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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에스라

이스라엘 백성 2차 포로귀환 이끈 지도자

민족의 리더, 정통 율법 학자, 실천 개혁가
이방인과의 통혼 철저 금지 등 회개 운동 주도

에스라는 ‘하나님은 나의 도움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학자이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2차 포로귀환을 이끈 지도자이다. 그는 시드기야 왕 때 바벨론으로 포로로 잡혀간 스라야의 아들로서(스 7:1∼5) 바벨론에서 출생했으나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였다. 에스라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바사의 왕에게 총애를 받는 사람이었다(스 7:6).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명망이 있었던 것이다.

 그는 바사 왕 아닥사스다 제7년(BC 458년)에 왕으로부터 예루살렘에 귀환하는 허락을 받았다. 그는 왕으로부터 성전을 건축할 물자와 금전을 지원받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뜻을 지닌 지원자들을 이끌고 예루살렘으로 제2차 포로귀환을 주도했으며 예루살렘에 귀환하자 부패한 도덕과 신앙을 개혁했다.

 에스라서의 저자로 알려진 그는 에스라 7장을 보면 1인칭으로 자신을 설명하며 이스라엘 역대의 대제사장 아론의 십육대손으로 엘르아살, 비느하스를 이은 사독 계열의 인물임을 서술한다. 그는 제사장이자 서기관이었으며 포로 후기 유대의 지도자였고 귀환 후에는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 삶을 살았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전에 가장 먼저 한 것은 금식 선포와 기도였다(스 8:21∼23).  에스라는 예루살렘 귀환 중 하나님께 드릴 성물과 금은보화를 가지고 가기 때문에 이것을 노리는 도적들이 있을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믿음을 가지고 결단했다. 그는 왕에게 자신들을 안전하게 호위해 줄 군대를 요청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왕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을 부끄러워했다(스 8:22). 그는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귀환하는 모든 길을 지켜 주실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기도했을 뿐이다(스 8:23). 하나님은 이 기도에 응답하셨고 그들을 치려는 사람들과 대적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셨다(스 8:31).

 그러나 예루살렘에 도착한 후 에스라는 매우 충격적인 모습을 접한다. 많은 유대의 남자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해 살고 있던 것이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은 구약 율법에서 철저히 금하는 것이었고(출 34:15∼16), 하나님이 금하신 이방 민족과의 결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게 한 죄 중의 하나였기 때문이다(스 9:10∼14). 이를 본 에스라는 몹시 기가 막혀 했다(스 9:1∼4).

 에스라가 먼저 회개했고(스 9장) 하나님의 성전 앞에서 엎드려 울며 기도하니 백성들도 함께 회개했다(스 10:1). 이어 에스라는 모든 이방 민족과의 결혼 문제를 즉각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대규모 집회를 소집했다(스 10:7).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과 결혼한 죄를 회개하며 이방 여인과 그들 사이에 낳은 자녀들과 헤어지기로 결단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죄를 청산했다(스 10:12∼19). 에스라가 이를 행한 이유는 본질적으로 이것이 민족이나 인종의 문제가 아닌 영적인 문제이고 심각한 죄였기 때문이다. 성전이 완성된 뒤 에스라는 백성들에게 율법책을 읽고 설명해주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도록 했다(느 8:1∼8).

 

기사입력 : 2019.01.06. am 09:36 (입력)
복순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