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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말씀봉독>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9~12)

<등단 후 멘트>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오신 성탄절이 두 주 앞으로 성큼 다가왔습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을 우리가 어떻게 맞이해야 할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주러 오셨는데 우리는 움켜쥐고 가지려고만 하고 내려놓지 아니하고 항상 내 중심으로 살았던 우리의 모습을 회개하면서 진정으로 우리 주님을 우리 삶 가운데 높여드리고 주님을 더 사랑하고 주님을 더 닮아가고 주님을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예수님을 생각하면서 함께 찬양합니다.

<찬송가 32 : 만유의 주재>

(1절)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사람이 되신 하나님

나 사모하여 영원히 섬길 내 영광되신 주로다

(2절)

화려한 동산 무성한 저 수목 다 아름답고 묘하나

순전한 예수 더 아름다워 봄 같은 기쁨 주시네

(3절)

광명한 해와 명랑한 저 달빛 수많은 별들 빛나나

주 예수 빛은 더 찬란하여 참 비교할 수 없도다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1절)

만유의 주재 존귀하신 예수 사람이 되신 하나님

나 사모하여 영원히 섬길 내 영광되신 주로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예수님을 오래 믿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한 만큼 우리는 예수님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겉으로는 신앙의 모습으로 살았지만 그러나 우리 마음 속은 항상 내가 우선이었고 내가 앞섰습니다. 나 자신의 자존심을 지키려고 늘 자신을 모든 것에 우선순위에 두고 살았던 저희 들의 모습을 회개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서 모든 것을 다 내려놓으시고 이 땅에 오셔서 그 고난의 삶을 사셨는데 우리는 한없이 높아지려고 했던 저희 들의 연약함을 용서해주시고 성탄의 계절을 맞이하면서 우리가 예수님의 모습을 닮아갈 수 있도록 은혜 내려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 말씀의 제목은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입니다. 요한복음 1장 9절로 12절을 본문으로 해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이와 같은 제목으로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말씀의 제목을 따라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예수님은 누구십니까? 예수님은 누구시기에 2천 년 전에 태어나신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성탄절, 크리스마스를 온 세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지 안 믿든지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도 이 날을 축하하며 크리스마스로 지키고 있습니까? 성탄절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날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해마다 크리스마스가 오면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놀고 파티를 하고 선물을 주고받는 등 요란하게 성탄절을 보내는데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그렇게 성탄절을 맞이하면 안 될 것입니다.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 그 예수님 사랑합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서 더 경건해지고 더 낮아지고 또 깨어지고 더 변화된 모습으로 성탄절을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주위에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나누는 그와 같은 성탄절이 되었으면 합니다. 요한복음 1장에 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서 우리에게 이와같이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1. 말씀으로 존재하신 예수님

첫째로, 예수님은 말씀으로 존재하셨다고 우리에게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장 1절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예수님은 태초로부터 말씀으로 존재하셨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신비 가운데 하나가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신데 한 분이신 하나님이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고 믿음 안에서 이해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시며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존재하셨던 말씀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할 때 하나님과 함께 하셔서 창조의 귀한 역사를 이루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은 설명합니다. 요한복음 1장 3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골로새서 1장 16절에

“만물이 그에게서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과 혹은 왕권들이나 주권들이나 통치자들이나 권세들이나 만물이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가 주님의 이름을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이름을 높여야 하는 것입니다.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 제3번 마지막 곡이 죽임당하신 어린 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그다음에 아멘 코러스가 이어집니다. 이 찬양의 가사는 헨델이 요한계시록에서 인용한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5장 12절에서 13절은 이와같이 말씀합니다.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피조물이 이르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우리가 주님을 찬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찬송과 존귀와 영광을 주님 홀로 받으시옵소서. 알게 모르게 우리가 교만하여서 주님이 받을 영광을 도둑질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 때문에 내가 받는 박수갈채고, 주님 때문에 받는 내가 그러한 칭찬이라고 생각하고 늘 더 낮아지기를 바랍니다. 주님만이 홀로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셔서 온갖 고난을 겪으시고 십자가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에 첫째도 감사요, 둘째도 감사요, 마지막도 감사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과 동행하면서 절망에 처한 사람들에게 희망을 전하고 슬픔에 처한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하며 분노와 미움에 사로잡힌 자들에게 용서와 사랑을 전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합니다. 그 같은 새로운 창조의 역사가 우리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2.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둘째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한번 따라 해 보세요.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라고 말씀합니다. 죄와 절망으로 가득한 이 세상에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참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4장 6절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 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유일한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유일한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를 믿으면 우리는 주님을 통하여 저 천국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 만이 구원의 길인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생명, 영생을 부어주십니다.

