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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린도후서 12장 7~10절)

 귀한 찬양을 감사드립니다. 우리 인사 나누겠습니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사랑의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예수님 안에서 좋은 일이 있습니다.” 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십니까? 이번 주가 지나가면 이제 더위가 꺾일 것입니다. 더워도 감사하고, 또 시원해도 감사하고, 범사에 감사하면 좋은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찬양합니다. 

<복음성가: 약할 때 강함되시네>

(1절)
약할 때 강함 되시네 나의 보배가 되신 주 주 나의 모든 것
주 안에 있는 보물을 나는 포기할 수 없네 주 나의 모든 것

(2절)
십자가 죄 사하셨네 주님의 이름 찬양해 주 나의 모든 것
쓰러진 나를 세우고 나의 빈 잔을 채우네 주 나의 모든 것

(후렴)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주님, 사랑합니다!’ 오늘 우리 기도 제목입니다. 다 같이 기도합니다. 주여! 주여! 주여!

(통성기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예수 어린 양 존귀한 이름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우리 삶에 첫째도 예수님, 둘째도 예수님, 마지막도 예수님입니다. 왜냐하면 날 위해 십자가 달려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선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한평생 주님의 은혜 감사하며 주님 영광 위해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설교말씀>

 오늘은 고린도후서 12장 7절로 10절 말씀을 가지고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눕니다. 제목을 따라 해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신앙생활은 평생 자기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내가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았어요. 왜? 내가 내 삶의 주인이니까. 그런데 예수를 믿고 나서 삶의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아니라, 날 위해 몸 버려, 피 흘려 돌아가신 예수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그래서 내 속에 두 사람이 존재하는데 옛 사람, 내가 주인 되어 살던 옛 사람하고, 예수님이 주인 되어 사는 새사람하고 둘이 늘 충돌하게, 그렇게 우리 삶이 일생 동안 그러한 삶을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로마서 7장을 보면 사도 바울이 자세히 그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 중의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21절로 23절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도다”

 가는 곳마다 많은 교회를 세우고, 신약성경의 절반 가까이 기록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수많은 병자를 고친 사도 바울도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는 평생 옛사람과 싸워야 했습니다. 사람이 항상 성령으로 충만할 수가 없습니다. 때때로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 소홀히 하고, 기도하는 것 소홀히 하고, 찬양하는 것 소홀히 하고, 말씀 보는 것 소홀히 하면, 성령의 은혜가 내게서 사라지고 옛사람이 싹 올라와서 나를 옛사람의 모습으로 이끌어갑니다.

 그래서 우리가 옛사람과 싸워 승리하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합니다. 로마서 7장에서 이와 같은 옛사람과 새사람의 갈등에 대해서 기록하고 난 다음, 8장으로 넘어가면 2절에 이와 같은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옛사람을 지배하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옛사람을 정복하고, 주님 안에서 승리하며,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 보니깐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가 있다고 말씀합니다.


