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ㆍ특집 > 김지방 기자의 ‘사랑, 세상을 변화시키다’
사이다와 고구마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사랑  vs  말콤 엑스의 분노

 차가운 탄산음료처럼 짜릿하고 시원한 말이 있습니다. 요즘엔 그런 말을 사이다라고 부릅니다. 반대로 속을 답답하게 만드는 발언은 고구마라고 합니다. 김칫국물이 없으면 삼키기 어려울 정도로 갑갑한 소리라는 뜻이지요. 1960년대 미국에 두 명의 흑인 지도자가 있었습니다. 말콤 엑스와 마르틴 루터 킹 목사입니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습니다. 둘 다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흑인들의 인권과 해방을 목소리 높여 외치다 죽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사이다, 다른 한 사람은 고구마였습니다. 같은 시대에 같이 흑인들을 위해 일했지만 신앙도 사상도 너무나 달랐습니다.

 대도시 뉴욕의 뒷골목에서 자란 말콤 엑스는 191㎝의 큰 키에 날카롭고 강렬한 발언으로 인기를 끌었습니다. 그는 백인을 악마라고 부르면서 높고 허스키한 목소리로 증오를 쏟아내 사람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습니다. 말콤 엑스는 흑인들을 향해 아프리카로 돌아가거나 차라리 미국 안에 흑인만의 나라를 따로 만들자고 말했습니다.

 “백인의 교과서는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치른 전쟁이었다고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왜 2000만명의 흑인이 여전히 노예처럼 얽매여 있습니까. 지난날 우리는 미국 사회를 아메리칸 드림이라고 동경했습니다. 그러나 백인에게는 꿈이지만 우리에게는 악몽이었습니다. 검은 것과 흰 것이 섞여서 좋은 것은 밀크커피 뿐입니다. 부도덕한 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이 사회에서 분리해 우리의 땅으로 가는 것입니다.”

 백인의 인종차별에 시달려온 흑인들에게 말콤 엑스의 말은 사이다였습니다. 젊은 흑인들은 그의 설교에 열광했습니다. 흑인 청년들은 말콤 엑스의 말을 따라 백인과 싸우기 위해 ‘블랙팬서’라는 무장 단체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마르틴 루터 킹 목사는 둥글둥글한 몸집에 굵고 부드러운 바리톤의 목소리를 지녔습니다. 키는 172㎝로 말콤 엑스에 비하면 작은 편이었습니다. 그는 흑인이 마음을 열고 백인과 손을 잡자고 호소했습니다. 백인이 흑인을 멸시하는데, 대체 무슨 소리인지 흑인들에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백인들이 그의 집에 폭탄을 던졌을 때 흥분한 사람들이 모여들어 백인을 비난하며 경찰과 백인 마을을 공격하려고 했습니다. 그 때 킹 목사는 낮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제발 무기를 버리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복수를 통해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칼을 쓰는 자는 칼로 망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합시다. 백인 형제들이 우리에게 어떤 일을 하든 우리는 그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사랑을 보여줘야 합니다. 증오를 사랑으로 이겨야 합니다. 제가 없더라도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하는 한 이 운동은 계속될 것입니다. 우리는 승리할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가십시오.”

 킹 목사의 연설은 감동적이고 카리스마가 넘쳤지만 과연 한없는 사랑만으로 흑인의 자유를 쟁취할 수 있을지 사람들은 답답했습니다.

 1960년대 미국 사회는 혼란스러웠습니다. 흑인들은 백인과 같이 앉을 수 없었고 교회에서 함께 예배드릴 수도 없었습니다.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을 당하고 갱단과 FBI가 총격전을 벌이던 시대였습니다. 1963년 8월 28일 워싱턴D.C.에 모인 20만명의 사람들 앞에서 킹 목사는 다시 한 번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흑인 어린이가 백인 어린이와 형제자매처럼 손을 마주 잡는 날이 오리라는 꿈입니다.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이 낮아지며 거친 땅이 평탄케 되리니 주님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게 될 날이 있으리라는 꿈입니다. 모든 주, 모든 도시, 모든 마을에서 자유의 노래가 울린다면 흑인과 백인, 유대교도와 기독교도, 개신교인과 가톨릭교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주님의 자녀들이 손에 손을 잡고 오래된 찬송가를 함께 부르게 될 그날을 앞당길 수 있습니다.”

 말콤 엑스는 이런 킹 목사를 비난했습니다.
 “워싱턴 대행진은 쇼였다. 흑인들을 잠시 달랬을 뿐이다. ‘나에게는 꿈이 있다’고 했지만 흑인들은 여전히 악몽 같은 현실에 살고 있다. 20만명이 모였지만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다.”
 말콤 엑스는 뒤늦게 흑인도 백인도 모두 같은 인간이라는 걸 깨닫고 노선을 바꾸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꿈을 펼치기도 전에 같은 흑인이 쏜 총에 맞아 숨졌습니다. 킹 목사도 백인의 손에 희생됐습니다.

 사이다가 이겼을까요, 고구마가 이겼을까요.
 40년 뒤 미국은 흑인을 대통령으로 뽑았습니다. 백인과 흑인만 아니라 전 세계 모든 인종이 모여사는 세계 최강국이 되었습니다. “사랑으로 증오를 이기자”는 킹 목사의 고구마 설교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요즘 남북한 관계가 다시 풀리고 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북한을 미워합니다. 전쟁을 겪고 3대 세습, 핵무기 개발을 보았으니 미워하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하지만 사랑으로 증오를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입니다. 킹 목사가 설교한 용서와 화해의 복음이 한반도에도 필요합니다.

<김지방 기자>
 - 국민일보 기자
 - 한국기자협회 부회장, 신문소득공제추진단장
 - 캐나다 밴쿠버 트리니티웨스턴대학 ACTS 연수중
 - 저서 ‘적과 함께 사는 법’  ‘토론의 힘’ 등

 

기사입력 : 2018.07.08. am 10:26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