선실 목사가 끊임없이 면회를 하고 말씀을 전하자 돌밭 가시밭 같은 마음에 예수님의 사랑이 심어졌다. 전도한 지 6개월 만에 성령 받고 회개의 눈물을 흘린 그는 사형수에서 모범수로 변화되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그 후 어느 날 김선실 목사는 교도소에서 연락을 받고 한달음에 달려갔다. 평소에 관심도 없이 쳐다보던 교도소 교무과장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경례를 하면서 “오늘 김을윤 자매가 갔습니다. 교도소에서 사형당하는 사람을 여러 명 봤지만 저는 오늘 천국 가는 사람 처음 봤습니다”라며 김을윤 성도의 사형소식을 전했다. 김을윤 성도는 찬송을 부르며 천국에서 만나자고 말했다고 한다. 한없이 눈물 흘리던 김선실 목사는 아무 연고도 없는 시신을 인계받아 최자실 목사의 도움으로 오산리최자실기념금식기도원 공동묘지에 안치했다.


1978년 장로회장을 지낸 이경선 장로

김선실 목사가 아침부터 기도회에 참석하고 전도하느라 바쁜 상황에도 이영훈 목사의 아버지 이경선 장로는 한 번도 아내의 활동에 대해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았다. 본인 역시 사업을 하느라 부인의 적극적인 내조가 필요했을 텐데 이경선 장로는 오히려 김선실 목사의 전도사역을 묵묵히 뒤에서 도왔다. 이경선 장로는 자녀들에게 “너희 엄마가 주의 일을 하느라 참 많이 바쁘다. 너희들이 할 일은 스스로 알아서 잘 챙기거라”고 당부했다.

 1971년 우리 교회에서 장로 장립을 받은 이경선 장로 역시 교회와 주의 종을 물심양면으로 섬기며 성도들을 돌봤다. 1978년에는 2년간 장로회장으로 교회를 섬겼다. 이경선 장로의 사업장은 부부의 전도 황금 어장이었다. 김선실 목사는 이경선 장로의 사업장을 찾아오는 거래처 인사들을 대상으로 열심히 전도했고 그들 중 어떤 사장님은 우리 교회의 장로가 되어 교회를 위해 헌신하기도 했다.

 그리고 부부는 함께 힘을 모아 신학생 후원에 앞장섰다. 신학생 시절 경제적 어려움에 학업을 중단하는 학생들을 안타깝게 여긴 김선실 목사는 남편 이경선 장로에게 이들을 도와 달라고 요청했고 이경선 장로의 후원을 통해 수많은 학생들이 학비와 생활비 전액 장학금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그들 중 나중에 훌륭한 목회자가 된 이들이 많았다. 오직 사랑의 마음, 주님을 향한 헌신 속에 이루어진 이 일로 김선실 목사는 순복음신학교 제18회 졸업식 때 공로상을 받았다.
 

항상 겸손과 기도로 주의 종을 잘 섬겨라

기도하는 어머니였던 김선실 목사는 자신이 아버지께 받은 가르침대로 자녀들을 가르쳤다. 그 첫째가 겸손이었다. 특별히 워싱톤에서 목회하는 이영훈 목사에게 매주 토요일이면 전화하여 ‘항상 겸손히 교회를 섬기고, 기도를 많이 하라’고 당부를 했다. 김선실 목사가 강조한 또 한 가지는 주의 종을 섬기고 그 말씀에 토를 달지 않고 순종하라는 것이었다. 김선실 목사는 매년 햅쌀이 나오면 가장 좋은 품질의 쌀 한 가마니를 당시 당회장이셨던 조용기 목사님 댁으로 보내고 평소 시장에서 장을 보다가도 좋은 것을 보면 무조건 목사님 댁에 갖다 드렸다. 고기를 살 때도 한 근은 목사님 댁에 가져가고 똑같이 한 근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김선실 목사와 이경선 장로의 가르침은 성경에 근거해 권위가 있었고 무엇보다 삶으로 실천하는 부모님의 모습은 자녀들에게 평생 유산이 되었다. 자녀들의 진로문제도 목사님께 기도받고 하나님께 뜻을 구하며 신중하게 결정을 내리도록 했다. 자녀들은 부모의 권위에 순종했고 어른이 되어서도 예수님께 순종하는 길을 따르고 있다. 이경선 장로와 김선실 목사의 5남매는 장성해 장녀 故 이영혜 권사(미국 뉴저지 베다니교회) 장남 이영범 장로(미국 뉴저지 성은장로교회) 4남 이영석 안수집사(분당 지구촌교회)는 제직으로서 각자의 교회를 섬기고 차남 이영훈 목사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위임목사로, 3남 이영찬 선교사는 케냐에서 학교와 교회를 세워 복음 전도와 청소년 교육 사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  


복순희 기자
<자료제공=신앙계>


 

기사입력 : 2019.04.07. am 11:22 (입력)
복순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