1. 육체의 가시

 먼저, 육체의 가시에 대해서 설명을 합니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과 8절에 설명이 나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바울은 위대한 사도였지만 육체에 가시가 있었습니다. 다시 말하면 질병이 있었습니다. 무슨 질병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았지마는 진보적으로 해석하는 성경 학자들은 그가 간질을 앓았다고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복음주의적인 학자들은 그가 눈이 심히 나빠서 눈이 낫기를 기도했을 것이라 말합니다. 실제로 그는 얼마나 눈이 나빴는지 글을 쓰려면 크게 써야되고, 그렇지 않으면 누가 대신 옆에서 불러주면 받아 적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로마 교회에 편지를 보낼 때에도 더디오라고 하는 분이 옆에서 그가 불러주면 대신 적었습니다. 로마서 16장 22절을 보면, “이 편지를 기록하는 나 더디오도 주 안에서 너희에게 문안하노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세 번이나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나의 병을 고쳐 주시옵소서!”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병을 고쳐 주지 아니하시고 그냥 그 몸에 머물게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나가서 말씀을 전하고, 죽은 자를 살리고, 수많은 병자를 고칠 때, 늘 그를 부정적으로, 이렇게 구부러지게 보는 사람들이 그를 비판하고 조롱합니다. “아니, 자기 자신의 병도 못 고치면서 무슨 병을 고친다고 그래? 자기 자신이 그렇게 문제가 있으면서 무슨 하나님 말씀을 전한다고 그래?” 그렇게 비판을 했습니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핸디캡이 있습니다. 약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관점으로 그 약점을 바라보면, 약점은 더이상 약점이 아니고 핸디캡은 더이상 핸디캡이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와 축복이 우리에게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청소년 수련회를 한 번 인도한 적이 있는데 그날 수련회가 끝난 다음 한 여자 중학생이 저한테 왔습니다. “목사님, 너무너무 은혜를 많이 받았어요. 근데 사실 저는 그동안 늘 핸디캡이 있어 수치스럽게 여겼는데, 오늘 말씀 듣고 완전히 자유함을 받았어요. 제 손등에 점이 있는데 늘 수치스러워서 수건으로 항상 칭칭 싸고 다녔고, 한 번도 제가 수건을 푼 적이 없고 늘 손을 감추고 다녔는데, 오늘 이후로 제가 수건을 풀어버렸어요.” 가만히 들여다보니까 요만한 점이 하나 있어요. 아무도 그 점이 있다고 신경도 안 쓸 그런 점인데도, 본인에겐 핸디캡이 되어 ‘누가 보면 어쩌나?’ 그래서 손수건을 칭칭 감고 다녔다는 것이요.

 누구나 이런 남에게 내놓고 싶지 않은 그러한 자신의 부끄러운 모습이 있습니다. 핸디캡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고 나서는 이것이 나에게 더이상 핸디캡이 될 수 없습니다. 맥스 루케이도 목사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가시를 허락하신다면, 그것을 감당할 은혜도 주신다. 당신의 모든 근심을 갈보리로 가지고 가라. 십자가에 매달린 하나님의 아들이 베푸시는 은혜의 그늘 아래 서라. 그분의 상처를 보라. 가장 값진 선물을 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과거의 상처, 실패, 배신당한 경험, 복잡한 가정사, 이 모든 것들을 십자가 앞에 다 내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내게 열등의식을 가져다주고 핸디캡이라고 생각했던 그 모든 것을 다 내던져버리기 바랍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위대한 선언이 나옵니다. 이 말씀을 우리가 다 같이 믿음으로 고백합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작품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실패와 절망과 과거의 상처에 짓눌려 살아가는 그러한 과거의 옛사람의 모습은 우리에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이전 것은 다 지나간 것입니다. 지나간 것입니다!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 안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며 “나는 새사람이 되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나의 일생동안 주님이 내게 큰 은혜를 베푸신다!” 믿음으로 고백하며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2.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둘째로, 사도 바울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이 주신 말씀을 고백합니다. 12장 9절에 세 번 간절히 기도했을 때, 주님께서 주신 말씀입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병을 고쳐달라고 간절히 기도하고, 또 기도하고, 또 기도했더니, 주님께서 어떻게 응답을 주셨느냐? 병을 고쳐주신 것이 아니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미 너에게 충분하다. 네게 부족함이 없을 정도로 너에게 충만히 임했다.” 그 말씀인 것입니다.

