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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희망이 있다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마가복음 10장 46∼52절)

서론

‘내 아들아 내가 여기 있다. 다른 데 목을 내밀고 찾지 말라. 네가 숨 쉬는 곳에 내가 있고, 네가 고함치는 소리에 내 귀를 기울이고 있다. 나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니, 나를 너희 마음속에 깊이 받아들여라. 내가 너로 인하여 기뻐하노라.’

야훼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아직 희망이 있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사람이 수렁에 빠지면 누가 건져주지 아니하면 수렁에서 절망하고, 절망이 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가장 무서운 것이 스트레스를 받아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이 참 무서운 일인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예수님의 보혈과 성령의 능력으로 다스려야 해요. 스트레스에 끌려다니면 안 됩니다. 스트레스를 여러분께서 언제든지 다스리고 그를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도록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귀가 와서 어찌하든지 우리에게 절망함을 주어서 우리를 죽게 만들려고 애를 쓰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막아주시고, 생명을 주되 영원한 생명을 우리 마음속에 주셔서, 스트레스를 이기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본론

1. 길 위의 인생

 오늘 말씀 가운데 보면 우리가 종종 보던 말인 것입니다. 한 가족이 있었는데, 아버지도 가난하고 헐벗고 굶주리고, 스스로 사는데 힘이 들고, 아들은 거지였습니다. 그 옛날에는 거지가 길거리에 앉는 데에도 상좌와 하좌가 있어서 대단히 어려웠습니다. 살기가 힘들었어요. 절망 일보 직전에서 목숨이 걸린 일인데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가 여리고 성의 밖에 그래도 제법 좋은 자리에 앉아서 구걸을 합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의 삶이 다른 사람의 동정을 받는 구걸을 통해서 인생을 사는 그가 좌절 일보 직전에 있다고 할 수 있는데, 그런데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로마서 10장 17절)’라고 좋은 소식이 들려옵니다. 성문 밖에 왔다 갔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나사렛 예수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셨는데, 그에게 가면 전에는 걷지 못하던 사람도 벌떡벌떡 일어나 걷고, 말 못 하는 사람 말을 하고, 못 듣는 사람 듣고, 못 보는 사람 보게 해준다는 말을 들었는데, 제일 처음에는 이야기로 들었으나 점점 이것이 진실하고 사실적인 것으로 알게 된 것입니다.

 바디매오는 그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습니다. 전에는 탄식을 잘하고 울고 하던 사람이 웃고 희망이 찼습니다. “오늘은 어떤 사람의 병이 나았냐?” “오늘은 맹인이 나았다.” 매일 매일같이 병 나은 소식을 듣고 ‘나도 병이 나을 수 있다. 나는 맹인, 거지 바디매오지만 예수를 만나면 내 운명이 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이 절망 가운데서 희망의 불꽃을 태울 수가 있으니 예수님을 나는 만나야 되겠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그가 돈 한 푼 달라고 손을 내밀고 간구하는 것보다도,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언제 한번 지나가느냐’ 그것을 기다렸습니다. 이는 맹인이니깐 눈이 안 보이니 예수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고, 예수님이 여리고 성을 지나오는지 안 지나오는지 그것도 모릅니다.

