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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에스라의 개혁

◎ 찬송가(다같이) : 289장(통일 208장), 449장(통일 377장)
◎ 신앙고백(다같이) : 사도신경
◎ 말씀봉독(다같이) : 에스라 10장 1∼4절
◎ 본문읽기
◎ 주기도문(다같이) :
맨 마지막에
◎ 오늘의 만나
 성전 완공 수십 년 후 에스라는 유다 공동체를 말씀으로 개혁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에스라의 개혁을 통해 유다 공동체는 당시 횡행하던 이방인과의 통혼을 정리하고 새롭게 거듭납니다. 이 에스라의 개혁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1. 타협하지 않는 신앙
 구약시대 끝자락에 위치한 신앙의 위인 에스라는 모세의 율법에 익숙한 학자이자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어 바사의 왕에게 총애를 받은 사람이었습니다(스 7:6). 즉, 신앙인으로서 모범이 되고, 사회적으로도 명망 있던 인물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에스라를 예루살렘으로 보내 유다 공동체를 말씀으로 새롭게 하길 원하셨고, 이에 에스라는 굳은 결심과 함께 많은 사람들을 이끌고 바사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당도한 에스라는 매우 충격적인 모습을 접하게 되는데, 많은 유다의 남자들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해 살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은 구약 율법에서 철저히 금하는 것이었기에(출 34:15∼16), 이를 본 에스라는 몹시 기가 막혀했습니다(스 9:1∼4). 결국,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의 통혼을 철폐하는 개혁을 시도하게 됩니다. 이번 과에서는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가 갖는 세 가지 의미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는 ‘타협하지 않는 신앙’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사실 귀환한 유다 공동체의 생활은 여러모로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귀환은 이루었으나 안정적인 정치체계와 군사력을 소유한 것은 아니었고, 오랜 시간 이스라엘 땅을 비웠었기에 사마리아인이나 많은 이방인들이 그곳에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불리한 상황에 놓여있던 유다인들은 이방인들과의 결혼을 통해 협력을 도모하게 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적절한 신앙의 타협으로 삶의 활로를 모색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가 봤을 때 이러한 타협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행위가 아니었습니다. 이방인과의 결혼은 하나님의 율법에 비추어봤을 때 결코 용인될 수 없는 행위였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생활의 염려 앞에서 타협한 유다인들을 책망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따를 것을 명했습니다(스 10:10∼11). 결국 강직한 에스라의 명령에 대다수 유대인들이 이방 여인을 떠나보내고, 유다 공동체는 다시금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어쩌면 먹고 살기 위한 것이라는 명분 아래 세상 속에서 적당히 타협하며 살아갈지도 모릅니다. 일견, 타협은 세상만사에서 중요한 삶의 지혜인 것은 맞습니다. 절충된 타협을 통해 갈등을 해소하고, 상호이익을 가져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타협을 해야 할 것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타협이 아닌 오직 순종만 있을 뿐입니다. 세상과 타협하며 적당히 지내라는 유혹을 뿌리치고, 담대히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큰 상급이 있을 것입니다. 

2. 순결한 신앙
 둘째,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는 ‘순결한 신앙’의 소중함을 일깨워줍니다.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스라엘에게 이방인과의 혼인을 금지하신 것은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지듯이(갈 5:9), 이방인 배우자의 우상숭배가 한 가정을 죄악으로 몰아가고, 그것이 퍼져 이스라엘 전체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당시에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이해 없이 오늘날에 적용하여 비신자와의 결혼을 무조건 금지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실오라기도 이스라엘에 들어오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그토록 요구하시는 신앙의 순결성, 우리는 얼마나 지키고 있는지 한번 돌아보기 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세상과 조화롭게 지내고, 전도를 용이하게 하겠다는 미명 아래 신앙의 순결에 얼룩을 묻히며 지내왔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진정으로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고자 한다면, 우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순결해야 함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소금은 맛을 잃으면 아무런 쓸 데가 없기 때문입니다(마 5:13). 더 나아가 우리가 순결하지 않으면, 세상을 변화시키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에 물들게 될 것입니다.
 세상은 우리가 적당히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라, 세상과 구별되어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감동을 받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마 5:14)라는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에서 빛을 발할 때 복음의 영향력은 숨겨지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을 완전히 떠나 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과 동일하게 살아서도 안 됩니다. 순결한 신앙과 함께 세상에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키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말씀에 뿌리내린 신앙
 셋째,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는 ‘말씀에 뿌리내린 신앙’의 소중함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유다 공동체는 귀환한 이후 예루살렘 성전 재건이라는 큰일을 이루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민족의 하나 됨, 예배의 회복을 도모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전 재건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과 순종이 따를 때 비로소 유다 공동체는 다시금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온전히 세워질 수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유다 공동체를 말씀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이었습니다.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도 이러한 에스라의 사역의 한 부분이었습니다.
 에스라의 말씀 개혁을 보면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고 좋은 교우들과 모임을 갖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우리의 신앙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건히 세워져야 함을 깨닫습니다. 말씀이 결여된 신앙은 겉표지만 그럴듯하고 속 내용은 백지인 책과 같습니다. 말씀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순종으로 뿌리 깊은 신앙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 간추린 만나
 <타협하지 않는 신앙>

1. 생활의 염려를 겪던 유다 백성들은 이방인들과 통혼을 통해 타협을 도모했습니다.
2.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를 통해 타협하는 신앙을 배척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타협이 아닌 순종의 길을 가야 하겠습니다. 

<순결한 신앙>
1. 이방인과의 통혼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순수성을 훼손했습니다.
2.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를 통해 순수한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3. 무엇보다도 하나님 앞에서 순수한 신앙을 지켜야 합니다. 

<말씀에 뿌리내린 신앙>
1. 에스라는 유다 공동체를 말씀에 뿌리내리도록 하기 위해 보내진 사람이었습니다.
2. 에스라는 ‘이방 여인과의 통혼 정리’를 통해 말씀에 뿌리내린 신앙을 회복하고자 했습니다.
3. 예배 드리기와 성도 간의 교제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말씀에 뿌린 내린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 내 삶의 만나
 <옆 사람에게 인사>

1.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가집시다.
2. 순결한 신앙을 지킵시다.
3. 말씀에 뿌리를 내립시다.

<기 도>
1. 세상의 풍파가 몰려와도 하나님의 말씀을 타협하지 않고 순종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2. 날마다 주님 앞에서 순수한 신앙을 지키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며, 읽고, 묵상함으로 말씀에 뿌리내린 신앙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중보기도>
옆 사람과 기도 제목을 나누고 같이 기도합시다.

 

기사입력 : 2018.05.20. am 11:0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