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말씀 > 이영훈목사 주일설교
더 나아지는 인생

 <말씀봉독>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요한복음 2장 1~5절)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 감사드립니다. 큰 은혜 받았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날마다 날마다 더 나아져야 합니다. 제자리에 멈춰있으면 안 됩니다. 뒤로 물러가도 안됩니다. 주저앉아도 안 됩니다. 우리의 신앙은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변화된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이 성장하고 성숙해야 합니다. 오랫동안 교회를 다녀도 변함이 없다고 하는 것은 그것은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연약한 모습들을 다 떨쳐버리고 이제는 변화된 모습으로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길 원합니다.

 우리 교회에 넘치도록 부어주셨던 대조동 천막 교회 시절의 은혜가, 서대문 시절의 은혜가, 여의도교회 초기의 은혜가 다시금 회복되기를 원합니다. 여러분 신앙의 큰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축복으로 더 나은 모습이 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찬송가: 434장(통 491장):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1절)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 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 받기 원합니다

(2절)
봉헌할 물건 나 없어도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내 죄를 주께 다 고하니 주님의 보혈로 날 씻으사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3절)
간악한 마귀 날 꾀어도 주 예수 앞으로 더 가까이
이 세상 속한 그 허영심 또 추한 생각을 다 버리니
정결한 맘 내게 늘 주소서

(4절)
이 세상 내가 살 동안에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뵈는 천국 나 들어가 한없는 복락을 다 얻도록
풍성한 은혜를 주옵소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기를 원합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는 신앙이 되길 위해서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주께로 날마다 더 가까이
저 하늘나라 나 올라가 구주의 품 안에 늘 안기어
영생의 복 받기 원합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날마다 주님께 가까이 나가고 싶은데 우리의 연약함이 자꾸 우리의 발목을 붙잡아서 자꾸 나의 처한 환경에 묶이고 나의 연약함 때문에 넘어지고, 뒷걸음질 쳤던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 우리가 새로 일어나길 원합니다. 더 이상 절망의 자리에 주저앉아 있기 원치 않습니다. 더 이상 어둠의 세력에 끌려다니기 원치 않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일어나서 십자가 붙잡고 주님께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더 가까이 나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옆 사람과 인사하세요. “주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기 원합니다.”

(2절)
봉헌할 물건 나 없어도 날마다 주께로 더 가까이
내 죄를 주께 다 고하니 주님의 보혈로 날 씻으사
눈보다 더 희게 하옵소서


<설교말씀>

할렐루야! 오늘 말씀의 제목은 “더 나아지는 인생”입니다. 요한복음 2장 1-5절 말씀을 본문으로 함께 은혜 나눕니다. 제목을 따라해주십시오. “더 나아지는 인생”, “더 나아지는 인생”

 사람이 세상을 살다 보면 항상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늘 기쁘고 행복한 날만 우리에게 있는 것은 아니고, 예기치 않은 어려움이 때때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평생 감기를 앓아본 적도 없는 분이 어느 날 몸이 불편해서 가보니까 이미 말기암이 라는 진단을 받았을 때, 그 충격과 절망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착하고 착하기만 아들이 어느 날 갑자기 부모에게 반발하더니 집을 나가버려서 온 집안이 초상집처럼 되어버린 그런 절망에 처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 믿고 꼭 기억해야 하는 것은 절망의 순간이 어려움의 순간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절대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절망의 자리에, 슬픔의 자리에, 통곡의 자리에 주님이 함께하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행복한 꿈을 꾸며 첫출발한 한 신혼 가정에 일어났던 절망적인 상황의 이야기입니다. 갈릴리의 가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그 시골 동네 혼인 잔치에는 많은 사람들이 북적였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혼인 잔치를 하면 일주일 정도 많은 사람을 초청해서 잔치를 벌입니다. 우리 대한민국도 옛날에 보면 시골에서 혼인 잔치를 하면 동네 사람을 다 초청해놓고 3일, 4일 축제로, 잔치로 시간을 보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손님이 많이 왔던지, 아니면 준비가 부족했던지 잔치를 지내는 중에 가장 중요한 음료인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물이 전 세계에서 가장 먹을 만하고 물에 다른 것이 섞여 있지 않은데, 유럽 쪽에 있는 나라들에는 물에 석회 가루가 많이 섞여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의 주 음료는 물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나 유럽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포도주를 주 음료로 씁니다. 포도를 따서 즙을 내서 포도주를 만드는데, 그래서 이 잔치에는 꼭 포도주가 있어야 되는데. 그만 포도주가 떨어진 것입니다.