 그러나 마음을 곤두세워서 있는데, 하루는 사람들이 많이 여리고 성을 지나갑니다. 그래서 한 사람을 붙잡고 물었습니다. “오늘 무슨 좋은 일이 있습니까?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왔다, 갔다 하네.”, “야 이 사람아 그것도 모르냐.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 “어? 예수가 지나가요? 아이고 이때를 놓치면 안 되겠다.” 그는 일어섰습니다. 예수님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릅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도와주시옵소서.” 그 말소리가 너무 마음을 진동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사람이 “아 거 참 시끄럽다. 좀 조용히 해라.” 그러니 바디매오는 시끄러운 것이나 조용한 것이 상관 안 됩니다. 일생일대의 희망을 달성하기 위해서 부르짖는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얼마나 크게 고함을 쳤던지, 여리고 성 입구가 쨍쨍 울렸습니다. 예수님이 가다가 말 걸음을 중지시키고 뒤돌아 바디매오를 바라보았습니다. 여기에 좀 보십시오. 예수님이 바디매오 곁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을 찾아야 예수님이 응답한것입니다. ‘너희는 하나님께 부르짖으라’ 쳐다보기 전에 바디매오를 돌보아 줄 수 있을 땐 그 바디매오 곁을 지나오면서 고쳐주지 않았습니다. 바디매오가 예수님께 부르짖어야 예수님이 서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우리도 부르짖는 것 흉보지 말아야 됩니다. 어떤 때는 체면불구하고 고함고함을 치고 하니, 점잖은 사람이 보기가 사납다고.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이 병 든 점잖은 체를 하겠습니까? 손가락질 받아도 사는 게 좋지, 점잖게 죽는 것은 별로 좋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점잖을 빼고 “예수님 오셔서 도와주옵소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나사렛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예수여, 나를 도우소서!” 목숨을 다하여 고함을 쳤습니다.

 이에 예수님께서 서셔서, “내게 오라 하라” 그래 옆에 있는 사람이 “야, 너 오라고 한다. 팔자 폈다. 빨리 가라” 그러니 바디매오가 일어나서 제일 먼저 처리한 것은 돈 깡통입니다. 돈 있는 깡통을 던져 버렸습니다. 그 다음에 겉옷을 벗어서 내던집니다. 그때는 거지들이 옷 한 벌입니다. 단벌신사들입니다. 그러나 그가 일어나서 예수님께 가는데 일초라도 걸리적거리면 안 되기 때문 겉옷을 벗어서 던져버렸습니다. 그 겉옷은 그 몸을 가리는 예의를 차리게 하는 겉옷입니다. 겉옷은 추울 때 외투가 되고, 더울 때 햇볕을 가리어주는, 그에게는 귀중한 것입니다. 그 옷을 낮에는 체면 차리게 하지만, 밤에는 덮어야 추움을 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시대에 국가에서 옷을 전당 잡거들랑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라고 그래요. 국법으로 정했습니다. 그만큼 귀한 것이 겉옷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라는 소리를 듣자 겉옷이 체면차림이라고 팔을 꿰고 단추를 다 채우고 그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저는 오랜 세월을 살았지만은, 양복 입을 때나 셔츠를 입을 때마다 성가셔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뒤를 돌려서 옷을 입자니 어깨가 아프고, 그 많은 단추를 질서를 지키지 않아서 옷이 비뚤어지면 또 옷을 벗어서 새로 입어야 되고, 우리 자매님들, 누님, 어머님들 이런 많은 단추 옷을 입지 않은 분은 체험을 해보면 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입니다. 이 바디매오는 맹인 거지로 살아가던 사람이었는데, 마가복음 10장 46절에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우리 사람은 누구나 절망을 상속받은 인간들인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한 이후, 모든 인간이 죄와 허물, 질병과 가난 그리고 죽음을, 절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 17절에 ‘아담에게 이르시되 네가 네 아내의 말을 듣고 내가 네게 먹지 말라 한 나무의 열매를 먹었은즉 땅은 너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고 너는 네 평생에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아담과 하와의 범죄가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인간의 삶이 저주 아래에서 살고 있으니 얼마나 고통스럽습니까. 바디매오는 그 일생에서 그 장님이 눈을 뜬다는 이 말로 다할 수 없는 좋은 기회를 만난 것입니다. 그에게는 희망이 돋아 올랐습니다. 여러분, 사람이 희망이 없으면 못 삽니다. 독에 쌀을 잔뜩 부어놓아도 그 가슴에 희망이 없으면 독에 있는 쌀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은 희망을 먹고 살지, 세상 양식을 먹고 살지 않습니다. 바디매오는 동전을 구하고 살았지 희망은 들락날락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희망을 발견하고 참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왔던 것입니다.


