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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9)-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지도자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현대 오순절 운동의 흐름 속에서 창립되어 오늘날과 같은 성장을 이루게 되었다. 따라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어떤 교회이며 무엇을 중요시 하며 다른 교회와 구별되는 특징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려면 필연적으로 현대 오순절 운동에 대해 살펴봐야 할 것이다. 교회 창립 60주년을 맞아 본지는 11주에 걸쳐 ‘현대 오순절운동의 역사’에 대해 연재하고자 한다. 그 순서는 다음과 같다. ①현대 오순절 운동의 이해 ②현대 오순절 운동의 역사적 배경 ③현대 오순절 운동의 신학적 핵심 ④현대 오순절 운동의 초기 지도자들 ⑤현대 오순절 운동의 확산 ⑥미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 ⑦한국 초기 오순절 운동 ⑧오순절 선교사의 입국과 활동 ⑨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지도자들 ⑩한국 오순절 교회의 위기와 극복 ⑪한국 하나님의성회의 창립.<편집자 주>

 메리 럼시 선교사와 함께 시작된 한국의 오순절 신앙은 최초의 오순절 교회인 서빙고교회를 태동하였다. 이후 허 홍, 박성산, 배부근 등의 한국인 지도자들의 활약을 통해 널리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이번 주에는 한국 초기 오순절 교회와 그 지도자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1. 한국 최초의 오순절 교회 ‘서빙고교회’

 1928년 한국에 입국해 오순절 복음을 전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럼시 선교사는 1933년 서울 변두리 지역인 서빙고에 교회를 세우게 되었다. 당시 서빙고는 한강 변에 있는 가난한 어촌마을로 마을 주민들은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이었고 여러 미신을 숭배하고 있었다. 또한 마을 주민 대부분은 기독교를 배척하고 복음을 적대시하였다. 럼시는 서빙고에 기도처를 마련하고 어린아이들을 모아 성경을 가르치며 전도하기 시작하였다.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기도처를 교회로 세울 것을 결심한 럼시는 일본 성서신학원 원장이던 존 주르겐 센에게 박성산을 보내 달라고 요청하였다. 당시 박성산은 신학 과정을 끝내고 사역지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다. 럼시의 청빙을 받고 박성산은 귀국하였고 이어 1933년 봄에 박성산을 담임으로 하는 서빙고교회가 정식으로 창립되었다. 방언과 신유를 강조한다는 이유로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에게 배척을 당해왔던 럼시에게 서빙고교회의 창립은 매우 뜻깊은 일이었다.

 교회를 향한 주변의 비난과 박해가 적지 않았지만, 서빙고교회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사도행전에 입각한 신앙인으로서 성령침례와 방언, 신유, 권능을 강조하던 담임 목회자 박성산의 지도로 서빙고교회는 설립 다음 해에 장년 70명, 주일 학생 200여 명에 이르는 알찬 교회로 성장하였다. 

 
2. 한국 초기 오순절 지도자
 
 한국 초기의 대표적인 오순절 지도자로 허 홍, 박성산, 배부근을 들 수 있다.  

 1) 허 홍(1907∼1991)
 허 홍은 1907년 12월 9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그는 구세군 사관이었던 아버지를 따라 구세군에 입대하여 사역했다. 그러나 허 홍은 나라 없는 슬픔과 서러움을 뼈저리게 느꼈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로 인해 갈등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럼시 선교사를 만나 통역으로 그녀를 도우면서 그녀에게서 오순절 신앙을 배우게 되었다. 그는 럼시 선교사가 서빙고에 최초의 오순절 교회를 개척할 때 도와주었고, 후에 북아현동에 연희장교회를 설립하고 목회하였다.

