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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그들은 왜 충치를 치료하지 않았을까?

독일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전쟁의 상흔을 기억하는 지혜 배운다

 예능프로그램 ‘꽃보다 할배 리턴즈’의 인기가 만만찮다. 평균 78.8세 노년 배우들이 함께 떠나는 황혼의 배낭여행 콘셉트로 제작된 이 프로그램은 개성 넘치는 출연자들과 문화유산이 잘 보존된 유럽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제법 쏠쏠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중에서도 베를린은 더욱 특별했다. 할배들은 동·서독 분단의 현장 베를린장벽과 독일 통일의 상징 브란덴부르크문 등을 다니면서 그들의 젊은 시절을 회고했다.
 “이번 여행은 색다르다. 우리랑 비슷한 (분단의) 역사를 가진 나라를 돌아서 조금 달랐다.”

 “우리는 기록 보존에 약한 것 같다. 우리만 살 것이 아니고 자식들도 살아야 하니까 보존을 잘해서 교훈이 될 수 있게 하면 좋겠다.”
 “다음세대에게는 절대로 이러한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라는 점에서 일본과 같지만 전후 처리 과정의 차이로 현재는 매우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일본은 그들의 지난 역사를 왜곡하기에 바빴다. 그러나 독일은 부끄러운 역사를 드러내고 진지하게 반성하며 재발을 방지하고자 노력했다. 그리고 국제사회는 독일의 반성과 사죄를 받아들였다.

 베를린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Kaiser-Wilhelm-Gedaechtniskirche)’는 그러한 노력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베를린 번화가인 쿠담 거리(Kurf몕rstendamm)에 위치해 있는 이 건물은 독일의 첫 통일을 이룩한 프로이센의 카이저 빌헬름 1세를 기념하기 위해 그의 생일인 1891년 3월 22일에 주춧돌을 놓았다. 이 건축물은 프란츠 슈베츠텐(Franz Schwechten)의 작품으로 2740㎡의 벽을 모자이크로 장식했다. 113븖 높이의 첨탑과 2000개가 넘는 신도석을 가진 이 교회 건축물은 1895년 9월 1일 축성됐고 중앙현관은 10여 년 뒤에 완성됐다.
 견고하고 아름답던 교회는 1943년 나치 군대에 대한 연합군의 공습 과정에서 교회당의 절반에 해당하는 63븖만이 남았고 벽면에 큰 상흔이 나면서 ‘썩은 이빨’이란 별명을 얻게 됐다. 그들은 이 ‘충치’를 치료하지 않은 채 남겨두었다. 모든 기록은 교회 내부에 그대로 기록되었으며 온전하던 옛 모습의 사진들과 함께 전시하고 있다.
 예배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 옆에 세워진 신관에서 드리고 있다. 신관은 스테인드글라스를 벌집모양으로 박아 지었으며 내부에는 8각형의 설교단, 황동 예수상, 5000여 개의 파이프를 가진 오르간이 있어 관광객들의 발걸음을 끌고 있다.


 일제 강점으로부터 해방된 지 73년, 우리는 그동안 경제를 재건하고 민주주의를 완성시켜 온 특별한 역사를 가진 나라를 만들어 왔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과 희생과 기도가 있었다. 게다가 아직 분단의 상흔을 지닌 채 살아가는 우리들이다. 과연 이 역사의 교훈을 어떻게 보전해야 할지,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가 주는 지혜를 되새겨 본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야훼이시니이다” (시편 4편 8절)

 

기사입력 : 2018.08.26. am 10:53 (입력)
김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