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⑭ 한서교회

한서 남궁억 선생이 세운 교회 

강원도 홍천군 남면 한서로 677에 위치한 한서교회는 남감리회 본처 선교사로 임명받은 한서 남궁억 선생이 세웠다. 1918년 당시 모곡(보리울)으로 불렸던 현재의 위치에 예배당과 학교 부지 5200평을 매입하고 10칸의 기와예배당을 세운 모곡교회가 한서교회의 전신이다.
 한서교회 근처에는 한서 남궁억 선생의 기념관이 있는데 그곳에는 근대교육가 독립운동가로서 활동한 그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생전 고종황제 영어통역관, 황성신문 주필, 독립협회 활동을 했다. 기념관 옆에는 모곡교회를 복원해 예전 예배드리던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찬송가 580장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을 지은 남궁억 선생은 복음 전파에 대한 소명과 애국정신이 투철한 독립운동가다. 전직 배화학당 교사 출신인 그는 교회와 함께 모곡서당을 설립했고 1922년에는 모곡학교를 개교해 학생들에게 국어·산술·역사·지리 등의 교과목을 가르치며 근대교육에도 앞장섰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우리나라 국화인 무궁화 보급에 앞장서고 민족적 찬송가와 동요를 짓는 남궁억 선생의 행보를 민족의식을 고취시킨다고 생각하여 그를 눈엣가시처럼 여겼고 1933년 체포했다. 남궁억 선생은 1936년 옥중에서 병들어 보석으로 석방된 후 1939년 4월 5일에 소천 한다.
 평생 십자가 사랑 민족 사랑을 외치며 살아온 남궁억 선생은 마태복음 9장 35∼38절을 묵상하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주여, 이 나이 환갑이 넘은 기물이오나 이 민족을 위해 바치오니! 젊어서 가진 애국심을 아무리 혹독한 왜정 하 일지라도 변절하지 않고 육으로 영을 감당할 수 있는 힘을 주옵소서.”
 현재 한서 남궁억 선생이 새벽마다 올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기도했던 유리봉에는 그의 묘소와 기념비(사진)가 세워져 있다.

 

기사입력 : 2018.12.23. am 10:06 (입력)
김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