헬라어 원어로 ‘조에’라고 하는데 ‘조에’는 주님이 주신 영원한 생명을 말씀합니다. 예수 믿는 순간 우리에게 영생이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내 삶을 마치고 내 생이 끝나도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는 그 순간 저 천국으로 올라가서 영원토록 우리 하나님과 함께 주님을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 만이 우리의 참 진리가 되십니다. 세상에 진리는 자꾸 바뀝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세상의 진리는 변질되고 바뀌지만, 우리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진리가 되셔서 바뀌지 않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그 예수님이 우리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 가운데 살고 있던 사람이 예수를 믿기만 하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 되신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그 순간 바뀌어버리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12절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라고 말씀합니다. 바로 그 순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내 마음 가운데 들어오셔서 내 마음에 거하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주님과 함께 살고 주님이 나의 일생을 인도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23절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이제는 주님과 함께 동행하며 주님과 함께 사랑을 나누며 이 사랑을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알지 못합니다. 왜 영적으로 눈이 멀었기 때문에 영적으로 눈이 먼 사람은 우리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아무리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놔도 보지 못하는 것처럼 우리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으면 영의 눈이 멀어서 죄에 어두움의 눈이 가려져서 절망의 흑암 속에 살다가 그 속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5절에 이와 같이 설명합니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그리고, 9절 10절에는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고 기록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에게 이 생명의 빛을 비춰야 합니다. 여러분 주변에 여러분 친척 가운데 아직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그들에게 가서 생명 되신 예수님을 전해야 됩니다. 우리가 그들의 영의 눈을 뜨게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기도하고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 하게 될 때 성령님께서 감동함을 주셔서 영의 눈이 뜨여지고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워싱턴 뉴욕 순복음제일교회를 팔 년 반을 섬기면서 많은 성도님들을 섬겼는데, 그 중에 잊을 수 없는 한 성도님이 계십니다. 이 분은 슈퍼마켓 앞에서 이렇게 넋 놓고 있는 것을 구역장님이 전도한 분입니다. 우리 구역장님이 슈퍼마켓에서 물건을 사서 나오는데 웬 할머니 한 분이 넋을 놓고 이러고 앉아있습니다. “할머님, 할머님 누구 기다리세요.” 아무 대답이 없습니다. “할머니 예수 믿으세요? 교회 다니세요?” 고개를 젓습니다. “할머님, 이번 주일날 제가 할머님 모시고 저희 교회 가기를 원해요.” 이 분은 한 번도 교회에 발을 들여다 본 적이 없는 분입니다.

“할머니 주소 적어주시면 제가 일요일 날 아침에 할머니 모시러 갈게요.” 그래서 이 분의 주소를 받아가지고, 주일날 모시고 왔습니다. 예배가 끝난 다음에 저한테 그 할머님을 모시고 기도를 받으러 왔습니다. 그런데 할머니를 처음 뵈니까 머리에 부스스 풀어헤치고 눈은 초점이 없어요. 멍하니 계시는데 말 못 할 큰 고민이 있는 분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해 드린 다음에 그 구역장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곳 담당 전도사님하고 이번 주에 심방 갈 테니깐 그 분에게 연락해서 심방 예배 드릴 준비를 하라고.

이렇게 처음 교회에 나온 분은 그 주에 심방 나가서 딱 붙잡아 놓아야 돼요. 그래야 교회를 안 떠납니다. 그래서 화요일 날 아침에 교역자 기도회를 마치고, 그 집에 심방을 갔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그렇게 힘들고 어렵게 사시는 분 집에 처음 가 봤어요. 영세민을 위한 정부 임대주택에 사시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까 집이 전혀 정리가 안 되어있고, 쓰레기는 널려있고 아주 어지러운 환경 속에 살고 계시더라고요.

열다섯 살짜리 손자가 있는데, 배가 고프다고 울고 있고 먹을 것이 없어서 식빵을 뜯어먹고 있더라구요 식빵을. 그 당시 미국에서 1불을 주면 식빵을 이만큼 주거든요. 그렇게 식빵을 뜯어먹고 있어요.

