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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속의 희망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장 3절)

 오늘 아침예배에 ‘저는 희망을 갖자.’ 이와 같은 내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보면 경제적인 문제, 전투적인 문제, 국가적인 문제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은 문제가 쌓여 가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세계에 개인, 가정, 사회 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소망입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소망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예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이 소망을 달라고 하면 “소망을 주지. 내가 바로 소망인데.” 주님은 우리의 소망이 되시기 때문에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것입니다.

1. 빛이신 예수님

 세상이 하도 추해지고 어두워지니까 우리들을 건져달라고 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그 기도를 응답하기 위하여 어둠이 가득한 이 세상에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어둠을 빛으로 정복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요한복음 1장 4절에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이 생명이 사람들의 빛이라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영은 죽어있으니까 하나님이 오시면 사람의 마음에 영의 등불이 다 켜지고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기 때문에 예수님이 그걸 통해서 인생에 빛으로 들어오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당시 그때로부터 시작해서 600년 전에 예수님 오시는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사야 9장 2절에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빛이 비치는 이 세상을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를 말미암아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생명의 빛으로 오신 것입니다. 어두운 가운데 우리가 넘어지지 아니하고 길을 바로 설 수 있는 것은 빛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빛이 바로 예수그리스도인 것입니다.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사람이 너무나 많습니다. 지난해 시민희망지수를 조사했는데 전체 연령 중에서 30대가 가장 비관적이라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30대라면 가장 힘차게, 가장 의욕적으로 일할 나이인데 우리나라의 30대는 우울증을 앓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우울증에 걸려 있고 이 세상에 희망이 없다고 낙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치열한 경쟁사회에서 지치고 고달픈 삶을 살고있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 누가 그들을 구출할 수 있습니까? 마음에 힘과 생명을 주어야 하는데 예수그리스도 이외에는 빛과 힘을 줄 곳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이 힘이요. 빛이요. 생명이요. 그러므로 그 예수님이 들어와야 힘과 능력과 용기와 미래가 있지 그렇지 않고는 아무것도 희망을 얻을 데가 없습니다.

 주님께 희망이 있을까?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들은 절망이라는 깊은 바다속에 허우적거립니다. 그러면서 “내 삶에 희망이 있을 것인가?” 그 질문을 늘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 그 질문에 이렇게 대답하실 것입니다. “주님 내게 희망이 있습니까?” “있고말고. 내가 그 희망 아니야?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얼마나 깜짝 놀랄 좋은 소식입니까? “희망이 있습니까?” “있고말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이루신 이 일들은 찬란합니다. 어둠으로 가득한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오중복음의 축복속에 들어가게 만드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피 흘림으로 모든 흉악한 죄가 다 용서하고 의로운 사람이라 주님이 시인해주셨는데 예수님의 보혈로 행위가 없이 용서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 것입니다. 에베소서 1장 7절에 보면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일평생의 용서를 영원히 받은 것입니다.

 예수님은 또한 고통을 통해서 병의 세계를 다스립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예수님이 채찍에 맞을 때마다 우리들의 병이 고침을 받는데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 때문에 채찍에 맞은 것을 믿어야 주님 얻어맞은 그 피가 효과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난에 허덕이는 이 세계에 오셔서 저주를 청산해버린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로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람들은 이 성경을 해석을 정직하게 하지 못하고 너희로 부요케 할 것이라고 너희 영혼이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육체의 생활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세상에 와서 아담과 하와가 죄지은 벌로 저주를 받아서 헐벗고 굶주리고 살아온 그 모든 세월과 그 모든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십자가에 못 박힌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가 십자가 못 박히고 피 흘림으로 모든 가난과 저주를 처치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 믿으면 잘 살게 됩니다. 제가 건방진 말인 것 같지만 한참 6.25 전쟁을 하는 그 마당에 남쪽에서 남부여대하고 서울로 서울로 올라왔어요. 서울 시내에 조그만 틈만 있으면 천막을 치고 들어가 살 때였습니다. 저보다 나이가 어린 여러분은 그때 상황을 잘 알 것입니다. 내가 강단에 서서 내려다보면 이 4부에는 나이 많은 사람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그 때 나하고 같이 주님을 믿었으니까 고생을 많이 같이 했어요. 여러분이 고생을 한 것을 알아주는 사람을 좋아하고 제가 함께 고생했으니 친숙함이 깊기때문에 고생한 사람이 많이 우리 교회에 나오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물지게 지고 잡상인도 있고 가난하고 어려움을 해보려고 고통 많이 했는데 우리교회 와서 예수 믿고 용기와 힘을 얻고 난 다음 요사이는 그 사이 빵빵 자가용을 타고 와요. 굉장히들 부자가 됐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서 흘린 보혈로 네 죄와 병만 아니라 물질문제도 주님이 해결해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한 그가 가난하게 된 것은 그의 가난을 인하여 너를 부요케 하려 함이라. 우리가 축복을 받고 부요케 되었으니 하나님 앞에 정말 감사하고 살아야 됩니다. 그다음엔 죽음, 죽음의 문제를 예수님이 해결하셨는데, 우리가 살면서 겪는 가장 큰 절망은 죽음입니다. 60년 동안 제가 목회하면서 많은 사람의 장례에 참석하기도 하고, 또한 장례식 설교를 했는데, 그럴 때마다 말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느꼈습니다. 특히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거나, 어린 자녀들을 둔 어머니가 세상을 뜬 것을 볼 때는 정말 마음이 뭐라고 말할 수 없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죽음이라는 이 권세를 고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에서 죽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은 한 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입니다. 죽음을 다스릴 수 있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인성 과부의 외아들이 죽어서 관에 넣어서 묻으러 가는데, 통곡을 하고 비참한 눈물을 흘리고 가는데 예수님이 “거기 서라. 잠시 서라.” 그리고 관 뚜껑을 열고, “왜 이렇게 잠을 오래 자냐? 일어나” 그러니깐 “와, 오래 잤네.”하면서 일어났습니다. 뭐가 대단합니까? 완전히 죽어 파묻으러 가는 사람이 예수님의 한마디에 일어났습니다.

