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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이캐슬’의 난맥을 푸는 열쇠

아시안컵 축구 8강전에서 한국이 카타르에 패했다는 기사 밑으로 비난성 댓글들이 줄을 이었다. 그 많은 비난 댓글들 사이로 얼굴을 펴주는 한 줄이 있었는데 “스카이캐슬 볼 수 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멘트였다.
 국가대표팀이 4강과 결승에 진출하면 경기중계로 스카이캐슬을 볼 수 없게 되는데 그나마 져서 드라마를 볼 수 있어 다행이라는 자조 섞인 위로의 말이었다. 한국 팀의 결승 진출만큼이나 누구에게는 간절히 보고 싶은 인기 드라마가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우리 사회를 들썩이게 만든 드라마 ‘스카이캐슬’이 종방을 맞으며 대한민국은 비로소 주말 밤의 마법에서 풀려난 느낌이다.

#엄마 1
어느 기자는 ‘스카이캐슬’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강준상(정준호)의 엄마 윤 여사(정애리)라고 말했다. 병원장을 눈앞에 둔 아들이 제정신을 차리고 나서 악행을 반성하며 사표를 내겠다고 했을 때 윤 여사는 “너 병원에 사표 낼 거면 날 죽이고 내” 하며 악다구니를 썼다. 오십 평생 엄마의 욕망을 충족시켜주고자 고군분투한 강준상의 삶도 안쓰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아들의 출세만을 목표로 거기에 존재의 이유를 얹어 살아온 엄마의 삶이 연민을 넘어 충격 그 자체라고 기자는 말했다.
 맞다. 엄마의 인생이 다르고 자식의 인생이 다르니 아무리 엄마라도 넘어서는 안 될 선이 있다. 헌데 ‘스카이캐슬’에 사는 엄마들은 이 경계를 편의적으로 넘나들었다. 그리고는 윤 여사처럼 아들에게 협박하듯 윽박질렀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자식을 통해 대리만족하려는 엄마의 심리와 오직 자식의 출세에만 인생을 거는 가진 자들의 무한질주가 드러나 아프기도 했다.    

#엄마 2
프랑스 소설가 로맹 가리의 소설 ‘새벽의 약속’에는 윤 여사 못지않은 특별한 엄마가 등장한다. 자전적 소설이니 아마도 작가의 엄마를 그린 셈이다. 과부로서 아들의 성공을 위해 가난의 고통과 온갖 모멸을 감수하고 평생을 살았던 엄마와 그 희생과 헌신을 딛고 마침내 엄마의 소원이던 위대한 소설가가 되어 프랑스가 내린 훈장을 주렁주렁 달게 된 아들의 이야기이다.
 아들은 훗날 엄마를 추억하며 말한다. “나는 어머니의 부서진 얼굴을 볼 때마다 내 운명에 대한 놀라운 신뢰가 내 가슴속에 자라남을 느꼈다. 전쟁 중 가장 어려운 시기에도 나는 항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가지고 위험과 대면하였다. 어떤 일도 내게 일어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내 어머니의 해피엔드이므로.”
 자신의 오늘을 ‘어머니의 해피엔드’로 연결 짓는 주인공의 고백은 엄마에 대한 사랑과 존경의 찬사에 다름 아니다. 그리고 나의 성공은 엄마의 희생으로 말미암았고 엄마의 삶은 나의 성공에 이르러 비로소 엔딩을 짓는 셈이니 나의 삶과 엄마의 삶을 구분 짓지 말라는 의미로도 들린다.

#두 엄마의 사이에서
얼핏 보면 로맹 가리의 소설에 나오는 엄마와 강준상의 엄마 윤 여사는 닮았다. 아마 ‘스카이캐슬’의 엄마들은 그래서 “자녀의 성공을 위해 엄마가 물불 가리지 않는 건 당연하잖아. 그렇지 않은 엄마가 비정상 아냐?” 하고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자녀의 성공’이든, ‘물불 가리지 않는’ 열심이든 거기 ‘너무 많은’ 엄마의 욕망을 덧칠하는 순간 그들만의 ‘스카이캐슬’ 쌓기 놀이에 빠지고 만다. 아이들의 행복과도 동떨어져 있고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에 대한 고민도 비어 있다. 그리고 끝내 부모자식 간의 관계를 헝클어버리기도 하고 범죄의 영역을 넘나들기도 한다. 아슬아슬하고 조마조마하다. “엄마 나는 불행했어요. 내 인생엔 내가 없었다고요.” 그렇게 절규하던 강준상이 떠오른다.
 하지만 로맹 가리의 ‘나는 당신의 해피엔드입니다’라는 문장에서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열어주고자 십자가의 희생을 마다 않고 걸어가신 예수님의 사랑이 떠오른다. 그 사랑에 힘입어 우리는 비로소 “나는 당신의 해피엔드입니다”라고 고백하지 않는가.
 자식을 위한 부모의 희생은 고귀하다. 다만 사랑이 아닌 욕망으로 자녀의 인생을 컨트롤하려고 할 때 부모와 자녀의 인생은 ‘욕망의 캐슬’에 갖혀 희생의 고귀함과 결과의 아름다움은 사라지고 만다. 주님이 주신 인생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기사입력 : 2019.02.03. am 09:46 (입력)
박명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