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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훈 원로목사의 고백-“하나님이 하셨습니다”


광복 직후 아이들 위한 동요 ‘눈꽃송이’ 등 작곡
97세 나이에 3·1운동 관련 오페라 ‘함성 1919’ 완성
평생 하나님 은혜에 대한 진심어린 고백 노래에 담아

박재훈 원로목사(캐나다 토론토 큰빛교회)는 동요계의 대부이자 한국 교회음악의 아버지로 불린다. 어릴 적 친구들과 손잡고 부르던 동요 ‘눈꽃송이’ ‘다람쥐’ ‘엄마 엄마 이리와 요것 보세요’ 등 다수의 동요는 물론 ‘어머님의 은혜’가 박재훈 목사의 작품이다. 이뿐 아니다. ‘어서 돌아오오’ ‘지금까지 지내온 것’ 등 한국의 대표적인 찬송가도 작곡했다. 동요와 찬송가를 합쳐 그가 작곡한 곡은 모두 1500여 곡이 넘는다.

 음악가에서 하나님의 소명을 받고 목회자로 변신, 캐나다에서 교회를 개척하고 은퇴한 후에도 작곡 활동을 지속해왔던 박재훈 목사는 97세인 올해 3·1운동 100주년 기념 오페라 ‘함성 1919’를 완성하고 3월 1∼2일 여의도 KBS홀에서 공연했다. 수많은 독립투사들의 외침, 마지막 애국가 합창이 감동이었던 오페라 ‘함성 1919’는 박재훈 목사가 만든 네 번째 오페라다.

 암투병과 당뇨, 한쪽 성대의 마비 등 건강상의 어려움 중에도 고국을 방문한 박재훈 목사는 “나라의 소중함, 3·1운동 정신의 숭고함을 모르는 이 시대에 큰 울림을 주고 싶었다”며 “구상에서 완성까지 4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이 하셨다”라고 고백했다.

 박재훈 목사는 1922년 강원도 김화군에서 태어났다. 평양 요한학교를 졸업하고 도쿄 제국고등음악학교에서 공부한 박 목사는 광복 당시 평안남도 강서군에서 초등학교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까지 우리나라에는 어린이들을 위한 동요가 없었다. 아이들이 배운 건 일본어로 된 일본 군가 뿐이었다. 해방과 함께 박 목사는 어린이들이 부를 동요를 만들기로 결심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발간되는 어린이 잡지가 2개 있었어요. 하나는 ‘소년,방정환’이고 또 하나는 교회 선교사들이 내는 ‘아이 생활’이었는데 한 50권을 빌려다 쌓아놓고 교회 조그마한 방에서 잡지에 실린 동시에 곡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사흘간 만든 곡이 50곡이었는데 만들고 보니 곡조가 다 비슷비슷한 거예요. 하하하.”

 숙명여대와 한양대 교수로 활동했던 박재훈 목사는 1972년 첫 오페라 ‘에스더’ 공연 후 이듬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웨스트민스터대 합창대학을 졸업한 뒤 캐나다 한 학교의 음악책임자로 요청받아 1997년 캐나다에 정착한 그는 60세였던 1982년 목사안수를 받고 토론토 큰빛교회를 개척했다.

 목회를 하면서도 오페라 작품에도 심혈을 기울여 2001년에는 오페라 ‘유관순’을, 암투병 중이던 2012년에는 오페라 ‘손양원’을 무대에 올렸다. 2011년에는 공적을 인정받아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기도 했다.

 이번에 네 번째 오페라 ‘함성 1919’를 무대에 올린 박재훈 목사는 “평생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심어린 고백을 노래에 담고 싶었다”고 소회를 말했다.

 

기사입력 : 2019.03.10. am 10:52 (편집)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