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⑩ 목포 양동교회


선교사의 믿음 불씨 이어온 호남 선교의 출발점
 
 전라남도 목포시 호남로에 위치한 양동교회(등록문화재 제114호)는 목포 지역 최초의 교회로 호남 선교의 전초기지이자 ‘목포의 3.1운동’으로 불리는 4.8만세운동의 주축을 형성한 교회이다. 교회당 건물이 지어지기 전인 1897년부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유진 벨과 윌리엄 레이놀즈가 천막을 치고 20여 명의 성도들이 예배를 드렸다.
 1910년에 양동교회 교인들은 유달산에서 직접 구해온 화강암으로 교회를 건축했다. 이 교회당은 지금까지 보존돼 1982년 종탑을 새로 세우면서 4개의 문을 3개로 바꾼 것 외에는 큰 변화가 없이 초기 교회당의 외관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이 때문에 교회는 초기 교회건축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로 쓰이는 등 그 역사적 가치가 높다.
 목포 지역 교회들은 1986년 부활절 연합예배를 드리고 이때 함께 헌금해 선교 100주년 기념비를 이곳에 세웠다. 선교비에 쓰인 “이곳은 목포에 복음의 씨가 뿌려진 맨 처음 터”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목포시내에 위치한 유진 벨 선교사의 사택도 등록문화재이다. 유진 벨 선교사는 호남지역 선교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선교사로, 그는 아내 로티 벨이 1901년 목포에서 풍토병으로 사망한 뒤에는 어린 두 자녀를 미국의 누이에게 맡기고 목포로 돌아와 다시 복음을 전했을 만큼 열정적이었다. 유진 벨은 아내와 사별한 이듬해인 1902년에 현재 장소에 기와집을 증축해 ‘로티 위더스푼 벨 기념 교회당’을 봉헌했다. 1년 후에는 이곳에서 세례 받은 교인이 101명이나 됐다.

 유진 벨은 동료 의료선교사인 오웬과 함께 목포병원과 교육기관들을 세웠다. 특히 그가 설립한 정명여학교는 3.1운동 당시 만세 시위에 참여한 신식 교육기관이자 이 지역의 여성교육에 크게 이바지해 왔다. 유진 벨은 이후 목포를 떠나 광주에서 선교를 이어갔으며, 두 명의 외국인 선교사가 그의 뒤를 이어 양동교회를 담임했다. 한국인 담임목회자는 4대 담임인 윤식명 목사가 처음이다. 윤 목사는 믿음의 불씨 역할을 해준 미국인 선교사의 바통을 이어받아 그 불씨를 꺼트리지 않고 복음 전파와 애국활동에 힘썼다.  
 일제강점기 끼니를 거르면서도 건축헌금을 하고 직접 돌을 날라 교회당을 지은 성도들은 만세운동에도 참여했다. 7대 담임인 박연세 목사는 일본을 규탄하는 설교를 해 투옥되었는데, 그는 재판을 받을 때 “예수께서 재림하면 천황도 심판 받는다”는 말을 하여 더욱 오랫동안 옥살이를 해야 했고 끝내 감옥에서 순교했다.
 이처럼 양동교회는 목포지역의 믿음의 산실인 동시에 나라와 민족을 사랑한 성도들의 귀하고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이 남아있는 소중한 문화재이다.

 

기사입력 : 2018.08.26. am 11:00 (입력)
김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