2. 아직 희망이 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예수님만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내게 부르짖으라. 노래와 같이 조용하게 하지 말고. 우리 성가대 노래 참 잘 부르잖아요. 그런데 우리 하나님께서 부르짖어 노래하는 것을 기쁘게 들으신다는 것입니다. 이라도 예수님만 바라보면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33장 3절에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말한 것입니다. 시편 120편 1절에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 야훼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 부르짖으니까 응답을 하셨더라. 점잖 빼지 마십시오. 남에게 시끄럽게 한다고 숨을 죽여서 기도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부르짖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 한국에 저하고 신현균 목사하고 감리교 대표들하고 여러 대표들이 모여서 한 달에 한 번씩 기도를 했는데, 그때에 우리 소원은 기독교인이 백만 명만 되도록 해달라고 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10년이 되기 전에 천만이 되었습니다. 그때까지는 고함을 치고 기도를 안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백만 명의 성도를 달라고 기도를 할 때는 목이 터져라고 고함을 쳐서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그 기도를 들어 주셨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래서 기도원같은 곳에 통성으로 기도한다고 하니깐 기도원을 짓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원에 가서 고함을 칠 수가 있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가 부르짖고 기도할 수 있는 이상 아직 희망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으면 살아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어떻게 해서 믿음을 얻느냐? 들어야 됩니다. 바디매오가 구걸을 하는데, 동전을 구걸하더라도 지나온 사람이 무심코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오셨고, 가는 곳마다 병을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죄인들을 구원한다고. 그런데 바디매오는 이것이 복된 소식, 복음인 것입니다. 이 복음을 싣고 있는 이 말을 들었은즉 꼭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마음에 결심을 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만나야 되겠다고 결심하면 있는 힘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어떤 날은 중풍병자가 벌떡 일어나 침상을 들고 걸어갔다는 소문을 들었고, 또 어떤 날은 듣지 못하는 사람이 듣게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놀라운 소문이 계속되던 어느 날, 바디매오는 자기처럼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눈을 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갑자기 바디매오의 가슴이 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속에 ‘나도 예수님을 만나서 눈을 떠야 되겠다’ 그 마음속에 꿈과 희망이 생겼습니다. 바디매오는 예수님이 자기가 앉아있는 그 길을 지나가실 것을 날마다 꿈꾸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평상시와 달리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웅성거리며 지나가는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냐고 묻자,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드디어 기회가 온 것입니다. 기회가 오면 포기하면 안 됩니다. 그런데 너무나 안타까운 일은 바디매오가 앞을 볼 수가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자기 앞을 지나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꿈을 품고 있었던 바, 바디매오는 포기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소리를 치기 시작합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러자 사람들이 “잠잠하라. 너 장님 거지, 너를 알아줄 이가 없다.” 사람들이 꾸짖어도 바디매오는 더 크게 외칩니다. “다윗의 자손, 여기 나를 불쌍히 보아 주옵소서!”

 꿈을 가진 사람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꿈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장애물이 다가와도 꿈이 있는 사람은 장애물 위에 올라타고 나오지, 장애물에 짓밟히지 않습니다. 꿈을 가진 사람은 장애물을 만났을 때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욱 간절히 기도하며 주님께 부르짖어야 되는 것입니다. 걸음을 멈추신 예수님.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이야, 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예수님이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바디매오를 부르고 기다려줍니다. 아멘.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듣고 예수님께서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셨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를 부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윗은 “내가 환난 중에서 야훼께 아뢰며 나의 하나님께 부르짖었더니 그가 그의 성전에서 내 소리를 들으심이여 그의 앞에서 나의 부르짖음이 그의 귀에 들렸도다(시편 18편 6절)”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이 다 목소리가 컸습니다. 부르짖어서 하나님 귀에 목소리가 들리게 한 것입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께 간절히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부르짖는 자의 기도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앞에 나가서 점잖을 빼고 기도를 한다고 하나님이 알아주지 않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사람을 하나님 찾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부르시자 바디매오는 겉옷을 버리고 예수께 뛰어 나갔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9절로 50절에 보면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구태여 맹인이라고 말한 것은 옷이 그렇게 귀할 때입니다. 바디매오는 옷을 귀하게 귀하게 간수하면서 살아왔는데 그 옷을 뒤에 던져버리고 발에 거슬리니까 짓밟아 버리고 예수님을 찾아 나간 것입니다. 겉옷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었습니다.

