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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초대교회의 경제생활 中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인해 탄생한 초대교회에서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최초’였다. 문자 그대로 사도들과 성도들이 역사를 새롭게 써내려가는 하루하루였다. 최초의 방언, 최초의 설교, 최초의 성찬, 최초의 침례, 최초의 기적 등… 그러다 보니 최초의 부정적인 일도 생겨나게 되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런데 이 사건이 사도행전 5장 1절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앞 본문과는 상관없는 새로운 이야기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다. 사실 개신교 신구약성경의 장절 구분은 1560년에 인쇄업자 로베르트 스테파누스가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할 때 처음으로 시도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에서처럼 장절 구분이 성경을 연속적으로 읽어가는 데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장애를 초래하는 경우가 흔하게 있다.

 한 마디로,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은 독립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그 시작 부분이 가까이는 “믿는 무리가 한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자기 재물을 조금이라도 자기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말하는 사도행전 4장 32절까지, 멀게는 오순절 성령 강림 직후 ‘최초’로 관찰된 초대교회의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전통을 기록한 사도행전 2장 44∼45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매우 긴 이야기의 한 부분이다. 초대교회의 이 아름다운 전통은 바나바처럼 논이나 밭, 집과 같은 재산을 가진 성도들이 그것들을 팔아서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기 때문에 가능했다(행 4:34∼35).

 이처럼 개인 재산에 대한 태도가 180도로 달라진 것은 복음을 접하면서 그들의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가족, 형제, 자매에 대한 개념이 변화되었다. 이에 대해 사도행전은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언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받아” 이와 같은 유무상통의 공동체를 만들어냈다고 기록하고 있다(행 4:33). 복음전파로 큰 은혜를 받다보니 공동체 내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지체들에게 마음이 열리면서 개인 소유까지 나누는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게 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 모든 과정이 자발적이었다는 점이다. 사도행전 2, 4장의 기록은 이와 같은 기부가 사도들의 강요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스스로 움직여서 이룬 쾌거였음을 보여준다. 이것이 공산주의와 날카롭게 구별되는 부분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진 지령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아래로부터 ‘영적 가족 공동체’가 만들어진 것이다(막 10:29∼30 참조).

 유감스럽게도 사도행전은 이러한 자발적인 재산 헌납의 전통이 모두 수정처럼 맑은 것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모두가 다 바나바(위로의 아들)처럼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그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둔”(행 4:36∼37) 것은 아니었다. 바나바의 모범적이고 칭찬받을만한 헌납 사실 바로 직후에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가 나온다. 이것은 초대교회도 완벽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부부의 ‘관대함으로 포장된 욕심’이 결국 파멸을 가져오게 되었다(자세한 내용은 다음 호에 계속).

 알곡을 심은 밭에도 가라지가 자라나듯이, 예수님의 12제자 중에 가룟 유다가 있었듯이, 유무상통의 아름다운 전통에도 흑암의 세력에게 이용당한 사람이 있었다. 이런 점에서 사도행전은 초대교회의 이상적인 모습만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최고 선 속에 기생하는 악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신뢰할만한 책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호성 목사(국제신학교육연구원장)

 

기사입력 : 2018.06.10. am 11:1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