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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리농원 대표 류광열 장로

절망의 끄트머리에서 희망은 솟아나고

3년 계속된 수해로 장어양식사업 빚더미
장어구이 팔면서 갈릴리농원 열게 되고
연간 60여 만 명 손님에게 복음 전하는 일꾼

  폭염으로 숨이 턱 턱 막히던 지난 7일 류광열 장로를 만나러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에 위치한 갈릴리농원을 찾았다. 식당을 운영하며 인생을 선교에 바치고 있다는 소문을 들은 뒤 그를 만나고 싶다는 생각에 발길을 재촉했다.  
 ‘갈릴리농원’ 대표 류광열 장로.
 기자를 만난 류 장로가 반갑게 악수를 청하며 내민 명함에는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손님들과 만나는 사람에게 하나님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마음이 느껴졌다.
 갈릴리농원은 부지만 1만 여 평(33,000㎡)에 이른다. 농원 내부에는 식당 2곳을 포함해 카페와 마트가 있다. 지난해는 교회를 세우고 교회 뒤 야산에 산책로도 닦았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쉼과 회복을 얻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이름을 ‘거룩한 땅’ 곧 ‘홀리랜드’로 지었다. 갈릴리 바다를 중심으로 복음을 전했던 예수님을 닮고자 하는 류 장로의 선교 열정이 느껴졌다.


 갈릴리농원은 1㎞ 거리에 있는 양식장에서 직접 기른 장어를 맛 볼 수 있는 식당이다. 이 양식장에서는 한 해에 150만 마리 이상의 장어를 직접 양식한다. 농원 어디든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다. 평생 곡식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며 살아온 그의 인생철학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 75세인 지금도 그는 뙤약볕에 허리를 숙여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까지 정성껏 살핀다. 땀 흘려 수고하고 하나님 주신 열매에 감사하는 그는 농사꾼의 품성을 타고 난 셈이다. 류 장로는 1960년대에 이미 한 해에 벼 500가마니를 수확하고 젖소 50마리를 키운 청년 영농가였다. 국비로 외국의 선진 농업현장을 체험하고, 전국새농민회 회장으로 영농후계자들을 이끌기도 했다. 그래서 고백한다. “하나님은 저를 농민으로 디자인하셨어요.” 그는 농민으로서 논밭을 가꾸거나 나무를 심어 열매를 거두었고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배웠다. 무엇보다 생명을 키우는 일에 평생을 보낼 수 있어 감사했다. 그는 지금 하는 일, 그러니까 장어를 길러 손님들의 식탁에 올리는 일 역시 농사처럼 생명산업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이 일은 ‘생산-가공-서비스’라는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6차 산업이기도 하다. 이 일을 통해 깨달은 은혜가 있었다.

 “땅과 물과 공기, 이 모든 게 주님이 주신 선물이에요. 그래서 농민은 언제나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할 수밖에 없죠.”
 류 장로는 36세에 전국새농민회종합상 대상을 받고 파주시 농촌지도자회 회장이 됐다. 어느새 지역의 유지가 되면서 하나님의 뜻을 찾기보다 다른 일로 분주했다. 그 무렵 아내가 어지럼증을 호소하면서 잠을 못 이루고 급기야 시름시름 아프기 시작했다. 아내의 고통은 3년 동안 이어졌다. 좋다는 병원은 다 찾아다녔으나 병명조차 알지 못했고, 목숨은 경각에 놓인 듯했다.
 “아내만 살려주시면 하나님 일에 내 모든 걸 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서원하며 매달렸더니 하나님이 응답하셨다. 아내는 차츰 몸을 회복했다. 무엇보다 그의 신앙이 회복됐다. 그리고 1985년에 장어양식을 시작했다. 사업은 대성공이었다. 수입도 엄청났다. 대통령으로부터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국민포장을 받았다.

