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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성도 수가 급증함에 따라 생긴 위기

 폭발적으로 성장해가던 초대교회에 심각한 위기가 닥쳤다. 물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도들이 유대 종교 당국에 체포되어 감옥에 갇히고 공회 앞에서 심문을 당한 것만 두 차례였다(행 4:1∼21, 5:17∼41). 또한 교회 내부에서도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거짓 헌금 사건이 일어났었다(행 5:1∼11). 그런데 이번 위기는 이전 것들과는 사뭇 차원이 다른 것이었다. 교회가 둘로 쪼개지게 될 위기에 놓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어느 특정인이 잘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니었다. 굳이 그 원인을 따지자면 교회의 엄청난 부흥이 이 같은 상황을 가져온 것이다. 다시 말해서 교회 제도는 그대로인데, 성도 숫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과거의 시스템으로는 그 많은 성도들을 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서대문에서 폭발적으로 부흥했을 때도 이에 대응하여 여러 가지 조직을 만들게 되었다.

 초대교회가 급성장해 구성원이 다양하게 됨에 따라 구성원 간의 갈등이 발생했다. 교회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수행해 온 구제사역에서 문제가 생겼다. “밭과 집 있는 자는 팔아 그 판 것의 값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그들이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는 방식으로 구제사역을 진행하다 보니, 교회 내에 “가난한 사람이 없게” 될 정도였다(행 4:34∼35). 그런데 “제자(= 사도행전에서는 ‘믿는 자’)가 더 많아지자”(행 6:1) 교회 재정이 따라갈 수 없는 한계에 이르렀다. 그러자 자연히 교회의 구제사역이 못 미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초대교회에는 ‘토박이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살다가 본토로 역이민 온 ‘해외파 유대인들’도 상당수가 있게 되었다. 성경은 토박이 유대인들을 가리켜 ‘히브리파 유대인’이라고 부르고, 해외파 유대인들을 ‘헬라파 유대인들’이라고 부른다(행 6:1). 아마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가 달랐기 때문에 이런 명칭이 생겨난 듯 하다.
 그런데 교회가 과부들을 구제할 때 팔이 안으로 굽는다는 말이 있듯이, 토박이 과부들에게는 구제가 제대로 진행된 반면에 해외파 과부들은 번번이 이에서 빠지게 되자 ‘헬라파 유대인들’이 ‘히브리파 유대인들’을 원망하기에 이르렀다. 당시 직계 가족이나 친척이 없는 사고무친한 과부는 교회가 구제하지 않으면 생계가 막연했다(딤전 5:3∼16 참조). 그러니 헬라파 과부들이 적절한 도움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 큰 문제로 여겨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열두 사도는 매우 현명한 판단을 내렸다. 그들은 모든 성도들을 모으고 나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않다”(행 6:2)고 말했다. 이것은 성도 수가 적을 때는 사도들이 구제도 하면서 말씀 사역도 감당할 수 있었지만, 성도수가 눈덩이처럼 불어난 후에도 과거 방식대로 이 두 가지를 같이 하다 보니 이와 같은 상황이 초래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이었다. 그래서 사도들은 성도들에게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면, 그들에게 교회 행정을 맡기고, 자신들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전념하겠다고 선언하였다. 그러자 비로소 온 무리가 만족해하면서, 일곱 명의 사역자, 즉 스데반, 빌립, 브로고로, 니가노르, 디몬, 바메나, 니골라를 택하자, 사도들이 안수함으로써 초대교회의 지도자들로 세움 받게 되었다.

 공동체 내의 충돌을 꼭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사도들이 자신의 권한을 내려놓았을 때 자칫 분열될 위험에 있던 교회가 하나로 봉합되었고, 교회 성장의 기세는 더욱 거세어져 갔다.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흔히 위기(危機)는 ‘위험’인 동시에 ‘기회’라고 한다. 초대교회는 문제나 갈등이 전혀 없는 유토피아가 아니었다. 그렇지만 성령께서 함께하셨을 때 문제와 갈등이 초대교회가 견고히 서가는 발전의 초석을 다지는 기회가 되었다. 아이들도 아프면서 크고, 싸우면서 성장한다고 교회내의 문제가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물론 잘 처리될 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두 말 할 나위가 없는 것이겠지만…

김호성 부목사(목회신학담당)

 

기사입력 : 2018.10.14. am 09:12 (입력)
김성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