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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순복음교회 1호 집사·1호 구역장 - 박창전 권사

“1960년대 우리는 가난했지만 주님 때문에 행복했다”
순복음교회 서대문시절 전도의 열기 대단
지난 60년은 성령과  동행했던 영광의 시간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올해 창립 60주년을 맞이했다. 1958년 성도 5명으로 출발해 가난했던 대한민국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한국 교회 부흥을 일으키며 사랑 실천에 앞장서 온 세월이 벌써 반세기를 넘었다.
 ‘성령님과 동행한 고난과 영광의 60년’은 성령 충만과 기적, 눈물과 기쁨이 공존했던 행복의 시간이었다. 특히 우리 교회 1호 구역장이자 1호 집사였던 박창전 권사(88세)에게 ‘교회 창립 60주년’의 의미는 각별하다.

 박창전 권사가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기 시작한 건 1961년 9월. 대조동에서 출발한 순복음교회가 서대문으로 이전하기 직전 서대문로터리에 천막을 세우고 부흥회를 할 때였다. 순복음교회에 출석하던 사돈의 권유로 성회에 참석했던 박 권사는 교회에 나온 지 사흘만에 성령 충만을 받고 방언이 터졌다. 한참을 기도하고 났더니 2시간이 훌쩍 지났고, 사람들은 모두 천막을 떠난 상태였다.

 네 아이를 둔 젊은 엄마였던 박 권사는 서대문교회 건물이 세워지면서부터는 통금이 끝나는 새벽이면 택시를 잡아타고 교회로 달려와 하나님께 기도했다. “겨울이면 영하 20도가 넘을 정도로 추웠어요. 그래도 성도들은 기도하겠다고 새벽바람을 헤치고 달려왔지요. 그때는 모든 성도들이 성령으로 충만했어요. 권능이 임했고 담대히 복음을 증거했지요. 기적도 많이 일어났어요”

 한 번은 박 권사의 아들이 심하게 아파 교회에 데리고 나왔는데, 목사님의 기도를 받고 병이 나았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어린 아들은 동네를 돌며 “아플 때 교회 가서 기도하면 낫는다”고 자랑했다. 어리지만 복음의 산 증인이었다.
 박창전 권사는 서대문 교회시절 남편이 출근하고 나면 바로 교회로 달려왔다. 62년 10여 명이 못되는 성도들과 순복음교회 1호 집사가 된 박 권사는 조용기 목사, 최자실 목사, 이영훈 담임목사의 어머니 고 김선실 목사 등과 함께 교회가 있던 서대문 일대(냉천동, 천연동, 홍제동)를 돌며 복음을 전했다.

 “다들 형편이 어려울 때라 밥을 대접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겨우 물 한 모금 마시고 저녁 때까지 심방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기억이 납니다. 가난한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그 때 우리는 복음이 있어 모든 게 행복했습니다”
 박 권사는 영등포대교구 1호 구역장이었다. 장충동이 집이었지만 한강교를 넘어다니며 남편이 퇴근하는 저녁이 되기 전까지 영등포구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바삐 다니며  복음을 전했다. 매일같이 전도를 위해 집을 나서다보니 이웃들은 박 권사가 취직한 줄로 착각했을 정도였다고.

 1973년 교회가 서대문 시절을 마감하고 여의도로 이전할 때 박 권사는 영등포로 이사를 했다. 그만큼 복음 전도 활동은 더 열심이었고, 교회 부흥에 큰 기여를 했다. 교회 안에 실업인연합회가 세워졌을 때는 1호 회원으로 등록하고 이 땅에 하늘나라 확장을 위해 헌신했다.

 순복음교회에서의 지난 날을 돌아볼 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순간을 묻자 “여의도 성전을 지을 때”라고 답했다. “얼마나 힘들었던지 차디 찬 바닥에 엎드려 눈물로 기도하던 조용기 목사님을 보면서 성도 모두 울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자녀들까지 용돈을 아껴 건축헌금을 드려 교회가 기적적으로 세워진 날 그때의 감동은 정말 잊을 수 없어요”

 고난도 컸지만 그 고난이 있었기에 지금의 ‘순복음교회’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박창전 권사의 바람은 “순복음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을 위해 눈물로 기도했던 교회가 후대로 이어져 주어진 사명을 감당해 내는 것, 이것이 박 권사의 기도제목이다.

 

기사입력 : 2018.05.13. am 10:39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