 병이 고침 받은 것이 아닙니다. 뭐가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마음의 자세가 달라진 것입니다. 늘 내게 병이 있어서 이것이 나의 핸디캡이고 사람들이 나를 손가락질하고 내게 부끄러운 모습이었는데,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주님이 음성이 들려오고 난 다음 더이상 이것이 핸디캡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의 은혜가 내게 풍성하고 내게 족합니다. 나는 주님 안에서 만족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모든 것이 되십니다.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오직 예수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합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여러분 뭔가 부족하십니까? 뭔가 여러분의 상처가 있습니까? 연약함이 있습니까? 부끄러움이 있습니까? 오늘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더이상 그것이 너의 상처가 될 수 없고, 더이상 그것이 너의 핸디캡이 될 수가 없고, 더이상 그것이 너의 약점이 될 수가 없다.’ 이제는 주님 안에서 가슴을 펴고 담대하게 선포해야 됩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입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습니다. 더이상 나는 상처받은 쭈그러지고 망가진 옛사람의 모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안에서 완전히 변화된 모습으로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주님께 사랑받는 주님의 자녀로 믿음의 삶을 살아갑니다. 나는 변화되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합니다. 이 갈라디아서 2장 20절은 사도 바울의 한평생 신앙의 고백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할렐루야!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사는 것 같지만 주님, 옛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십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서 살면 얼마나 인생이 피곤하고, 힘들고, 상처투성이가 되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입만 열면 남 탓을 해요. “내가 아버지 잘못 만나 갖고 오늘 이 모양 이 꼴이 되었어요. 밤낮 아버지 술 먹고 들어와서 엄마 때리고. 크! 내가 그래서 오늘 이 모양 이 꼴이 되어서 내가 또 마십니다. 크!” 아니, 자기가 술을 마시는 것이지 아버지가 무슨 상관이 있는 것이에요. 아버지가 술 마셔서 그렇게 잘못되었으면 본인은 그렇게 살지 말아야지, “아버지 때문에 나도 마십니다. 크! 부어라 마셔라, 그냥.” 이것은 본인이 잘못된 선택과 잘못된 길을 가는 거예요. “아! 나는 엄마의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습니다. 밤낮 집에 오면 어머니가 안 계셔서 밤낮 라면만 먹고 살았습니다.” 라면이 맛만 좋구만 뭐가 문제라는 거예요.

 자기가 남 탓을 하고 살면 인생이 행복하지 않아요. 늘 모든 것을 “내 탓이오.” “내 탓이오.” “내 큰 탓이로소이다.” 해야 인생이 행복한 것입니다. “내가 글쎄 눈에 콩깍지가 꼈지. 이런 사람을 내 남편이라고 모시고. 아이고, 내 팔자야!” 아니 자기가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내 팔자라고 그러면서. 또 그러면서 또 잘 살아요, 또. 여러분, 남편 탓할 게 아니에요. 아내 탓을 할 게 아니고, 부모 탓을 할 게 아니고, 시부모 탓을 할 게 아니고, 장인 장모 탓을 할 게 아니고, 자식 탓을 할 게 아닙니다. 다 내 탓입니다. 문제는 100% 나에게 있는 것이에요.

 저 사람이 자꾸 나를 괴롭힌다고요? 아니에요. 괴롭힌다고 느끼는 내가 잘못이지. 뭐라고 그래도 “못 들었습니다. 못 봤습니다. 나랑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만 바라보면 되는거예요. 그런데 지나가다 누가 뭐라고 하면 가다가 멈춰서, “뭐라고 그랬어, 지금 방금!” 막 이러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래서 우리가 우리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평생 인생이 힘들고 피곤한 것이에요. 여기 혹시 저거 내 얘기다 하는 분 내 손들어보라고 안 그럴 테니까, 오늘부터 마음 자세를 바꾸시기 바랍니다. 따라 하세요. “나는” “주님의 은혜로 삽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할렐루야! 그러면 인생이 행복한 거예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이 예배, 찬양을 부르는데 얼굴이 환한 모습을 보면서 참 행복함을 느꼈습니다. 아! 찬양 부를 때 얼굴이 기쁨이 충만하고 그것이 행복이고 그것이 은혜고 그것이 축복이다. 그중에 한두 사람은 ‘...’ 하고 있지만 다음 주일 날부터 얼굴이 환하게 펴질 줄 믿습니다. 제가 속으로 그렇게 기도했어요. 할렐루야! 늘 주님 안에서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평생 고아로 살아도요, 마음 자세를 바꿔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아요. 성공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아요. 아니, 부모가 버려 가지고 프랑스에 입양되어 갔는데 거기서 떳떳하게, 자신 있게, 자신의 열등감을 딛고 일어나서 장관까지 되더라고요. 장관! 과장, 국장이 아니라 장관. 장관. 그게 마음이 긍정적으로 바꿔 져서 그렇습니다. ‘아, 난 버림받았다. 난 버림받았어. 여기까지 와서 이렇게 머리 색깔은 새까만데, 저 사람들은 머리도 노랗고 눈도 파란데, 나는 버림받았어.’ 이렇게 살면 그분은 거기서 장관은커녕 아무것도 못하고 끝났을 거예요. 그러나 마음의 자세를 바꾸니까 당당하게 그곳에서 입양아로 와 가지고 장관까지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본인의 질병의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했어요. 고린도후서 12장 7절과 9절입니다.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만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내가 너무나 큰일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칭찬받을 그러한 위치에 있기때문에 주님이 나를 낮추시는구나. 낮추시는구나. 그래서 날 겸손하게 하시려고 내게 이 질병을 허락하셨구나. 그래서 고난을 긍정의 눈으로 바라보고 고난을 축복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위대한 작가 베토벤도, 그가 두 귀가 다 멀게 된 후에 위대한 작품이 많이 만들어졌어요. 1795년부터 점점 청력이 나빠져 가지고, 1798년 그 이후로는 급속도로 청력이 나빠져서 두 귀가 완전히 멀어버립니다. 그런데 1798년 이후에 그가 거의 잘 들리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위대한 작품들이 많이 나왔어요. 그 유명한 베토벤의 교향곡 1번부터 9번까지가 다 그때 이후에 작곡된 것이고, 우리가 잘 아는 3번 영웅, 5번, 빠바바 밤! 운명, 9번 합창, 이 교향곡이 그때 이후로 나온 거예요.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도, 그리고 그 오라토리오 ‘감람산의 그리스도’도 그 이후에 다 작곡한 것이고, 1824년, 베토벤의 합창 9번, 그것이 초연했을 때, 사람들이 공연이 끝나고 박수를 치는데 베토벤은 못 들으니까, 박수 치는 것도 몰랐어요. 그때 알토 독창을 맡았던 분이, 솔리스트가 선생님을 잡아서 이렇게 돌려드려서 관객석을 보게 했습니다. 아, 사람들이 일어나 박수 치는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렸다고 하는 그런 기록이 나옵니다.

