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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종교개혁의 눈을 뜨다


 사진찍기에 자신없는 사람은 스위스로 가보자. 어떻게 찍어도 작품이다. 누구랑 찍어도 예술이다. 셀카에 지쳤다면 중세의 향기가 느껴지는 치즈마을 그뤼에르로 가서 퐁듀(Fondue;팔팔 끓는 치즈에 감자를 찍어먹는 전통음식)를 먹어보자. 그 고소함의 행복감이 사라지기도 전에 사계절 녹지않는 만년설 융프라우 정상에서 컵라면으로 엄지척!할 수도 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눈부신 자연과 깨끗함에 감사할 수 있는 곳이 스위스다. 루체른, 인터라켄, 그린델발트, 체르맛, 마테호른, 취리히 그 어느 한곳도 놓칠 수 없는 절경들이다.


 취리히는 스위스의 수도가 아니다. 하지만 제일 큰 도시이며, 세계에서 가장 살기좋은 도시 중 하나로 손꼽힌다. 중앙역에서 취리히 호수를 향해 걷다가 반호프 거리 중간쯤에서 만나게 되는 교회 세 곳이 있다. 성 피터 교회, 프라우뮌스터 그리고 그로스뮌스터이다. 성 피터교회는 높은 첨탑에 유럽에서 가장 큰 시계로 잘 알려져 있으며 프라우뮌스터는 샤갈이 만들었다는 스테인글라스와 어우러진 찬양대석으로 유명하다. 인상적인 두 개의 탑을 가진 그로스뮌스터는 16세기 종교개혁가 츠빙글리 목사가 열정을 다해 사역했던 교회이다.


 츠빙글리 목사는 1519년 1월 1일 그로스뮌스터 담임목회자로 부임한 후 그동안의 전통을 깨고 연속적인 강해설교를 시작했다. 한권의 성경을 선택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설교하는 방식인데 기존의 전통과는 다른 것이었다.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1523년 공개논쟁으로 확대되어, 그는 라틴어가 아닌 일상어인 독일어로 자신의 주장을 67개조 조항으로 정리하여 해설까지 덧붙여 출판한다. 이 조항은 교회적인 조치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개혁 프로그램을 포함하고 있어서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이 전면적이면서도 포괄적이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국 시의회가 츠빙글리의 손을 들어줌으로써 취리히는 스위스 종교개혁 운동의 중심지가 됐다. 츠빙글리 목사가 강조한 것은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 신뢰’와 ‘성경말씀에 대한 강조’였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표어가 츠빙글리에게서 시작됐다. 성경공부시간을 통해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할 수 있도록 번역작업에도 최선을 다했던 그였다. 학자들은 루터의 종교개혁이 자기 구원의 확신에 대한 몸부림에서 출발했다면, 츠빙글리의 종교개혁은 스위스 국민들의 구원에 대한 갈망에서 시작되었다고 평가한다.


 그는 스위스 국민들의 눈을 뜨게한 위대한 인물이었다. 츠빙글리는 열정적으로 사역을 하다가 1531년 전쟁중 부상으로 47세의 나이로 전사하고 만다. 제네바에서 칼뱅(Kalvin, 칼빈의 프랑스 음)이 종교개혁을 시작하기 5년 전이었다.
 역사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은 칼뱅을 거쳐 웨슬레의 감리교운동을 통해 큰 영적부흥운동을 일으키셨다. 이 부흥의 불길은 미국으로 옮겨가 휘니를 통하여 성결운동으로, 20세기에 들어서며 오순절운동으로 이어졌다. 츠빙글리의 열정이 새겨져 있는 이곳 취리히에 오순절 성령운동의 불길이 다시 타오르길 소원해 본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스위스(취리히)=글·사진 임훈 목사

 

기사입력 : 2018.06.24. am 10:54 (편집)
임 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