그래서 예배를 드리고 난 다음, 이제 할머님 이야기를 듣는데 할머님이 “저희 집에 이렇게 손님이 와서 이렇게 찾아준 것은 목사님 교회가 처음입니다.” 그 다음 하는 말이 “목사님 저는 매일 죽지 못해 삽니다. 눈만 뜨면 죽을 생각을 합니다. 우리 남편이 알콜 중독입니다. 한 달 넘게 가는 직장이 없습니다. 돈만 생기면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쫓겨나고 쫓겨나고 완전히 알콜 중독으로 폐인이 되어있습니다. 제 아들도 알콜 중독입니다. 그런데 알콜 중독뿐 아니라 마약에 손을 대가지고 지금 감옥에 가 있습니다. 감옥에 가니까 며느리가 도망을 가버렸습니다. 열 다섯 살짜리 손주 녀석 하나 두고 도망갔습니다. 제가 딸이 하나 있는데요, 이 딸이 또 알콜 중독입니다. 어느 날 집을 나갔는데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살았는지 죽었는지 소식이 끊어졌습니다. 그래서 너무너무 인생이 힘들고 어려워서, 제가 죽으려고 이 포토맥 강. 서울의 한강 같은 곳입니다. 워싱턴 한 가운데 흐르는 포토맥 강 거기 다리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려고 갔다가 저 손주 녀석이 눈에 밟혀서 또 돌아오고 너무 힘들어서 또 갔다가 또 돌아오고 제가 이렇게 삽니다. 제겐 아무런 희망이 없습니다. 남편도 아들도 딸도 내게는 다 고통과 절망을 가져다주는 대상일 뿐입니다.”

너무나 안 됐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간절히 기도해 드리고 함께 간 구역장님에게 우리 할머님 댁에 매달 기본적인 생활을 하실 수 있도록 음식을 살 수 있도록 150불씩 지원해드리라 하고 교회에 와서 그분을 놓고 기도를 하는데, 다음 주일 날 예배시간에 예수님의 부름에 일어나라고 하니깐 벌떡 일어나더라고요. 예수님을 영접했어요.

그날 이후로 그분의 운명이 바뀌었습니다. 다음 주일날 오셨는데, 머리 딱딱 바르게 하고 눈이 초롱초롱하고 그 다음 이분이 은혜를 받아가지고, 주일 날 이 앞에 앉아있는데 주일 날 예배 4번 드렸거든요. 1부 때도 거기 앉아있고, 2부 때도 거기 앉아있고, 3부 때도 거기 앉아있고, 4부 때도 거기 앉아있고 이 분 때문에 제가 1, 2, 3부 같은 설교를 하는데, 설교를 조끔씩 바꿔야 돼요 그분이 거기에 밤낮 앉아 있어가지고 말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분이 은혜받은 다음 주일 날부터 찬송을 부르는데, 손을 들고 눈물을 흘리면서 찬송을 부르는 거예요. 그 모습을 보고 제가 감동이 되었습니다. 눈물을 줄줄줄 흘리고 있어요. 여러분! 사실 찬양하면 손 올리는 것 쉽지않아요. 이 손이 잘 안 올라간다고요. 장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손이 올라가는데 몇 년이 걸린대요. 은혜를 받아야지 올라가거든요. 은혜를 받아야지. 이분은 첫 날부터 손을 들고 막 울어요. 찬송을 부르면서 그렇게 울어요. 나중에 그 담당 교구장 전도사님이 저한테 와서 보고합니다. 구역장님이 그러는데요 그 분이 태어나서 처음으로 우리 교회 나왔는데, 찬송가 1장부터 끝장까지 못 부르는 찬송이 없데요. 어 그래요? 그런데 곡조가 다 똑같데요. 가만히 들어보면 “세상을 넘어 험곡에 가도 빛 가운데로 걸어가면(일정한 높낮이로)” 그렇게 부르고 있어요.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한결같은 높낮이로)” 그렇게 부르는데 가사에 은혜받으면 됐지요 뭐. 그저 눈물을 흘리면서 찬송가를 부르는 모습에서 제가 얼마나 감사한지 늘 눈물바다에요.

그렇게 6개월이 지났는데요 이분이 주일예배 다 나오죠, 새벽예배 매일같이 나오죠, 수요예배 나오죠, 금요예배 나오죠, 하여간 예배란 예배는 다 나오는데, 하나님께서 은혜를 얼마나 주셨는지 6개월이 지났는데 주일예배 후에 저한테 막 뛰어왔어요. 그러면서 “목사님 목사님! 내 남편이 술을 끊었어요. 다음 주일부터 교회 나온대요” 할렐루야!