 그는 비록 육신의 귀가 닫혔지만, 하늘을 향한 귀가 열려서 하늘의 선율들을 따갖고 와가지고 더 아름다운 작품을 많이 만들어낸 것입니다. 저희 작은아버님이 늘 하시던 말씀이 기억이 납니다. “그 위대한 작곡가들은 그들의 능력으로 작곡을 한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아 작곡을 한 것인데, 하늘에 흐르는 많은 그런 음률을 받아 적어서 그러한 위대한 작품이 나온 것이다.”

 여러분들의 영적인 귀가 열려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영적인 눈이 열려서 하늘의 신비한 것을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인생이 오늘 이후로 주님 안에서 위대한 인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것이 여러분 삶 가운데 풍성히 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3.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바울과 실라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억울하게 매 맞고 붙잡혀 감옥에 던져졌지마는 그 절망의 자리에서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때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사도행전 16장에 설명이 나옵니다. 25절에,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26절,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그 결과로 그를 지키던 간수와 온 가족이 예수를 믿습니다. 16장 31절, 32절입니다.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주의 말씀을 그 사람과 그 집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전하더라”

 할렐루야! 그래서 우리는 “내가 약할 때 주님의 은혜가 임하고, 그때 내가 강하게 됨을 믿습니다.” 믿음으로 고백하는 우리 모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는 이 놀라운 은혜에 대해서 환란이 축복이라는 것을 늘 고백을 하고 모든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로마서 5장 3절로 4절에,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할렐루야! 절대 긍정 절대 감사로 나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가 약할 때, 강함이라’고 하는 주님의 축복의 말씀을 우리는 기억해야 됩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주님의 축복으로, 주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감당할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세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 같지만 은혜를 받고 난 다음 영적인 눈을 떠보면 주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우리는 고백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구원받은 것이 여러분의 능력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셔서 여러분 구원해주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어떠한 능력이 있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능력을 부어주셔서 오늘 여기에 와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건강을 주셔서 이 자리에 와 앉아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재능을 주셔서 주님을 찬양하게 만들어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주님의 은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주님의 은혜에 감사해야 됩니다. 모든 것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일생을 살아온 동안 우리는 절대 긍정 절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면 불가능이 없습니다. 놀라운 기적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패의 인생도 성공으로 바꿔지게 되는 것입니다.

