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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초대교회의 경제생활 下

 초대교회 성도들의 가장 아름다운 전통 중 하나가 남녀노소,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모두 하나가 되어 서로 필요한 물건을 나누어 쓰는 것이었다. 이러한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전통에 대해 사도행전은 이렇게 묘사한다.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행 4:32).

 그런데 이 같은 아름다운 기부와 헌신이 줄을 잇는 중에 불순물도 섞이게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다. 겉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오히려 칭찬받을 만한 일이었다. 줄을 이어 계속되는 선행 중 선행, 즉 자신의 밭이나 소유를 팔아서 그 값을 사도들의 발 앞에 둠으로써 아름다운 기부자의 대열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소유를 판 값의 일부를 떼고서 나머지를 헌납한다고 해서 그것을 나무랄 사람은 없었다. 중요한 것은 교회와 성도들을 위해 기부한다는 데 있었다.

 문제는 소유를 판 값의 일부를(또는 상당액을) 감추고 나서 나머지를 교회에 가져오고서도 마치 그것이 전부인 양 부풀려 말했다는 데 있었다. 이를테면 사도들과 교회의 칭찬도 받고, 자신들의 호주머니도 두둑하게 하려는 속셈이었다. 교회에서의 명성을 ‘할인된 가격으로’ 얻으려는 술수 바로 그것이었다.

 이것을 베드로는 성령을 속이고 하나님을 기만한 것으로 보았다.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행 5:3∼4; 5:9). 그 결과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세 시간의 시차를 두고서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하고 말았다. 이 두 부부의 극적인 죽음은 온 교회와 주변 사회에 큰 두려움을 가져왔다(행 5:5, 11). 공의의 하나님의 준엄하심이 초대교회에 처음으로 널리 퍼지게 되었다.

 “천국의 축소판”이 아닌가 했던 초대교회에 “찬물을 끼얹은” 이 사건은 여러 가지 교훈을 우리에게 준다. 먼저,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모임이지만 결코 온전한 의인들만의 집합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좋은 씨와 가라지 비유’(마 13:24∼30)뿐만 아니라 신약성경 전체는 교회 안에도 흑암의 세력들이 기생하고 있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영적 분별력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고전 12:10, 요일 4:1∼3).

 다음으로 신실한 신앙인이라 할지라도 성령 충만하지 않고 “사탄이 마음에 가득할 때”(행 5:3)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자신들의 영성이나 봉사, 헌신, 구제, 선교 행위를 과장하거나 과시하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이다. ‘과대 포장’은 신앙생활에서도 금물이다.
 또한 초대교회가 가장 자랑스럽게 여겼던 데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교회생활, 신앙생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에서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끝으로, 우리 하나님은 거짓말이나 없는 것까지 동원해서 찬양드리고 영광돌려야 할 정도로 부족한 분이 아니시라는 사실이다(롬 3:7∼8 참조). 우리 하나님은 홀로 높으신 분이시고 부족한 것이 전혀 없으신 분이시다. 아나니아와 삽비라는 설령 자신들의 기부 행위가 교회에 덕을 세우고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높인 것으로 생각했을지 몰라도 우리 하나님께는 가증스러운 “할리우드 액션”에 불과한 것이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받지 못하느니라”(마 6:1).

 

기사입력 : 2018.07.08. am 10:0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