 심부름하던 하인들이 와서 말합니다. “큰일 났습니다.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신랑과 신부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혼주 댁 어르신들도 “큰일 났구나. 이 어디에서 포도주를 구해 올 수도 없고 어떡하나?” 안절부절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이 절망의 자리에 예수님이 계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1. 절망의 자리에 계신 예수님

먼저, 절망의 자리에 계신 예수님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여기 보니까 요한복음 2장2절에,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성경은 말씀합니다. 여기에 바로 문제의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도 청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인생의 중심에 예수를 모셔 들여야 됩니다. 우리 마음 한가운데에 예수님을 모셔들이고 주님과 동행할 때 어떤 문제도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왜? 주님이 문제 해결자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예수님을 필요할 때만 찾습니다. 잘나갈 때, 사업이 잘되고, 자녀들이 좋은 직장 얻고, 좋은 대학 가고, 높은 위치로 올라가고 할 때는 주님을 찾지 않습니다. 본인이 잘나서 그렇게 된 줄 알고 그 착각 속에 삽니다. 그러다가 한번 환란의 태풍이 불어서 와장창 무너지거나 하면 그때 가서야 천부여 의지 없어서 손들고 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모습입니다.

여러분,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절망의 때나 우리 삶에 희망이 넘쳐날 때나 언제나 주님을 그 중심에 모셔야 되는 것입니다. 주님이 와 계시면 그것이 바로 문제의 해결이고, 응답이고, 기적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참, 사람들의 인심은 고약해서 권력의 위에 위치해 있을 때, 가진 것이 많을 때는 몰려옵니다. 그런데 권력의 자리에서 내려오면 썰물처럼 싹 빠져버리고 맙니다. 정말 그분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사람이 몇 사람 옆에 남아서 그를 위로해주고 격려해줄 수는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떠납니다. 그러나 그 옆에 있는 사람이 아무리 격려하고 위로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그 마음의 절망과 그분이 가진 문제를 해결해줄 수 없는 것이 우리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삶에 예수님을 모셔들여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 어떤 순간에도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고 우리 곁에 계시고 우리를 꼭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않게 되기를 바랍니다.

가나의 혼인 잔치에 예수님이 와 계셨기 때문에 바로 거기에서 문제가 해결되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잘될 때는 마음의 문을 딱 닫아놓고 예수님 들어올 자리를 마련해놓고 있지 않아요. 친구들과 만나서 그저 교제하고 잘나가는 인생, “나 잘나간다.” 하고 여기저기 자기 얼굴을 내밀며 다니는 그때에는 주님이 들어가실 자리가 없습니다.

 그런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똑, 똑, 똑’ 우리의 마음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장 20절에 이와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마음의 문을 여셔야만 합니다. 마음 문을 여는 순간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기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 내 마음 가운데 오시옵소서! 상처 입은 내 마음 가운데, 절망에 찬 내 마음 가운데 오셔서 내 상처를 어루만져주시고, 이 절망의 자리에서 나를 건져주시옵소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고통과 괴로움이 있는 이 불쌍한 영혼을 주님, 긍휼히 보시고 사랑의 품에 안아주옵소서!

 예수님 말씀하십니다. 마태복음 12장 28절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어떤 상처를 입고 쓰러져 피를 흘리고 있던지 어떤 절망의 자리에서 탄식하고 있던지 차라리 죽었으면 좋겠다고 죽을 생각을 하고 있던지 간에 그 자리에서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내게로 오라!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주님만이 문제의 해결자가 되십니다.