 그 다음 예수님이 사랑하는 마르다, 그리고 나사로 이들이 한 가정으로 사는 것인데, 여기에는 예수님이 사랑하는 나사로가 병들었다가 죽어서 예수님께 연락을 해도, 그때의 통신수단으로는 빨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의 무덤은 파헤쳐서 흙을 얹지 않고, 굴에 그냥 넣습니다. 다 묻으면 산굴에 무덤을 넣어서 무덤 문을 돌로 만들어서 막습니다. 그런데 여기 나사로는 무덤에 들어간 지 나흘이 됩니다. 냄새가 납니다. 사람들마다 다 절망을 느끼고, 그 누이들은 ‘예수님이 너무 섭섭하게 일을 해주신다. 평소에 우리를 사랑해 주시더니 우리 형제가 이렇게 죽어서 무덤에 가서 안치하도록 기다릴 수가 있나. 이렇게 형편없이 대해주니 마음이 변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 무덤에 가서 “무덤 문을 열어 놓아라.”하니깐 마르다가 “주님, 열어 놓는다고요? 무덤에 이미 들어가서 썩어서 냄새가 나는데 무덤의 돌문을 열어서 뭐합니까?” 그러니 예수님이 마르다를 딱 정면으로 보고, “날 봐. 네가 하나님을 믿으면 기적을 볼 것이라고 늘 말하지 않았냐. 너희 오라버니가 살아날 것을 믿으라.” 믿으면 돌문을 옮겨 놓고, 믿지 않으면 그대로 가는 것입니다. 그래 그 여형제가 돌문을 열어놓았습니다. 돌문을 열어놓은 믿음은 행위를 믿음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쉽게 말하면 그릇입니다. 적은 믿음은 적은 그릇이고, 큰 믿음은 큰 그릇입니다. 그러므로 작게 믿으면 작은 기적밖에 체험 못 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힘이 얼마나 큰지, 그 작은 겨자씨의 믿음도 태산을 옮겨 놓을 수가 있다. 그럼 그런 겨자씨 믿음이 어디서 나옵니까?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그것이 마음에 심어지면 태산을 옮기는 믿음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리기 위해서 엄격해졌을 때, 그 여자 형제들 마음속에 겨자씨보다는 큰 믿음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예수님이 “나사로야, 나오라!” 나흘 만에 수의를 입은 채 나사로가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2. 희망으로 가득한 삶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하는 신앙을 자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희망과 기쁨으로 충만하기를 원합니다. 죄의 어두움이 세상을 다스릴지라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고 모시면 희망찬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흑암의 권세 즉 마귀의 지배 아래 섬기던 자를 예수님의 나라로 옮겨 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로 14절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서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주님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실천적인 일을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을 읽고 믿을 때, 그 믿음대로 되라고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의 나라로 이미 옮겨진 우리는, 마음속에 오중복음을 가득히 채워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어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무얼 해야 되냐? 마음에 오중복음을 채워 넣으면 기막힌 사람이 됩니다. 오중복음을 만들어 놓으면 여러분 마음에 4차원의 영성을 가지고서 오중복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오중복음까지는 물질적인 생각입니다. 그 다음, 4차원의 영성은 영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오중복음을 4차원의 영성이 다스립니다.

 우리 환경은 생각과 꿈과 믿음과 신앙 선포를 통해서 다스립니다. 창조하고 다스립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보시면 뭐라고 그러겠습니까? “내가 너희에게 엄청난 권세를 주었는데, 그거를 쓰지 못하고 있느냐?” 탄식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과 생활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할 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4차원의 영성을 사용하려면, 생각의 밭에 씨앗을 심습니다. 우리 마음속에 다 생각이 있지요? 여러분은 생각이 있으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다 같이 생각이 있는데, 생각에 무엇을 심느냐? 꿈을 심을 수 있는 생각입니다. 무슨 꿈이냐? 하나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여러분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마음의 생각에 꿈을 심습니다. 그러고 꿈을 심고 기도하면 믿음으로 변하고, 믿음을 가지고 창조적인 선언을 하면 오중복음을 다스릴 수 있습니다.

결론

 나중에 시간이 있으면 더 설교하겠는데, 오늘은 이것밖에 못 하겠군요. 우리가 여하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고 모셔드리면 희망찬 사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오중복음이 있으면, 오중복음까지는 물질이지만 그게 4차원의 영성은 성령이 우리에게 주신 것인데, 4차원의 영성을 통하여 꿈, 믿음, 창조적인 선언이 돼서 우리 운명과 환경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면에 보면, 우리는 기막힌 능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8.09.23. am 12:47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