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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년, 그리고 한국교회의 나아갈 길 ③

올해는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일제의 강점 아래서 민족의 독립과 자결을 외치며 분연히 일어났던 3.1운동은 전 세계에 대한민국의 자주독립의 당위성과 의지를 널리 알렸습니다. 그 중심에 기독교가 있었습니다. 순복음가족신문은 3.1운동 100주년의 해를 맞아 1월 20일자 신문부터 7회에 걸쳐 3.1운동의 역사적 의미와 기독교의 역할을 되새기고, 기독교가 주도한 3.1운동의 정신을 향후 교회가 어떻게 계승하고 통일시대를 대비하며 국가와 민족을 이끌어 가야 할지에 대해 알아보고자 합니다. 글은 한국교회사의 최고 권위자인 민경배 백석대 석좌교수가 집필합니다.<편집자 주>


3.1독립운동 전국적 동원체제 동력으로서의 교회

우리 겨레 내재적 희망 역량 분출 통로였던 한국 교회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복음 동산으로 회복 꿈꿔


한국 최초의 전국적 조직으로서의 교회

한반도의 백 지도 두 장을 꺼내어 놓는다. 한 장에는 전국의 교회 소재지를 그 숫자 따라 점을 찍는다. 다섯 열 이런 식으로 찍는다. 그리고 다른 한 장에는 3.1독립운동이 발발한 지역을 그 참여도에 따라 크게 작게 표시를 한다. 그러고 나서 그 두 장의 백 지도를 겹치면 백 지도 두 장이 꼭 겹쳐진다. 교회가 있는 곳을 따라 3.1독립운동이 일어나고 진행된 표시가 백 지도에 그대로 나타난다. 이것이 한국 교회가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증거이다.

 어떻게 그렇게 교회 소재지를 따라 3.1독립운동이 일어났던가. 그것은 교회가 당시 유일한 실질적인 전국적인 조직이기 때문이다. 한국교회는 1907년 7월 정미조약의 참담한 굴욕 속에서 그해 9월에 평양에서 독노회를 조직한다. 전국 교회 교세 크기가 총회를 구성하기에는 작고 한 노회정도의 크기에 그쳤기 때문이다.

 한데 이 독노회에는 전국교회가 총대를 파견하고 있었다. 교회는 전 국토에 퍼져 있었다. 함경도 전라도 강원도에까지 퍼져있었다. 방방곡곡 퍼져있었다. 그 지방 교회들에서 대표자들을 독노회에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가히 한국 역사에 있어서의 최초의 민간 차원의 자발적인 전국적 조직체였다. 그런데 그 노회의 의장 고퇴(叩槌) 곧 사회봉에는 태극 무늬가 선명하게 삭여져 있었다. 전국토를 망라하는 것이 선교요 그리고 애국이란 상징이 여기 환하게 비취고 있었다.


지역 책임의 교파교회

한 가지 주의 깊게 들여다 볼 것은 한국교회는 처음 선교사들이 활동할 때 소모적인 교파 간의 경쟁을 지양하기 위하여서 지역을 분할하여 선교하는 정책을 썼다. 1890년 선교정책의 교계예양이란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에 지역 책임 선교라는 전통을 일으켜 세웠다. 평안도 황해도 경상북도는 미국 북장로교, 함경도는 캐나다 장로교, 강원도 경기도는 감리교, 전라도는 남장로교, 경상남도는 호주장로교 이런 식이었다.

 교회는 지역에 대한 선교적 사명을 확인하여야만 했다. 땅에 대한 선교적 목회적 사명감에 불타야 했다. 지역의 의미는 교회의 사역에서의 영역감 기반감 확대감 사명감을 구체적으로 일으켜 주고 있었다. 내 강토를 애착과 눈물로 껴안고 망망 찬미하는 한국교회 신앙은 찬란하고 뜻 깊었다.

 이런 것은 국토에 대한 사랑과 선교 목회 의식을 높여주고 더 나아가 나라 사랑의 마음을 드높여 줄 수 있었다. 우리 한국교회에는 이런 전통이 유난히 드높았다. 한국교회가 3.1독립운동에서 전국적 동원체제의 동력(動力)이 될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여기 있었다. 3.1독립선언서에 이 국토의식이 강하게 반영되고 있었다. 곧 “신천지가 눈앞에 전개되도다.”


남궁억의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

3.1독립운동 당시 우리 겨레가 그 속에 다들 품고 있었던 내적 열기와 확신 그리고 희망 역량, 그런 것을 분출 전개하는 통로가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한국교회였다. 내적 동력을 표출하게 하는 데에는 그럴만한 상징적 거대 조직과 도덕성 그리고 신뢰감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당시 교회의 모습이었다.

 3.1독립운동 때에 일제군경이 전 민족에게 잔학행위로 상처를 안겨주고 도처에 교회당을 불태웠을 때에 남궁억이란 감리교회의 어른이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 하나님 주신 동산’이란 찬송가를 지어 함께 소리 높이 부르게 한다.

 3.1독립운동으로 우리 땅 삼천리가 겪은 상처가 첫눈에 띄었다. 곧 떠오른 이 땅 삼천리 반도였다. 곧이어 ‘금수강산’이라고 노래한다. 금수강산이란 비단으로 수놓은 강산이란 뜻이다. 어디가 비단으로 수놓은 듯 화려하다는 말인가. 어디를 보아도 피폐와 살상에 멍들어 땅을 치고 통곡하고 싶었는데, 어떻게 이 땅이 비단으로 수놓은 나라라는 말인가. 여기 한국교회의 거대한 신앙의 힘이 치솟고 있었다. 이 땅이 ‘하나님 주신 동산’ ‘반도 강산’이어서 일하러 가야 한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이 땅이 바로 우리가 일하러 갈 동산이란 것이었다. 여기는 봄 돌아와 밭 갈 때가 있고 곡식 익어 거둘 때가 있는 하나님 주신 동산이었다.  

 이 땅은 하나님 주신 땅이고 하나님께서 가서 일하라 보내신 강산이었다. 신앙과 국토가 이처럼 간절히 우리 교회에 드높이 들리어진 것이 3.1독립운동의 빛나는 영상이다. 우리 교회의 전통이다.


한국교회의 국토 사역의 전통

국토에 대한 사랑과 사명감은 우리 한국교회의 빛나는 유산과 전통의 하나이다. 1907년 윤치호가 편찬 간행한 ‘찬미가’에 처음 애국가 ‘동해물과 백두산’이 실린다. 그 애국가의 중심과 주제는 우리 땅이다. 이 기독교의 전통이 널리 퍼져서 우리나라 학교마다의 교가에는 반드시 산하(山河)가 노래되고 있다.

 1909년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 아서 브라운은 한국이 국제정세의 전략적 요충지요, 세계의 심장 지역이라 보고한다. 이것이 뉴욕타임스에 옮겨져 실린다. 미국교회도 한국의 국토와 그 사명감에 대해 눈이 띈 것이 있었다.

 한국교회 전통에 이런 국토애가 도처에 빛난다. 한국현대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1930년에 김인서는 이런 글을 남긴다. 곧 ‘조선천지의 것이라면 우리 조선의 일이라면 나무 한 그루인들 돌 한 조각인들 귀하지 아니한 것이 어디 있으랴’ 그러면서 감격해 이렇게 잇는다. 곧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땅에 예배당 짓고 하나님을 찬송하세’

 3.1독립운동은 한국교회가 전국에 대한 통괄력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런 힘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지금은 어떤가.


민경배(백석대학교 석좌교수)

 

기사입력 : 2019.02.03. am 09:4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