 미국의 유명한 저명한 작가요, 강사인 데일 카네기의 책 가운데 ‘카네기 행복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거기에 메리 쿠슈만의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분은 병든 남편과 다섯 자녀를 돌보고 본인은 파출부 일을 하느라 몸이 부서지게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냈는지 하루하루를 살기가 힘들었습니다. 남편의 병간호를 하느라 약값이 들죠, 다섯 자녀를 돌봐야하죠, 그래서 자기가 살고 있던 집도 다 팔고 빚만 쌓여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자기 아들이 슈퍼마켓에 갔다가 연필을 훔쳤다는 누명을 쓰고 야단을 맞고 온갖 창피를 당하고 눈물을 흘리며 돌아왔습니다.

그때까지 그 힘들고 어려운 것을 참고 견뎠는데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이 그렇게 모욕을 당하고 그렇게 누명을 쓰고 돌아오는 모습을 보자 마음이 와르르 무너져버렸습니다. ‘죽자! 이렇게 살아 뭐하나! 죽자!’ 사람이 마지막 벼랑 끝에 다다르면 ‘죽는 게 낫겠다. 차라리 죽자!’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예수 믿는 사람은 그 순간 다시 살아야만 됩니다. 죽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 주신 귀한 생명 지키고 살아야 합니다. 이제 메리 부인은 문을 잠그고 창문을 다 내리고 가스를 켜고 집에 있는 5살 난 딸을 데리고 침대에 누웠습니다. “엄마”, “왜?”, “낮잠 좀 자자” 가스가 흘러 들어와서 정신이 혼미해지는 순간 부엌에 틀어놓았던 라디오에서 찬송 소리가 들려옵니다. 

죄 짐 맡은 우리 구주 어찌 좋은 친군지
걱정 근심 무거운 짐 우리 주께 맡기세
주께 고함 없는 고로 복을 받지 못하네
사람들이 어찌하여 아뢸 줄을 모를까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본인이 습관적으로 교회를 왔다 갔다 했지만 은혜를 받았을 때 그 모습이 다시 갑자기 그 마음 가운데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안 되지~ 내가 죽으면 안 돼!” 벌떡 일어나서 창문을 다 열고 가스 밸브를 다 끄고 무릎을 꿇고 눈물로 기도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생명을 살려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나의 가정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녀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뜨거운 눈물의 기도를 통하여 그녀는 회복되었습니다. 더 열심히 해서 자녀들 잘 길러서 다 시집장가 보내고 그 아이들이 또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음의 막바지까지 다다랐던 그녀의 운명이 순간 주님의 음성을 듣고 일어나 새 삶을 찾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떠한 절망 가운데 있던지 간에 여러분은 혼자가 아닙니다. 거기에 주님이 같이 계시고 주님이 여러분을 그 자리에서 붙들고 계시고 일으켜 주고 계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고 신앙을 회복하고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믿음으로 나아가는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주님께 고하는 신앙

둘째로 우리는 이 절망의 자리에서 주님께 고하는 기도하는 그러한 신앙을 가져야 됩니다. 2장 3절에 “포도주가 떨어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께 와서 말합니다. 저들에게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포도주가 없습니다. 성경을 보면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예수님이 12살 때 성전에 올라갈 때 등장하고 그 이후론 사라져 버립니다. 그러니까 아마 일찍 돌아가신 것 같아요. 그래서 예수님은 서른 살이 될 때까지 목수 일을 하면서 가정을 돌봐야 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어머니 마리아와 상의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들이 절망에 처한 것을 보고 예수께 왔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이 누군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정색을 하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한복음 2장 4절 보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내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인류 구원을 위해서 온 것인데 나에게 왜 이러한 일을 부탁하십니까?” 여기서 보면 “여자여”라는 표현을 씁니다. 헬라어를 보면 여인에 대한 존칭어입니다. 우리로 표현하면 “여사여 여인이여” 이렇게 표현한 겁니다. 그 순간은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가 아니라 이제는 공인으로서 공과 사를 구분해서 “여인이여 왜 내게 그런 부탁을 하십니까? 아직 내 때가 이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기도를 들어주셨습니다. 주님 앞에 나와 기도하면 지금도 주님은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기도 어떻게 보면 다른 사람이 보면 하찮은 것 같은 그 기도라 할지라도 간절한 기도를 응답해 주시고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시때때로 우리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우리 죄를 고백하고 주의 도우심을 간구해야 합니다. “주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나를 이 절망의 자리에서 건져주시옵소서. 우리 가정이 큰 어려움에 처했사오니 우리 가정을 주님 건져주시옵소서.” 눈물로 기도할 때 주님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주님은 온 인류 구원의 큰 역사를 이루시러 오셨지만 우리의 작은 정말 하찮은 일까지도 우리 아픔과 고통을 아시고 그것을 보시고 우리의 간구를 들으사 응답해 주시는 참으로 좋으신 우리 주님이신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5장 7절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할렐루야! 큰일이든지 작은 일이든지 내 개인일이든지 가정의 일이든지 부모의 일이든지 자식의 일이든지 무엇이든지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라 그럼 내가 이루어 주리라!

