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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시골 마을에서 벌어진 ‘회복적 정의’


세상을 바꾸는 진정한 힘은 용서와 화해

 만약 10대 남자 아이들이 한밤중에 술에 취해 여러분의 차를 부수고 유리창을 깨고 흉기를 마구 휘두르다 경찰에 붙잡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1974년 5월 캐나다의 엘마이라(Elmira)라는 작은 마을에서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18살 소년 러스 켈리는 친구와 함께 술을 마시다 잔뜩 취해버렸습니다. 두 소년은 한밤중에 마을을 돌아다니며 난동을 피웠습니다. 남의 집 차바퀴를 22개나 펑크 내고 차를 칼로 그었습니다. 가게 유리창을 맥주병으로 깨고, 교통표지판과 교회 십자가까지 두들겨 망가뜨렸습니다.

 다음날 아침 엉망이 된 동네를 보고 주민들은 엄청나게 분노했습니다. 무려 스물두 집이 당시 돈으로 3000달러가 넘는 피해를 입었습니다. 경찰은 이내 범인을 찾아냈습니다.

 경찰에 붙잡혀온 켈리와 친구는 두려움으로 떨었습니다. 이 사건을 맡은 경찰관 마크 얀치는 고민했습니다. 얀치는 두 소년에게 한 번 더 기회를 주고 싶었지만, 자신들이 저지른 일에 따르는 책임도 깨닫도록 해야 했습니다. 분노한 주민들도 달래야 했습니다. 그는 이 마을 교회의 지도자인 데이브 워스와 상의했습니다. 워스가 한 가지 제안을 내놓았습니다.

 “두 소년을 감옥에 보낸다면, 세상을 원망하고 이웃에게 분노를 쏟아내는 청년이 되어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이 두 소년의 마음과 영혼을 죽이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두 소년이 그런 처벌을 받는다고 과연 주민들의 마음이 풀릴까요? 문제는 전혀 해결되지 않습니다. 대신 두 소년이 스물두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용서를 구하도록 한다면 어떨까요. 주민들이 용서를 해주고 피해보상금에 합의를 한다면 두 소년이 감옥에 가지 않도록 판사에게 요청합시다.”
 경찰과 교회의 요청을 받은 고든 맥코넬 판사는 이를 허락했습니다. 판사의 결정을 통보 받은 두 소년은 두려움에 빠졌습니다. 분노한 이웃을 찾아가는 일은 재판을 받고 감옥에 가는 일보다 더 무서웠습니다. 켈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솔직히 무섭습니다. 내가 마구 난동을 피웠던 그 집에 다시 발을 들여놓는 일도, 그 어른들의 얼굴을 직접 보는 것도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습니다.”
 경찰은 두 소년을 데리고 피해자들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문을 두드리자 사람이 나왔습니다. 경찰이 두 소년을 소개하자 사람들의 얼굴에 이내 분노가 차올랐습니다. 경멸의 눈빛으로 두 소년을 바라봤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켈리는 부끄러워졌습니다.
 ‘내가 도대체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아무런 죄도 없는 이 어른들에게 내가 왜 그랬을까?’
 켈리와 친구는 고개를 떨구며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리고 떨리는 목소리로 얘기했습니다.
 “죄송해요. 저희가 정말 잘못했습니다.”
 두 소년의 흔들리는 어깨를 본 어른들은 마음이 약해졌습니다. 두 소년을 붙잡고 “다시는 그러지 않는다면 이번은 용서를 해주겠다”고 격려를 해주는 어른들도 있었습니다. 켈리와 친구는 그렇게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마을 주민들도 더 이상 분노에 사로잡히거나 미움에 빠져있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차와 집을 망가뜨린 일이 어떻게 벌어졌는지, 또 두 소년이 어떤 마음으로 용서를 구하는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두 소년은 주민들에게 550달러를 변상하고 각각 200달러의 벌금을 내는 것으로 처벌을 마무리했습니다.

 당시 켈리는 부모를 모두 잃고 마약과 술에 중독된 채로 살고 있었지만, 이 일을 겪으면서 인생이 바뀌었습니다. 법학대학에 진학한 켈리는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화해를 주선하는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캐나다 교회들은 이 일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해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시옵고’라는 주기도문의 한 구절을 실천한 거룩한 사건이라고 의미를 부여하고, 더 많은 곳에서 이런 참회와 용서가 일어나도록 운동을 벌였습니다.

 1989년 뉴질랜드에서는 청소년 범죄에 처벌보다 용서와 화해를 먼저 시도하도록 법제화했습니다. 199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진실과 화해 위원회’를 만들어 백인과 흑인 사이의 화해를 추진했습니다.

 가해자를 처벌하고 단죄하는 것을 넘어 가해자와 피해자의 용서와 관계 회복을 추구하는 이런 운동을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라고 부릅니다. 한국에서도 회복적 정의를 연구하고 실천하는 교사와 학부모, 판사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요즘 한국 사회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이웃이 불의를 당하는 것을 보고 참지 않는 정의감도 꼭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손쉬운 분노와 성급한 처벌이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합니다. 진정으로 세상을 바꾸는 것은 용서를 구하고 용서할 수 있는 용기입니다.

김지방(국민일보 기자)

 

기사입력 : 2018.09.09. am 09:26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