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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브론-같은 아버지, 다른 두 형제

창세기 처음등장…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다윗을 왕으로 영접

 “그의 아들들인 이삭과 이스마엘이 그를 마므레 앞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의 밭에 있는 막벨라 굴에 장사하였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이 헷 족속에게서 산 밭이라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니라”(창 25:9∼10)
 
 헤브론, 익숙하지만 낯선 이 도시는 예루살렘과 더불어 유대교 3대 성지 중 하나이다. 역사적으로 성서적으로 많은 의미가 있는 이 도시는 과거 이삭과 이스마엘의 이야기 뿐 아니라 그들의 아버지 아브라함, 그리고 현재 그들의 이야기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시간 30분 그리고 브엘세바에서 북쪽으로 약 40분 가량을 올라가다보면 만나는 도시이다. 팔레스타인 자치지구인 서안 지구 안에 위치한 도시로서 ‘족장들의 무덤’이라는 이정표와 함께 막벨라 굴(사진위)이라는 사인도 함께 보게 된다. 이름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무슬림과 유대인 모두에게 종교적으로 매우 중요하게 여겨지는 도시인 이 곳이 바로 헤브론이다.

 헤브론은 창세기에 처음 등장한다. 이 곳은 아브라함이 롯과 헤어져서 야훼를 위하여 제단을 쌓은 곳이다. 그리고 이 후 죽은 사라를 매장하기 위하여 헷 족속 소할의 아들 에브론에게 구하여 막벨라 굴을 산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 후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도 모두 그곳에 매장되게 된다. 헤브론은 그 이후에도 계속 등장한다.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을 때 대적했던 왕들 중 하나가 헤브론 왕이었다. 그 이후 헤브론은 여분네의 아들 갈렙이 차지하게 되어 이스라엘의 도성으로 남게 되었다. 헤브론은 다윗이 유다 지파의 왕으로서 활동한 지역이기도 하며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가 다윗을 왕으로 영접했던 곳이기도 하다. 그 후에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이전까지 헤브론은 이스라엘의 수도로서 그 기능을 하기도 하였다. 1900년대 초까지 이 곳은 무슬림과 유대인들 약 1만명이 함께 살고 있었다. 그러나 1917년 이후 영국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통치하게 되면서 헤브론은 성지로 떠오르게 된다. 그 결과 수많은 유대인들이 몰려들게 되고 급증하는 유대인들을 경계하던 무슬림은 결국 1929년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던 유대인들을 학살하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결국 영국정부는 이런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을 헤브론에서 강제 이주시키게 된다. 유대인들은 눈물을 흘리면서 자신들의 조상들의 무덤을 지키지 못하고 강제로 떠나야만 했다. 1948년 독립 이후에도 유대인들의 일부는 목숨을 걸고 다시 그 땅으로 돌아가 살게 되었지만 무덤 자체에 대한 접근은 엄격하게 제한되었다.  1967년 6일 전쟁을 통해 요르단군을 몰아낸 유대인들은 비로소 다시금 헤브론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고 다시금 조상들의 무덤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하고 있다. 이전까지 헤브론 성지의 거대 건축물은 무슬림에게만 허락된 곳이었고 유대인들은 한쪽 벽면으로 향하는 7개의 계단만이 허락되었다. 그러나 현재는 건물의 내부를 나누어서 야곱과 레아의 무덤은 유대인들의 회당이 있고 그 반대편의 이삭과 리브가의 무덤은 무슬림들이 예배하고 있다. 재밌는 점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무덤을 같이 공유하고 있으며 불과 벽 하나 창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신앙의 본질 그리고 그 믿음의 조상들이 이 곳을 통해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해 올지 들어볼 필요가 있다. 이스라엘을 방문한다면 한번쯤 들러서 그 긴장감과 그 너머에 이루게 될 화합에 대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형제가 평생을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며 보지 않고 살다가 어쩔 수 없이 보게 되는 날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부모님의 장례식일 것이다. 이삭과 이스마엘이 함께 모여 아브라함을 장사한 날이 있었던 것처럼 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모여 다시금 언약을 떠올리며 지금까지의 미움과 시기를 묻어버릴 날을 소망해본다.

김요셉 목사

 

기사입력 : 2018.06.17. am 11:22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