 할렐루야! 기도하지 못하는 만큼 큰 문제도 없고 기도하지 않아야 할 만큼 작은 문제도 없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면 응답이 다가오는 것입니다. 아주 작은 기도도 주님 응답하실 뿐 아니라 “주여! 우리 대한민국이 복음화 되어 50퍼센트 이상 예수 믿게 하여주시고 남북통일이 복음통일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런 거대한 기도 주님께서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할 때 주님 들으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8절에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할렐루야! 여러분의 일생이 주님께 간구하는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문제를 만났을 때, 어려움을 당했을 때 사람을 찾아다니지 말고 그 시간에 주님께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셋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것은 주님이 무어라 말씀하시든 말씀에 순종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고 하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에 대해 말씀드립니다.

요한복음 2장 5절에, 예수님 어머니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주님의 뜻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순종입니다. 이유 없는 순종입니다. 주님이 하라고 하시면 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명령하시는데 왜라고 하는 것이 없습니다. 내 인간적인 생각과 맞지 않아서 “왜요?” 그렇게 물어서는 안 됩니다. 하라고 하면 해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백 세 때 낳은 아들이삭을 모리아 땅에 있는 한 산에 바치라 하실 때 묻지 아니하고 “네” 순종하고 다음날 일찍 새벽에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떠났던 것을 우리는 압니다.

여러분 주님 명령하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과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한국이 오늘날 이렇게 복음화된 것은 수많은 선교사들이 그들이 그 지역에서 가장 탁월한 지도자였고 의사였고 목사였고 사업가였는데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조선이라는 나라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배를 타고 몇 달 걸려 한국에 와서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고 가족을 희생시켰던 것입니다. 순종 때문에, 희생도 마다하지 않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1956년 미국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휘튼 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짐 엘리엇을 비롯한 다섯 명의 크리스천 젊은이들이 복음을 전하러 에콰도르의 아우카족에게 갔다가 모두 창에 찔려 죽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이 아우카족은 매우 난폭한 족속이 되어서 접근하는 모든 사람을 다 죽였습니다. 그들이 타고 간 경비행기는 산산조각이 났고 그들은 내리자마자 그들을 사랑한다고 손을 흔드는 그들에게 달려와 창을 찔러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미국 신문에 이것을 충격적인 보도로 다루면서 “이 무슨 낭비냐?”(What a waste)라고 하는 그러한 기사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복음을 전해보지도 못하고 죽었는데 부인들이 모여 기도했습니다. 남편들이 못 이룬 꿈을 우리가 이루게 하여 주옵소서. 엘리자베스 앨리엇이 어린 아들을 데리고 그리고 다른 부인들과 함께 에콰도르 아우카족이 있는 마을로 갑니다.

아우카족은 아주 강하고 잔인한 족속이었지만 여자들은 해치지 않았습니다. 여자들은 연약한 존재라고 생각해서 여자들은 해치지 않았어요. 그래서 그곳에 들어가서 그들을 사랑으로 섬기고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고 그들에게 주의 사랑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희생과 헌신에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잠시 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을 때 추장이 와서 물었습니다. 도대체 당신들은 누군데 와서 우리를 이렇게 도와주고 우리를 사랑으로 보살펴 주십니까. 그때 짐 엘리엇의 부인 엘리자베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남편들은 하나님을 알려주기 위해서 이곳에 왔습니다. 당신들이 그들을 죽여 뜻을 이루지 못했지요. 우리는 남편들이 그렇게도 당신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을 들려주기 위해서 왔습니다. 그 말이 무엇이냐고요? ‘예수님은 여러분을 사랑합니다.’라는 말입니다.”