6개월 만에 그 술주정뱅이가 알콜 중독자가 술을 끊고 교회를 나왔는데요 기적 중의 기적입니다. 그 다음 주일날 남편과 함께 와서 앞자리에 딱 앉아있는데 그날은 더 울더라고요 너무 감격해 가지고. 남편분은 그냥 눈치만 보고 앉아있고 그로부터 또 2달이 지났습니다. 예배 후에 또 저한테 달려왔어요. “목사님! 목사님! 제 아들이 감옥에 갔잖아요. 감옥에서 편지가 왔는데요. 감옥 안에서 예수님을 믿게 되었대요!” 할렐루야!

감옥 안에서 복음을 전해 듣고 아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 내가 감옥에서 나오면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겠다. 내가 마약에 손을 대지 않겠다. 그래서 이 편지를 어머니한테 보내온 겁니다. 또 두 달이 지났어요. 또 막 달려왔습니다. 목사님 목사님 집 나간 딸이 돌아왔어요. 우리 마가렛이 술 끊고 돌아왔어요. 얼마나 감사한지 일 년이 지나서 아들이 감옥에서 나왔는데, 그때 온 가족이 와서 예배드리는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할머니는 제대로 돌아와서 가슴 딱 피고 들어오고, 뒤에 남편이 고개를 숙이고 따라 들어오고, 그 뒤에 아들이 그 손주 녀석 손 잡고 들어오고, 맨 뒤에 딸이 들어와서 앞줄에 딱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데 얼마나 그 모습이 은혜가 되는지 예수님이 바로 그 가정에 생명의 빛을 비춰주셨기 때문에 절망 중에 죽어가던 가정이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절대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인생을 포기하면 안 돼요. 인생을 포기하던 사람도 건져내야 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생명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에요. 한 두어 달 또 지났는데 또 막 저한테 달려왔어요. “목사님! 목사님! 저희가 새집을 사서 이사를 가게 되었어요. 저희 집에 와서 예배 좀 봐주세요”

미국은 우리나라하고 달라서 집을 살 때, 30년 월부로 삽니다. 30년, 모기지론이라고 해서 30년 동안 집값을 내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 집에 매달 그 집값을 낼 수 있는 수입만 있으면 집을 줍니다. 그런데 남편도 술 끊고 직장을 얻고, 아들도 술 끊고 직장을 얻고, 딸도 술 끊고 직장을 얻어 가지고 세 사람이 합치니까 집을 살 수 있는 돈이 매달 들어와요. 그래가지고 집을 사서 그 집에 예배를 드리러 갔는데 아주 집도 번듯하고, 훤하고, 방도 많고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아! 예배를 드리는데, 그날도 눈물바다가 되었어요. 그분은 참 예배만 드리면 어쩜 그렇게 예배만 드리면 그렇게 우시는지 눈물이 나는데 저는 그분이 부러워요. ‘대단하구나 저 분!’ 예배가 끝나고 이제 과일을 가지고 오셨어요. 근데 궁금하더라고요. 1년 2개월 전에 이 집에 심방 왔을 때는 냉장고가 텅텅 비고, 어린 손자가 식빵만 뜯어먹던 그 때가 생각나가지고, 냉장고를 일부러 가서 열어봤어요. 그랬더니 꽉 찼어요. 그냥. 냉장고도 부흥했더라고요.

이것이 예수님의 복음의 가정이 들어간 축복입니다. 생명의 빛이 비치게 되면, 이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그 생명의 빛을 우리가 만방에 비춰서 절망에 처한 사람들을 구원해 내야만 될 것입니다.

3.은혜와 진리이신 예수님

셋째로 예수님은 은혜와 진리십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의 말씀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셔서 고난을 당하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이 땅에 오신 그 땅을 육신을 입고 오신 사건을 신학 용어로 성육신, “인네이션”(Icanation)이라고 합니다.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죄 없으신 예수님이 그 고난을 당하시고 멸시 천대를 받으시고 조롱당하시고 온몸이 찢어지게 그 채찍질을 당하시고 피를 흘리시면서 그는 찢어지는 고통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두 손과 두 발에 못이 박히시고 머리에 가시면류관을 쓰시고 피를 흘리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오셔서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돌아가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29절에 침례 요한이 말합니다.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예수님 스스로 낮아지시고 스스로 저주받은 자가 되어주셔서 온 인류의 죄와 저주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아 이 자리에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진리입니다. 우리가 이 주님의 은혜를 잊으면 안 됩니다.