 유대 땅은 일교차가 너무 크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밤이 되면 외투로 걸쳤던 겉옷을 이불로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22장 26절은 “네가 만일 이웃의 옷을 전당 잡거든 해가 지기 전에 그에게 돌려보내라” 이게 하나님 말씀이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겉옷이 한 벌 밖에 없었기 때문에, 해가 지기 전에 옷을 돌려주어야 추위에 떨지 않기 때문에 옷을 돌려주어야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거지로 살아가는 바디매오에게는 겉옷은 전 재산이 다름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 나아가는데 방해가 되자 미련 없이 겉옷을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은 바디매오의 꿈이 얼마나 간절했는지, 얼마나 믿음이 굳건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것입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죽기 살기로 믿는 것입니다. 고함을 치고, 뛰고, 구르고, “예수여! 나를 보아 주시옵소서!” 간구한 것입니다. 그가 예수님을 향해서 뛰어나올 때, 이때 응답 못 하면 이제 절망입니다. 이제 죽는 것밖에 도리가 없습니다. 절대 신앙이 절대 불신앙이 되고, 절대 생명이 절대 파멸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서 앞을 보겠다는 간절한 꿈을 품고, 예수님께 가기만 하면 반드시 고쳐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겉옷을 내버리고 예수님께 뛰어 나간 것입니다. 바디매오처럼 복음을 들었을 때 믿음으로 나와야 합니다. 그래야 기적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옛날에 우리 교회 구역장님들은 병들어 죽어가는 사람에게 이렇게 전도를 했습니다. “의사는 못 고쳐도 예수님은 고칠 수 있습니다. 나랑 교회 갑시다!” 그렇게 전도를 받은 사람들이 와서 병이 낫고 치료함을 받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서 우리 교회가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신약성경 전체를 다 외울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오중복음을 통하면 신약성경을 환하게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죄를 씻어주시는 예수님, 의로움을 주시는 예수님, 병을 고쳐주시는 예수님, 저주에서 해방시켜주시는 예수님, 죽음에서 살려주시는 부활의 예수님, 이 예수님을 성경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 예수를 알고 나면 그 예수를 통해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사차원의 영성에 들어가면 아무것도 안 보이는 바람과 같은 세계가 있습니다. 삼차원의 세계까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그림을 그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차원은 그림을 그릴 수가 없어요. 사차원은 바람인데, 바람과 같은 성령인데 그려보십시오. 못 그리거든요. 못 그리기 때문에 마음에 뜨거운 믿음으로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으로 순복음을 알고, 사차원의 영성을 통해서 꿈꾸고 믿고, 그 다음에는 명령 내리는 것입니다. “빛이 있으라!”하면 빛이 있는 것 같이, 우리 예수 믿는 사람도 꿈꾸고 믿고, 그 다음에는 고함치는 것입니다. “생명아 돋아라. 곡식아 잘 되어라. 아들, 딸 건강하라.” 입술로 축복하는 것 굉장한 힘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입술이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안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입술로 스스로 축복하는 것 대단히 중요합니다.


