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ㆍ특집 > 마침내 미술관
오치균의 ‘ 감 ’

순환의 시간을 보내고 살아남은 생명력

지두(指頭) 화법으로 표현한
개인의 추억과 감성의 상징물
끝내 살아남아 이룬 결실은
경건한 삶의 영예

 나뭇가지 사이로 탐스러운 감이 보인다. 잎이 떨어진 뒤 앙상하게 남은 가지와 탐스럽게 익은 주홍빛 감이 풍경의 대조를 이룬다.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주홍빛 감이 해처럼 둥글게 떠 있으니 더욱 탐스럽게 보인다.
 오치균의 ‘감’은 자연에서 살아남은 환희, 끝내 살아남아 이룬 결실의 얼굴을 가졌다. 오치균은 어떤 생각으로 몇 알의 감만 이토록 탐스럽게 표현했을까.

 초여름, 감나무를 올려다보면 가지 사이로 가득 핀 감꽃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하얀 감꽃이 열린 자리마다 잘 여문 감이 열릴 테지. 날씨가 조금씩 더워지면 감꽃은 바닥에 떨어져 검게 말라 사라지겠지. 그리고 그 자리에 다시 푸른 감이 고개를 내밀고.

 하지만 맺힌 감이 모두 탐스러운 감이 되지는 않는다. 바람에 흔들려, 비를 맞고, 벌레가 먹고. 지금처럼 뜨겁고 긴 여름을 보내는 동안 수많은 이유로 순서도 없이, 어린 감들은 바닥으로 떨어진다. 따가운 여름을 이긴 감들만이 나뭇잎이 다 떨어져 가지가 앙상해질 때쯤 주홍빛 둥근 얼굴을 세상에 내민다. 한 그루 감나무에 매달려 순환의 시간을 보낸 뒤, 둥근 해 같은 튼실한 감 한 알로 살아남으니 그 생명력이 새삼 경이롭다.

 오치균에게 있어 감은 생활이었다. 작가는 말한다. “엄마는 감을 곱게 닦고 광주리에 담아 새벽 첫 차에 몸을 싣고 시장에 내다 팔았다. 엄마와 함께 시장에 가서 감을 팔 때면 엄마는 ‘감 사세요!’를 외쳤지만 이상하게도 내 목소리는 정작 밖으로 나오지 않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오치균에게는 감이 먹고살기 위한 생존의 수단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추억을 더듬듯 물감을 손가락으로 찍어 직접 발라 그 감을 표현했다. 작품을 완성한 작가는 설명을 제거하고 본질을 보여주고자 했다지만, 지두(指頭) 화법으로 그리는 순간 감은 개인의 추억, 개인의 감성을 의미하는 상징물이 됐다. 화폭은 현실에서 아득히 멀어져 옛 기억을 회상하는 파노라마 한 장면으로 정지한다. 작가 스스로 ‘지긋지긋했던 시골 생활’이라 표현한 유년의 기억은 그에게 감처럼 붉고 또렷한 위태로운 아름다움이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이름이 결국 마지막 가지에 매달린 한 알의 붉은 감처럼 소중하고 희소하게 빛나길 원한다. 요즘 같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는 누구나 부자가 되기 위해, 스스로 유일한 존재가 되기 위해 바삐 달린다. 그러한 존재가 되기 위해 나는 ‘몰입’을 경험하라고 말하고 싶다. 어떤 대상, 목표에 몰입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공부든, 일이든, 운동이든, 연주든, 그림그리기든 그 무엇을 위해 자신의 온 힘을 쏟아 부을 줄 아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경험하는 세상은 크게 다르다.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몰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몰입은 의식이 경험으로 꽉 차 있는 상태다. 이때 각각의 경험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느끼는 것, 바라는 것, 생각하는 것이 하나로 어우러지는 것이다. 명확한 목표가 주어져 있고, 효과를 곧바로 확인할 수 있으며, 과제의 난이도와 자신의 능력이 합치되는 활동을 할 때 우리는 몰입을 통해 삶의 질을 끌어올릴 수 있다.”

 사업을 하면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시련이란 없었다. 한고비 한고비를 넘어서면서 나는 때때로 승부사가 되어야 했다. 자신의 판단을 근거로 적당한 타이밍에 선택해야 했고, 그 선택에 집중과 몰입을 하여 일관되게 행동했으며, 모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책임을 지고자 했다. 그러자 견제와 시기가 사라졌고, 고난의 시기에 쌓은 미운 정이 지금은 고운 정으로 바뀌어 함께 지난날을 떠올리며 웃을 수 있는 관계가 됐다.

 오치균의 감은 늦가을 한참 물오른 감이다. 어려서 감을 팔아 생활해야 했던 오치균은 나무에 열린 감이 충분히 무르익었을 때 누릴 수 있는 풍요로움 따위는 생각할 수 없었다. 자연은 이 시기를 절정으로 다시 말라 추운 겨울로 이어진다. 겨울이 되도록 찾아오는 까치가 없어 까치밥으로 남겨 놓은 감이 매달린 채 새까맣게 말라가는 광경은 자못 쓸쓸하다. 사람의 이름이나 사업도 전성기가 있으며 쇠퇴기가 있게 마련이다. 다만 사람의 빛이 감의 빛과 다른 점은 그 시기에 무언가를 남긴다는 것에 있다.

 사회사업가로 활동 중인 빌 게이츠는 전 세계 아이들의 유아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세상을 사랑하고 봉사하는 것이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보여준 사례다. 나누는 삶, 돈이라는 것을 어떻게 사용하면 좋을지를 보여주는 모범처럼 느껴졌다. 내 주변에도 이러한 사람이 존재했다. 2013년 소천한 박영하 박사(을지재단 설립자)는 의학자라는 외길을 걸으며 생명·사랑 정신을 몸소 보여주셨다. 한평생을 의술발전·인재양성 등 국가사회에 헌신해 후대에 귀감이 되고 있다.

 기업을 운영한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사회의 요구에 부흥해야 가능한 일이다. 나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부름의 목소리에 긍정적인 대답을 하는가를 목표로 지금까지 일해 왔다. 나를 위한 몰입의 순간마저도 도덕적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내겐 실패한 과거는 있을지라도 수치스러운 과오는 없다.

 자연에서 살아남은 환희, 끝내 살아남아 이룬 결실의 감 한 알은 승자에게 주어지는 영예일지 모른다. 손가락으로 물감을 묻혀 그린 오치균의 감처럼. 그 영롱한 빛처럼, 속이 꽉 찬 열망의 무게처럼.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8.19. am 10:31 (편집)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