 해방 후, 허 홍은 한국에 오순절 교단의 탄생과 발전에도 기여하였다.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는 1953년 4월 8일 그가 시무하던 서울남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개최함으로써 출발하였다. 허 홍은 창립 직후 설립된 순복음신학교의 학감으로 사역하였고 1956년 5월에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제2대 총회장으로 선출되었다. 1957년 9월에는 대한오순절교회를 재건하고 총회장이 되었다. 허 홍은 순천오순절교회 담임목사로 복음을 전했고 후에는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원로목사로 추대되었다.

 2) 박성산(1908∼1956)
 한국 최초의 오순절교회인 서빙고교회를 담임한 박성산은 1908년 1월 20일 경상북도 군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장로교 초창기 전도사로 사역하였다. 독실한 신앙인이었던 박성산은 청년 시절에 농촌 문제, 사회개발 문제, 청소년 문제, 금주, 금연 운동 등 민족계몽운동에 활발히 참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배워야 사회에 봉사할 수 있다고 생각한 박성산은 가족을 고향에 두고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다. 유학 시절 그는 신문팔이, 상점 점원 등 여러 일을 전전하면서 학비와 생활비를 벌어야 했다. 그러던 중 노방 전도를 하던 청년들에게 감동해 오순절 신앙을 지니게 되었다.

 박성산은 존 주르겐 센이 설립한 성서신학원에 입학하여 신학 수업을 받고 1933년 서빙고에 세워진 오순절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청빙을 받아 귀국하였다. 당시 서빙고 주민들은 기독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고 복음을 잘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성령의 역사와 박성산의 헌신으로 서빙고에도 오순절 신앙의 불길이 타올랐고 교회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하지만 서빙고교회는 1940년 일제의 종교 탄압으로 인해 해산되고 말았다. 이후 박성산은 광화문에 ‘성문당’이라는 서점을 내고 훗날을 준비했고, 6.25전쟁 때 부산으로 피난가 전도에 힘쓰다가 1952년 11월 부산시 서대신동에 ‘부산교회’를 창립하였다. 박성산 목사는 인화력이 뛰어났다. 그는 교단을 설립하기 위해 여러 곳에 흩어져 있던 오순절 계통의 교회들과 성도들을 모으는 데 힘을 썼다. 1953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 창립도 그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3) 배부근(1906∼1970)
 배부근은 1906년 6월 16일 강원도 춘천에서 태어났다. 배부근은 1924년 춘천 주재 남감리교회 선교사 브랜넌의 전도를 받아 기독교인이 되었다. 1928년 송도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존 주르겐 센이 운영하던 성서신학원에서 공부를 하였다. 존 주르겐 센 밑에서 성령침례를 체험한 그는 1933년 귀국해서 5월경 영국 선교사 베시와 메레디드와 함께 서울 사직동에 수창동교회를 개척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종교 탄압이 거세지면서 수창동교회를 지원하던 선교사들이 강제 출국 되자 수창동교회는 결국 문을 닫게 되었다. 1944년 경기도 가평으로 이사한 배부근은 이곳에서 미국 하나님의성회 소속 종군 목사인 엘로드를 만나 그로부터 수십 상자의 성경을 선교용으로 증정받아 축호 전도에 힘썼다. 6.25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대구로 내려가 김두년 전도사와 함께 대구시 남산동에 오순절 교회인 대구 남산동교회를 개척하였다. 배부근은 1953년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창립 멤버로 참여하였고 순복음신학교 사감과 교수를 지냈다.

 한국 오순절 운동의 시작은 매우 연약했다. 왜냐하면, 오순절 신앙은 오순절 교단이나 선교 단체에서 정식으로 파송한 선교사가 아닌 ‘메리 럼시’라는 한 독립선교사를 통해 한국에 전해졌기 때문이다. 럼시는 허 홍, 박성산, 배부근 같은 초기 오순절 지도자들을 발굴하고 지원하였다. 이들 오순절 지도자들은 해방 후 오순절 교단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의 창립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오늘날 이 땅에 오순절 신앙이 널리 증거되는 데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기사입력 : 2018.05.13. am 10:34 (입력)
국제신학교육연구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