3. 예수님만이 희망이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한복음 10장 9절)” 예수님이 천국에 들어가는 문인데, 누구든지 예수님을 통하여 들어가면 들어가고, 나오면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니 귀신은 도둑입니다. 내가 우스운 것은 요사이 나에게 자꾸 연락이 오고 핸드폰에 문자가 더러 오는 것은, ‘조목사님, 1936년 2월 14일에 태어난 것 아는데, 몇 시에 태어났습니까?’ 날짜를 대라는 겁니다. 그래서 내가 “귀신같은 소리 하지 마라. 날짜 같은 거 뭐가 필요가 있냐?” 그러면 그래도 날짜가 들어가야 내 팔자를 알 수 있다는 겁니다. 날짜가 들어가야 내 팔자를 알 수 있다면, 내 팔자가 일어나서 날짜를 올라 맞추는 듯 하면 될 것이지 왜 자꾸 묻느냐고 묻지 말라고. 내가 예배 마치고 핸드폰을 보면 오늘도 올라와 있을 것입니다. 날짜 알려달라고. 희한한 사람들이 많은 세상이라 희한합니다. 날짜가 무슨 희망을 주는 게 아니라 예수님만이 희망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 어떤 좌절과 절망에 처했을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보면, 거기에 영원한 용서가 있고, 영원한 의로움이 있고, 영원한 치료가 있고, 영원한 축복이 있고, 영원한 부활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우리가 마음에 품고 있으면 절망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좌절감이 다가올 수 없습니다. 언제나 희망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여러분 사람들이 절망적인 말을 우리에게 하는 것은 마귀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그 일을 하도록 여러분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면 오중복음과 삼중축복을 꿈꿀 수가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면, 의와 정결함과 치료와 아브라함의 복과 영생을 얻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8장 16절로 17절에 보면 “저물매 사람들이 귀신 들린 자를 많이 데리고 예수께 오거늘 예수께서 말씀으로 귀신들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다 고치시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말씀으로 성령충만하게 하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저주받게 하고, 말씀으로 축복받게 하는 것입니다. 내 입의 말로 우리가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는 것이므로, 입술의 말로 서로 칭찬하고 서로 축복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어떤 상황에서도 꿈과 희망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존재인 것입니다. 사람은 쌀독의 쌀이 떨어져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가슴 속의 꿈이 떨어져 가면 죽습니다. 내 가슴 속에 꿈이 떨어지면 그건 죽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꿈을 붙잡고 있을 수 있나요? 예수님 십자가. 예수님 십자가를 끌어안고 있으면 꿈은 우리와 같이 있습니다. 정말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생활은 귀한 생활인 것입니다. 꿈을 품고 사는 것은 나이와 상관이 없습니다. 어떤 분은 나이가 95인데 인터넷에 이렇게 글을 올렸습니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해서 인정을 받았고, 65세 때 당당하게 은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95세 생일을 맞던 날 얼마나 후회를 했는지 모릅니다. 은퇴 이후 ‘이제 다 살았다’ 그런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리는데, 그 기다림이 30년이라는 세월을 허송세월을 보낸 것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다시 시작합니다. 그 이유는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살에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 사람, 희한한 사람이지요. 95세 생일도 탄식을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서 주신 꿈을 품고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이끌었고, 갈렙은 85세에 꿈을 품고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어떤 환경에서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0장 52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바디매오가 예수님 곁에 왔을 때 예수님께서 “뭘 해주기를 원하느냐?”, “선생님, 보기를 원합니다.”, “네 눈이 열려서 볼지어다.” 눈이 번쩍 뜨였습니다. 번쩍 뜨여서 사물을 보게 될 때, 여리고 성 문 밖에 아주 좋은 자리가 있는 것을 도로 돌아갔느냐? 아닙니다. 예수님을 보았은즉, 이제 예수님의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른 것입니다. 길 위에 앉아서 사람들이 던져주는 동전을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던 바디매오는, 이제 제자로서 예수님을 따라가는 인생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바디매오처럼 그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함께하시면, 우리에게 절망이란 없습니다. 예수님은 종교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생명이시오, 희망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누구든지 예수님께 나아가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꿈과 희망을 품고 새롭게 변화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과 은혜가 풍성하시고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맹인 바디매오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믿음을 갖고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모든 질병과 저주와 죽음을 청산하셨습니다. 그 십자가를 바라보고 오중복음과 삼중축복, 4차원의 영성으로 살아가게 하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8.09.09. pm 17:17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