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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4차원 영성 - 말17

방언은 성령의 도우시는 기도
지속적인 기도생활의 비결


 방언은 말할 수 없는 탄식의 기도다. 인간은 너무나 연약한 존재이며 그런 이유로 언제나 불확실함과 예측할 수 없는 현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늘 불안하고 두려운 마음을 비워내지 못한다. 이러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기 위해 성령은 우리 안에 임재하시고 친히 도우신다.

 우리가 어느 정도 고난당할 때는 기도라도 할 수 있다. 무릎을 꿇고 엎드려서 “하나님 아버지! 너무 고통스럽고 괴롭습니다. 도와주시옵소서!”라고 고백하며 탄식이라도 할 수 있지만, 너무 기가차면 말조차 나오지 않을 때가 있다. 누구든지 살아오면서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도 기가 차서 말도 나오지 않고 숨이 턱턱 막히고 정신이 아뜩해지는 체험이다. 그때는 기도라도 해야 되겠는데, 기도조차 할 수가 없는 막막한 순간이다. 바로 그 순간 성령은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므로 미래에 불확실성 속에 불안을 가지고 있는 우리 마음에 평안함과 소망을 샘솟게 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롬 8:26∼27)

 그렇다면 성령은 어떻게 말 할 수 없는 탄식으로 기도할까? 성령의 기도는 바로 방언기도이다.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방언으로 직접 기도해 주므로 그 어려운 고난에서 해방돼 나올 수 있다. 인생에서 큰 시련과 위기를 당한 사람은 하나님께 기도를 해야 그 시련을 이길 수 있는데 기도조차 하지 못할 때가 있다. 주위 사람들조차 그 사연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니 대신 기도해 줄 수도 없다. 그러나 성령은 그 사정과 사연을 세밀하게 알고 계시므로 온전히 성령을 의지하고 맡겨드리면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인 방언으로 기도해 주시기 때문에 그 형언할 수 없는 고난에서도 건져냄을 받을 수가 있다.

 방언은 깊고 오랜 기도를 가능케 한다. 기도는 오래하면 오래할수록 신령해 지고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성령님과 깊은 교제를 할 수 있게 된다. 특히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려면 오랜 시간동안 깊은 기도를 해야 한다. 겨우 5∼10분 기도해서는 성령의 충만함을 체험할 수 없다. 그렇다면 그렇게 오래 기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우리가 하는 말의 기도로만 30분 이상 기도할 수 있을까?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 15절에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고 기록한다.

 여기서 ‘영으로’ 기도하고 ‘영으로’ 찬송하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따라 ‘방언으로’ 기도하고 ‘방언으로’ 찬송한다는 의미로도 해석할 수 있다. 또한 에베소서 6장 18절에도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고 말씀하였는데, 여기에서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것은 ‘방언으로 기도하라’는 말씀이다. 이처럼 오래시간 동안 기도할 수 있는 비결은 바로 방언기도의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루 1시간 이상씩 기도하라고 하면, 공통적으로 하는 질문이 있다. “제 자신과 가족을 위한 기도, 그리고 교회와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고 나면 할 말이 없는데 어떻게 1시간 이상을 기도합니까?”라는 질문이다. 즉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으냐는 질문이다. 그 이유는 바로 방언으로 기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방언으로 기도하는 사람은 자신이 아는 말로 기도하다가 지치면 방언으로 기도하고 또 방언으로 한참 기도하다 보면 다시 힘을 회복하고 은혜를 받아 아는 말로 기도하고 또 그렇게 기도하다 지치면 또 다시 방언으로 기도하고 이렇게 밤새도록 또는 하루 종일 기도할 수 있다. 그러므로 방언기도는 기도의 언어로써 굉장히 좋은 성령의 은사이다.

김민철 목사

 

기사입력 : 2018.05.27. am 11:18 (입력)
이미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