 할렐루야! 이 엘리자베스 앨리엇은 남편의 일기를 다 보관하고 있었는데, 이 무슨 낭비인가라고 하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남편이 쓴 일기장을 보여주었습니다. 거기에는 이러한 글이 있었습니다.
“영원한 것을 얻고자 영원할 수 없는 것을 버리는 자는 바보가 아니다.”
 그다음에는 이런 글이 있습니다.
“이 쓸모없는 나뭇개비에 불을 붙여주옵소서. 제 삶을 주의 영광을 위해 태워주옵소서. 저는 오래 살기를 원치 않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위해 풍성한 삶을 살게 하여주옵소서.”

 짐 앨리엇과 친구들을 찔렀던 다섯 명의 아우카 사람들이 모두 예수님 영접하고 그 중에 네 명이 목사가 되었습니다. 온 마을이 예수 믿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20세기 선교 역사의 위대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된 것입니다. 그들의 순종이, 그들의 죽음이 온 마을을 변화시켰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시면 목숨조차도 아까워하지 아니하고 희생할 수 있는 그러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인들에게 명령하십니다. 요한복음 2장 7절에서 8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당시 모든 유대인의 집에는 밖에 나왔다가 들어오면 손을 씻는 물을 담아놓는 항아리가 있는데 그 항아리에 물을 채워서 떠가지고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연회장은 그 전체 잔치를 주관하는 책임자에게 갖다 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물을 떠다 갖다 줬다가 무슨 욕을 먹으려고요. 지금 포도주가 없는데. 그런데 제자들에게 예수님의 어머니가 하신 말씀이 있죠. 무엇을 시키던지 그대로 해라. 물을 떠서 가져가는 동안에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물같이 흔하고 무슨 맛인지 모르고 의미 없는 인생이 예수를 믿고 나서 포도주처럼 귀하고 맛있고 의미 있는 인생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 물을 맛본 연회장이 말을 합니다. 요한복음 2장 9절과 10절입니다.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예수를 믿고 우리는 이와 같은 인생을 살아야 됩니다. 더 나은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물 같은 인생이 포도주 같이 변해야 되는 것처럼 의미 있고 보람되고 행복하고 주님의 기쁨이 충만한 인생으로 바뀌어야 되는 것입니다. 절대로 무의미하게 살면 안 됩니다. 바뀌어야 합니다. 더 나은 인생이 되어야 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더 나은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과거에 내가 실패를 연속했다고 할지라도 과거의 나의 삶이 상처투성이라고 할지라도 이제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미래가 예비 되었기 때문입니다. 밝고 환하고 찬란한 더 나은 미래가 예비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게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실 때에 그것은 고난이고 슬픔이고 죽음이고 고통이었지만 십자가 후에 부활의 역사는 비교할 수 없는 더 나은 미래를 우리에게 가져와서 온 인류에게 구원의 문을 열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 믿고 나서 더 나은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아직까지도 과거에 묶여있다고 하면 오늘 이 시간 예수님 안에서 더 나은 인생으로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된 것처럼 여러분의 삶이 완전히 바뀌어지게 되길 바랍니다. 어떤 문제가 있던지 어떤 어려움이 있던지 주님의 십자가 밑에 다 내려놓고 부르짖어 기도하며 주의 도우심을 간구하십시오. 찬송가 369장 3절이 이와 같이 되어 있습니다. 

(3절)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진 자 누군가
피난처는 우리 예수 주께 기도드리세
세상친구 멸시하고 너를 조롱하여도
예수 품에 안기어서 참된 위로 받겠네

 절대로 뒤로 물러가지 말고 주저앉지 말고 주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며 믿음으로 전진 또 전진 또 전진 또 전진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님이 절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오직 예수님만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십니다. 예수님 붙잡고 예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예수님 안에서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하겠습니다.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의미 없는 인생 물처럼 흔하고 또 평범하고 가치도 없는 인생을 살았었는데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포도주처럼 귀하고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인생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도 더 나은 인생을 살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었던 것을 회개합니다. 오늘 이후로 더 나은 인생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기사입력 : 2019.02.10. am 10:33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