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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인생으로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사회에서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른바 ‘수저 계급론’이라고 불리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등의 단어들입니다. 이 단어들은 기발하고 재밌는 면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좋은 배경이 없이는 성공하기 힘들다고 생각하는 현대인들의 자조 섞인 고백입니다. 실제로 세상의 통념처럼 좋은 배경은 성공과 안락한 삶에 상당 부분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나 좋은 배경이 없다고 해서 풍성한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배경을 지니지 않았을지라도 성공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의 명운이 기울던 1908년 6월 21일, 일곱 명의 청년이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양의사가 됩니다. 이 중에는 박서양이라는 젊은이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놀랍게도 당시 사회 관념상 청진기와 하얀색 의사가운이 전혀 어울리지 않을법한 백정의 아들이었습니다. 당시 조선 사회에서는 갑오개혁 이후 신분제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으나 알게 모르게 신분의 벽이 존재했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낮은 신분인 백정의 아들이 서양의 교육을 받아 의사가 되었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본래 박서양은 세브란스의학교의 학생이 아니었고 당시 학교의 책임자였던 에비슨 선교사와의 인연으로 교내의 잡일을 맡아서 하던 허드레꾼이었습니다. 그런데 박서양이 학교의 여러 힘든 일들을 불평 없이 잘 해내자 그 모습을 보고 감명을 받은 에비슨 선교사가 그를 정식 학생으로 받아준 것이었습니다. 박서양은 어린 시절 전염병에 걸린 아버지가 의료 선교사에게 치료 받는 것을 보고 서양의학에 관심이 많았던 터라 서양의 의술을 배울 수 있게 된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더욱이 그는 사회에서 멸시받는 백정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에 크게 감격했고 누구보다도 학업에 힘썼습니다. 그 결과 21살의 나이에 세브란스의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인 최초의 양의사가 되었습니다.

 박서양은 의사 겸 세브란스의학교 교수로서 오랜 기간 일했는데 그의 명성이 어찌나 자자했던지 백정에서부터 양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치료를 받았습니다. 그는 1917년 경성에서의 안정적인 생활을 내려놓고 당시 조선인들이 대거 이주해 살던 만주로 건너갔습니다. 그곳에서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병원인 구세의원을 세워 독립군을 비롯한 많은 병자들을 치료해주고 숭신소학교를 설립해 후학을 양성하며 나라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오늘날 많은 현대인들이 배경이 화려하지 않는 이상 성공하기는 어렵고 심지어 먹고 사는 데 지쳐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것조차 힘들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배경은 한 사람의 인생을 크게 좌우하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평범하다고 해서 성공할 수 없거나 의미 있는 인생을 살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희망을 품고 최선을 다하는 삶은 누구든지 살 수 있습니다. 타인보다 다소 출발선이 뒤에 있었을지라도 조금 더 부지런히 조금 더 성실히 달린다면 우리의 인생은 분명 더 나아질 것입니다.

 

기사입력 : 2019.02.03. am 09:3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