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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

진짜와 가짜


가족이 함께 사는 것을 죽을 때까지 꿈꿨던 화가
위작 시비 휘말린 건 세상에 하나 뿐인 진품 매력 때문
빛엔 어둠이 따르기 마련, 어둠에 발목 잡히지 않게 조심해야 

 살아생전, 꿈에 그린 가족과의 재회. 과수원에서 가족과 함께 과일을 따며 평화롭게 살 수만 있다면…. 화가 이중섭은 전쟁의 소용돌이 안에서 빼앗긴 민족과 가족을 되찾고자 늘 소망했다. 굴곡의 역사 속, 세상이 아무리 험난해도 그는 가족은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중섭의 작품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을 보면 과수원에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넘친다. 파마머리를 한 아내 남덕과 콧수염을 단 화가 이중섭 주변에는 여섯 명의 아이들이 있다. 노란 나무에 올라 과일을 따는 아이, 그 밑에서 천을 펼치고 있는 아이, 사다리를 받치고 있는 아이, 엄마와 함께 과일을 따는 아이. 그림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즐겁고 행복한 표정이다. 이중섭이 살아생전 그토록 바라던 풍경이었다. 이중섭이 상상한 낙원이 바로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다.

 이중섭이 아이를 여러 명 그리게 된 데에는 가슴 아픈 사연이 있다. 이중섭은 1945년 결혼하고 원산 광석동에 신혼집을 마련했다. 그리고 이듬해인 1946년 남덕과 사이에 첫 아들을 낳지만 태어나자마자 죽게 된 것이다. 아이가 죽은 날, 이중섭은 슬픔을 달래려고 선배 시인 구상과 밤늦도록 술을 마셨다. 죽은 자식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아이들을 더 많이 낳아 오순도순 정을 나누며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일찍이 이중섭처럼 가족에 대한 사랑을 이토록 절절하게 오랫동안 그린 화가는 없었다. 가족이 모여 사는 일이야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을, 중섭은 아내와 아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것에 대해 죽을 때까지 그 행복을 꿈꿨다. 그런 이중섭을 나의 아내는 연민하며 좋아했다.

 이중섭에게는 죽은 아들 외에 평생을 그리워했던, 살아 있는 아들이 두 명 더 있었다. 2005년 이중섭 타계 50주년 행사비를 마련하기 위해 둘째 아들이 평소 가지고 있던 아버지의 그림 몇 점을 경매에 내놓았는데, 경매에 나온 이중섭 그림이 가짜라는 뉴스가 보도됐다. 이중섭 그림 가운데 4점이 위작으로 판명 났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이중섭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던 나로서는 이 사건이 적잖은 충격이었다. 살아생전 이중섭은 자신이 그릴 수 있었던 최고의 작품을 그렸을 뿐이었는데, 후대 때문에 그의 예술 세계가 거짓으로 얼룩져 버렸다는 것에 마음이 몹시 아팠다. 미술계 지인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이중섭 같은 화가의 명성이 더는 추락하게 내버려둘 수는 없다며 대책을 논의해왔다. 이중섭의 진작 가운데 으뜸을 골라 세상에 내놓아 이중섭의 진가를 보여주어야 하는데 마땅한 작품을 물색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결국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만한 작품이 없다는 게 지인의 내심이었다. 가장 귀한 것을 내놔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펄쩍 뛰었다. 그 작품은 아내의 것과 다름없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러나 이중섭의 명성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아내가 아끼는 그림을 경매에 내놓았다. 아내의 원망이 눈앞에 선했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아내는 뉴스를 통해 이중섭 그림이 경매에 넘어간 사실을 알았노라고 했지만 나는 잘못 안 거라며 시치미를 뗐다. 그리고 잔꾀를 내어 똑같은 판화작품을 머리맡에 걸어두기로 했다. 친한 지인이 진짜와 진배없는 판화작품 액자를 만들어왔다. 다시 집안은 이중섭의 아이들로 시끌벅적한 듯했다.

 <과수원의 가족과 아이들>을 팔고 두 달 쯤 지난 어느 날, 나는 아내에게 조용히 말을 건넸다. 지금 벽에 걸린 저 작품은 가짜다. 당신이 본 뉴스가 사실이다. 나는 내가 왜 작품을 팔 수 밖에 없었는지를 조목조목 설명했다. 그리고 아내에게 용서를 구했다. 다행히 아내는 이중섭에 대한 나의 애착을, 의무감을 이해해 주었다.

 사실 미술품 위조 사건은 심심치 않게 언론에 발표된다. 해외 유명 작가는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이중섭이나 박수근 같은 화가의 위작이 발표된 적이 여러 번 있다. 때때로 미술품을 수집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위작과 직접 만날 때가 있다. 그때는 누굴 믿고 미술품을 사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위작의 탄생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다. 작가가 그린 사실이 기록에는 있는데 작품이 없는 경우, 누군가 위작을 그려 진품이 발견되었다고 대중을 속일 가능성이 크다. 또 고가의 작품일 경우 위작이 나돈다. 작품의 가격이 비싸다는 것은 그 작품을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위작이라고 판단한 작품이 후에 진품일 경우도 있다.

 위작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 됐다. 고대 페니키아의 위조꾼들처럼 위작을 통해 한몫 잡으려는 속셈이 있거나 진품의 매력을 시기하는 무리가 늘 위작을 만들어 낸다. 그래서 늘 경각심이 필요하다. 미술품이 늘 위작이라는 시비에 휘말리는 것은 세상에 딱 하나 밖에 없는 진품이 가진 매력 때문이다. 세상 모든 빛에 어둠이 따라오는 것을 탓하기 보단 스스로 어둠에 발목이 잡히지 않게 조심하는 수밖에 없는 시대가 됐다.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6.17. am 11:23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