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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나가사키

순교의 피가 서려 있는 땅

 일본 큐슈 북서쪽에 위치한 나가사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이 투하된 곳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하우스텐보스 같은 관광지로 유명하다. 나가사키는 일찍부터 서구 문화를 받아 들였고 이 때문에 460여 년 전부터 기독교 신앙의 중심지가 됐다.  
 16세기 중반 많은 선교사들이 이곳에 와서 생명을 바쳐 헌신했고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졌으며 대부분의 주민들이 크리스천이었다. 그러나 400년 전 박해가 시작되면서 수많은 크리스천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순교의 피를 뿌려야 했다.
 나가사키 지역에서는 신자들의 개종을 위해 운젠지옥(식물이 자라지 않는 곳, 雲仙地獄)의 끓는 온천물을 붓거나 거꾸로 매달아 오물에 머리를 묻는 고문 등이 자행됐다. 선교사와 성도들을 십자가에 달아 창으로 찔러 죽이고, 기둥에 묶어 장작불로 태워서 죽이는 등 잔인한 처형이 시행됐다.  


 오오무라 남쪽 국도 근처의 작은 언덕 위에 있는 미야자키 감옥이라고도 불리는 스즈타 감옥은 성도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혹독한 고통을 참아내야 했는지 그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이 감옥은 1618년 12월에 나가사키에서 체포된 선교사와 성도 30여 명이 1622년 9월까지 수감되었던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현재 감옥 터에는 당시 감옥의 크기를 가늠할 수 있는 나무 울타리와 십자가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스즈타 감옥은 가로 3.6븖에 세로 5.6븖로 겨우 일본식 돗자리인 다다미 12장 넓이에 나무로 엮어 만든 새장과 같은 좁은 감옥이었다. 비가 오거나 한겨울에 눈이 내리면 추위를 피할 수도 없는 혹독한 환경이었고 많을 경우에는 33명이 함께 있어서 누울 수도 없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고 한다.


 감옥에 수감된 성도들은 밥과 소금만 먹으며 생명을 이어갔다. 스피노라 선교사가 감옥에서 쓴 서신에는 “내복과 겉옷을 밖에서 세탁하거나 햇볕에 말리는 것도 금지되어 심히 불결하며 용변도 감옥 내에서 하지 않으면 안 되어 악취가 진동하고 밤에는 등불조차 없어 신체의 전 감각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라며 당시의 참상을 상세히 기록하고 있다. 스즈타의 감옥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고 갇혀 있던 크리스천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고통의 생활을 보냈다. 당시 1세의 아기였던 치요와 13세의 소년이었던 치마츠 남매가 부모와 함께 체포되어 부모가 처형된 이후에도 비좁은 감옥 안에서 75세와 74세로 숨을 거둘 때까지 60여 년 이상을 고통 가운데 생존했다고 한다. 이런 고난 속에서도 감옥 안에는 찬송이 울려 퍼졌고 성도들은 신앙을 잃지 않았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여러 명이 사망하고 스피노라 선교사 등 24인은 1622년 9월 나가사키로 호송되어 나가사키의 니시자카 언덕에서 순교했고, 프랑코 선교사 등 8명은 같은 해 9월 오오무라의 호코바루에서 순교했다.
 호코바루 처형장은 1657년 131명의 기독교인의 머리를 잘라 염장을 해 형장에서 그대로 방치한 곳이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끌려온 조선인 성도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토쿠가와 이에야스의 에도막부는 호코바루 처형장에서 참수된 순교자 131인을 인적이 드문 대나무 숲 속에 두 개의 구덩이를 파고 매장했다. 매장 후 3일 만에 몸체를 다시 파내어 오오무라만에 버렸다. 머리와 몸을 따로 매장한 이유는 죽은 크리스천이 부활할 것을 겁냈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은 처음 매장한 장소에서 약 150븖 떨어진 남쪽에 몸체무덤비가 세워졌고 500븖 떨어진 곳에 머리무덤비가 세워져 있다.  
큐슈(일본)=글 사진 이미나 기자

 

기사입력 : 2018.10.28. am 10:01 (입력)
이미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