 그러나 승승장구하던 사업이 한순간에 쓰러졌다. 1996년 8월 장마와 태풍이 겹치면서 파주 문산 일대는 물바다로 변했고 전 재산이던 양식장은 거의 절반이 무너져 장어들은 물길을 따라 임진강으로 흘러가 버렸다. 마치 욥에게 찾아온 고난이 그에게 온 것 같았다.
 절망만 하고 있을 수 없었다. 힘을 내어 양식장을 복구했다. 새로 치어들을 구입하여 길렀다. 그런데 이듬해, 또 그 다음해 계속하여 폭우가 내리더니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정도로 무너졌다. 그 많은 재산은 하루아침에 사라지고 알거지가 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IMF가 겹치면서 50억 부채에 따른 이자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고통스러웠다.
 “소생불능 신용불량자였죠. 내 인생은 여기서 끝나는구나 싶었어요. 어디 가서 단돈 10만원도 구할 수 없었으니까요.”
 처참하게 망가진 양식장에 아직 쓸려 내려가지 않은 장어가 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은 남은 장어들을 가져다 손질을 해서 화로를 놓고 등산객들에게 팔았다. 그런데 그 화로에 구운 장어를 먹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식당을 차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그해가 2002년.  갈릴리농원의 시작이었다.
 식당은 손님들로 붐볐고 양식 사업도 번창했다. 이번에는 아무리 큰비가 와도 버틸 수 있는 튼튼한 양식시스템을 도입했다. 우리나라 최초로 개발한 최첨단 여과식 양식시스템으로 무항생제와 무소독, 무균 양식장을 만들었다. 항생제 대신 미생물을 이용해 찌꺼기를 분해하고 깨끗한 수질을 유지했다. 그의 노고는 빛을 발했고, 사회에서도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과 대통령표창을 받았다. 2005년에는 갈릴리농원 장어를 ‘신천장어’라는 이름으로 특허등록도 했다.

 갈릴리농원에는 전국에서 모여드는 손님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갑자기 식당에 오는 손님들이 전도대상자로 보이기 시작했다.
 “한 해에 60∼70만 명이 농원에 오는데 다 주님이 보내주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분들에게 예수님을 전하고 싶었어요. 생명이고 빛이신 예수님을 전하기 위해 농원 안에 아름다운 교회를 짓기로 했어요.”
 류 장로는 갈릴리농원에서 가장 좋은 자리인 식당 뒤 작은 동산에 동화 속에 나올 법한 아름다운 예배당을 지었다. 예배당 뒤로 은혜로운 찬양이 흐르는 산책로를 닦고, 나무를 심고, 돌을 놓았다. 교회 앞에는 아름다운 정원을 꾸몄다. 돌을 하나 놓을 때에도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자들의 모양을 만들어 산상수훈의 의미를 담아냈다. 성도들이 교제하고 누구나 찾아와 휴식 할 수 있는 홀리동산이 만들어 진 것이다. 지난해 9월 예배당을 준공하고 교회이름을 갈릴리 교회로 지었다. 그리고 10월 22일 첫 예배를 드렸다. 아내인 홍인순 목사가 담임목사로 사역하고 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사람이든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걸작품이에요. 서로 소통하도록 창조하셨죠. 자연을 보고 은혜받고 창조주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위로와 평안을 얻는 공간이 되길 원합니다. 홀리동산을 한 바퀴 돌고 내려와 마음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류 장로는 빌립보서 4장 13절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는 말씀에 의지해 죽는 날까지 복음사역에 쓰임받기를 원한다.  
 “일제 강점기의 끄트머리에 태어나 6.25를 겪고 가난과 고난 속에서 여기까지 살아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여기까지 불러 주신 거죠. 어려울수록 하나님의 역사가 크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제 고백은 ‘하나님! 죽는 날까지 저를 주님의 일에 써주세요’ 이것밖에는 없어요.”  

 

기사입력 : 2018.08.12. pm 13:04 (편집)
이미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