 감리교, 성결교의 창시자가 되는 요한 웨슬레를 소개합니다. 요한 웨슬레는 목사님 아들로 태어났는데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어요. 그 어머니가 자녀를 많이 낳았지요. 별로 안 놀라시네. 열다섯 번째. 다섯 번째가 아닌 열다섯 번째로 태어났는데, 명문대학인 옥스퍼드를 졸업하고 아주, 본인이 자신감을 가지고 목사가 되고 난 후에 미국에 선교사로 건너갑니다. 좋은 대학도 나왔죠, 스스로 실력도 있다고 생각했죠, ‘내가 가서 선교를 하면 큰 부흥의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했는데, 조지아주에서 3년 동안 선교사역이 제대로 되지 않고 완전히 죽을 쑤고, 기록을 보면 완전히 실패해서 두 손 들고 본국으로 돌아갔다고 기록이 남겨져 있습니다.

 돌아가는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큰 풍랑을 만나 가지고 배가 곤두박질해서 죽음의 공포가 몰려왔습니다. ‘선교에 실패하고 이제 난 죽는구나.’ 가장 낮아졌던 그 시간에 찬송 소리를 듣습니다. 보니까 당시 성령운동을 하는 모라비안 교도들이 모여서 찬송을 부르고 기도를 하고 있었어요. 요즘 말하면 순복음 교인들이 거기 있었던 거예요. ‘저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길래 죽음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저렇게 기쁨으로 찬송을 부르는가?’ 그래서 영국에 돌아오고 난 다음에 그들이 예배드리는 곳으로 찾아갔습니다.

 1738년 5월 24일 수요일 날 밤 8시 45분, 말씀을 듣다가 불이 임했습니다. 그가 뒤집어졌습니다. 그때가 그의 삶의 전환점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그날 이후로 성령 충만한 은혜 가운데 머물러 있으면서 주님께 쓰임 받기 시작했는데 이듬해 1월 1일 다시 한번 철야기도를 갔다가 성령의 불을 받았는데 이렇게 기록을 남겼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기를 새벽 3시까지 계속하였다. 그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강하게 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기쁨으로 소리쳤다. ‘오! 하나님, 우리는 당신을 찬양합니다. 오! 당신은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성령의 불이 떨어지니까 그가 말씀을 선포할 때 사람들이 막 구름 떼처럼 몰려왔습니다. 자기가 3년 동안 그렇게 미국 가서 사역을 해도 실패했는데, 이제는 그가 스스로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불을 토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세계는 나의 교구다!” 다시 말하면 온 세계가 나의 구역이다! 그렇게 그는 선포하면서 52년 동안 잉글랜드, 웨일즈,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전역을 말을 타고 복음을 전했으며, 하루 평균 4번 반, 평생 총 4만2천 번의 설교를 하고 수많은 사람을 주님께로 인도하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낸 귀한 종으로 쓰임 받았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한 곳에 그 지역 사회가 변화되었습니다. 부랑자, 술주정뱅이들이 사라지고, 범죄율이 줄어들고, 수많은 병자가 낫고, 하나님의 은혜가 막 폭포와 같이 임했던 것입니다.
 가장 낮아져서 실패한 자로 있던 그가 성령의 은혜를 체험하니까,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주님의 은혜가 임해서 실패자인 요한 웨슬레를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종으로 세워서, 세계 역사 가운데 길이길이 기억되는 하나님의 종으로 세우셨던 것입니다.

 지금 그 하나님이 우리도 그렇게 쓰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여러분, 과거에 어떠한 실패가 있었고, 어떤 상처가 있었고, 어떤 어려움이 있었고, 어떤 문제가 있었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지금이 중요합니다. 지금 여러분이 주님 앞에 붙잡힌바 되면 주님이 요한 웨슬레를 쓰신 것처럼 여러분의 일생도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의 일생으로 사용하여 주실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와 축복이 넘쳐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 찬송, 존귀, 영광,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내가 약한 그 때 강함이라’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한평생 하나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될 수 있도록 은혜 내려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기사입력 : 2018.08.05. pm 16:2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