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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미술관


모든 이와 즐거움 나누는 ‘토비아스의 우물’처럼
문화는 사람과 사람 잇는 다리 같은 것
자연 역사 문화 어우러진 ‘너른 뜰’ 기대

 ‘사람 인(人)’ 글자는 두 사람이 서로 기대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사이 간(間)’ 자도 인간들 사이, 즉 관계를 의미한다. 이 세상이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사람과 사람이 만나 관계를 맺고 살아가야 하는 것을 글자가 몸소 보이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일구며 살아갈 때 그 사이에서 생겨나는 것이 바로 ‘문화’이다.

 돌이켜보면 내가 젊어서 미술을 접할 수 있었던 것은 생애 커다란 행운이었다. 미술이 아니었다면 나는 문화와 예술이 인간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지 모른 채 살았을 것이다. 물기 없이 바싹 마른 일상이 실은 얼마나 많은 아름다움을 감추고 있는지를, 내 주위 사람과 그들의 삶이 알고 보면 더없이 여리고 외롭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비로소 미술을 통해 알게 됐다.

 사회 초년 시절, 내가 한 달 치 월급과 맞바꾼 금추 이남호 선생의 작품은 나를 미술품 수집가의 길로 들어서게 해준 작품이었다. 그 뒤 화가 이중섭을 알게 되고, 신사임당의 ‘초충도’를 접하면서 미술의 세계로 점점 빠져들었다. 그림을 보는 남다른 안목이나 특별한 수집체계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미술품을 수집한다는 것은 작품 속에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길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미술이 나에게 사람에 대한 사랑, 생명과 자연에 대한 존경, 창조에 대한 이해를 교육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오늘날 나의 모습은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수십 년 동안 그림에 품었던 연모의 감정이 어느덧 나로 하여금 미술관을 짓고 싶다는 꿈을 꾸게 했다. 2012년 8월 서울미술관이 탄생한 것은 이런 연유에서였다.

 나는 서울미술관이 토비아스의 우물이었음 하는 바람이었다. ‘토비아스의 우물’은 목사이자 작가인 맥스 루케이도가 쓴 동화인데, 나에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 내용은 대략 이렇다.

 사막 한가운데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사막에 있는 대부분 마을은 물 한 방울이 금처럼 귀하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목마름에 물을 갈구하지 않습니다. 근처에 깨끗하고 시원한 물이 펑펑 솟아나는 우물이 있는 까닭입니다. 우물을 가진 토비아스가 보물처럼 소중한 이 물을 마을 사람들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들 쥘리안에게도 우물물은 마을 사람들이 다 같이 나누어 마시는 거라고 단단히 일러 주었어요.

 어느 날, 토비아스와 아들 쥘리안이 먼 길을 떠나면서 우물 관리를 하인 엘제비르에게 맡겼습니다. 하인 엘제비르는 처음 얼마 동안은 주인의 뜻을 받들어 모든 사람에게 즐거운 마음으로 물을 퍼주었지요.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엘제비르는 마을 사람들이 물을 받아 가면서도 별로 고마워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마음을 바꿔 자기에게 고맙다는 말을 건네는 사람에게만 물을 주었습니다. 나중에는 자기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만 물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물을 얻기 위해 우물 주인도 아닌 엘제비르를 기쁘게 하려고 열심히 노력해야 했습니다.

 엘제비르의 횡포가 점점 심해지던 어느 날, 머리에 수건을 쓴 남자가 우물가에 나타났습니다. 그는 우물 주인 토비아스의 아들 쥘리안이었지요. 쥘리안은 예전처럼 마을 사람 누구든지 마음껏 물을 가져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쥘리안에게 그동안 하인 엘제비르가 저지른 나쁜 짓을 고발하고 그에게 물을 주지 말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쥘리안은 마을 사람들의 뜻과는 반대로 ‘저 사람에게도 물을 나눠주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라며 하인을 용서해 주었습니다.

 토비아스는 착한 사람에게만 물을 먹게 하지 않았다. 물이 어찌 착한 사람만 먹는 것이겠는가. 문화도 마찬가지라 여긴다. 문화는 모든 사람이 누릴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다리이지, 사람과 사람을 가르는 벽이나 가두는 철조망이 아닌 까닭이다. 경제의 산물은 쓰면 쓸수록 없어지지만, 문화의 산물은 토비아스의 우물처럼 아무리 퍼 올려도 마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서울미술관이라는 문화의 우물을 사람들과 나누고자 했다. 미술관이라는 우물가에 모여 서로의 안부를 묻고 반갑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했다. 우리가 함께 물을 주고 아끼며 격려할 때 묘목은 거목으로 자랄 수 있다. 그래서 서울미술관이 자연과 역사, 문화가 어우러진 너른 뜰이 되고 문화계에 큰 그늘이 되어 있길 희망한다.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9.16. am 09:36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