예수님 그 은혜에 감사합니다. 한평생 내가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살길 원합니다.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가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단 하루 한순간도 은혜가 없으면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주여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에게 그 은혜를 부어주셔서 주님의 은혜로 살게 하여 주시고 말씀을 깨닫게 하여서 진리 안에 거하게 하여 주셔서 은혜와 진리 가운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하고 날마다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늘 높아지기 원하고 더 갖기 원하고 섬김의 자리 보다 섬김을 받는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데 예수님은 정반대의 삶을 사셨습니다. 낮아지시고 섬기시고 희생하신 것입니다. 십자가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낮아짐과 희생입니다. 죽음입니다.

천국 가신 허우석 선교사님이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라고 하는 책을 쓰셨는데 이 선교사님은 23살 때 예수님을 믿은 다음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 한 달 후에 일생을 주님께로 드리기로 헌신하고 신학교에 가서 주의 종이 됐습니다. 1991년 신촌교회 파송을 받고 브라질 아마존에 선교를 떠납니다. 아마존의 이 동양사람이 와서 복음을 전하니까 저들이 외부에서 사람이 왔다고 독이 든 음식을 줘가지고 중태에 빠지기도 하고 또 독충에 물려서 온몸이 피고름으로 얼룩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 20여년 사역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예배당과 건물 17동을 짖고 신학교를 세워서 100명의 졸업생과 50명의 목사를 배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2010년도에 폐암 말기 암 판정을 받고 암과 싸우시다가 2014년 9월 12일 천국 가십니다. 그런데 이때 피를 토하면서도 쓴 책이 바로 『내가 왕바리새인입니다』하는 책입니다. 그런데 그 책에 이런 고백이 나옵니다.

“병에 걸리자 나는 순식간에 멸시와 모욕을 받는 낮은 자리로 추락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낮아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생명을 얻는 길입니다. 질병의 고통으로 인해,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인해 내가 겸손해지고 온유해지는 것, 이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그전에는 본인이 선교를 잘한다고 오는데 마다 자기를 초청해서 강사로 서고 대접을 받고 또 연세대학교에서 언더우드 선교사 상도 받고 우쭐했습니다. 본인이 그때 잘하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본인이 폐암으로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니까 주님이 보여주신 것입니다.

“네가 받은 영광은 네가 받을 것이 아니라 내가 받을 것인데. 그것은 내가 원하는 길이 아닌 반대의 길이었다.”

고 주님이 말씀하셨고, 그렇게 깨우쳐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잠시 나의 길은 십자가의 길입니다. 낮아지는 길입니다. 섬기는 길입니다. 희생하는 길인 것입니다. 이제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나와 함께 가자! 고난의 자리에 나와 함께 가자. 절망의 자리에 상처투성이로 고통당하는 저들의 자리에 함께 가자!”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여러분 “아멘!”으로 결단하시고 주님을 따라가시는 여러분 되시길 바랍니다.

<찬송가 324장: 예수 나를 오라 하네>

(1절)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예수 나를 오라 하네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4절)

주가 크신 은혜 내려 나를 항상 돌보시고

크신 영광 보여주며 나와 함께 함께 가시네

주의 인도하심 따라 주의 인도하심 따라

어디든지 주를 따라 주와 같이 같이 가려네

<기도>

사랑이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를 용서하여 주옵소서.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다 주님 보시기에 부끄러운 신앙인들이었습니다. 예수님보다 내 자신을 사랑했고 예수님을 높이는 것보다 내가 높임 받는 것을 더 좋아했고 예수님보다 세상 것을 갖는데 더 관심이 많았던 것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주님은 다 버리시고 낮아지시고 온몸을 찢기시고 피 흘리시며 아낌없이 다 주셨는데. 다 주시고 마지막 생명까지도 우리에게 주시고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는데 우리는 주님을 위해서 드린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주님 때문에 이렇게 복 받은 인생을 살면서도 감사하지 못했습니다. 더 갖지 못해서 불평했던 것을 회개하오니 용서해주시고 우리들의 남은 일생이 주님 앞에 진정한 감사와 찬양과 영광을 돌려드리는 그러한 인생이 될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함께 하여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8.12.09. am 10:5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