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행복으로의 초대 > ONE WAY
하와이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

하와이 최초 한인 이민 교회…민족 운동 선도  

1903년 내리교회 성도 등을 실은 이민 선박 하와이 도착
사탕수수 농장서 일하며 ‘예배’로 고단한 삶 위로받아

 
 우리나라 하와이 이민 역사는 올해 115주년이다. 1903년 1월 우리나라 최초의 이민단을 태운 미국 선박이 하와이 호놀룰루 항에 도착한 지 100여 년이 넘은 것이다. 당시 하와이에 첫 발을 디딘 이는 모두 86명이다. 인천 제물포 항을 출발해 하와이에 도착한 이들 중에는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 50여 명이 속해 있었다. 선교사 존스 목사의 권고로 이민을 결정한 이들은 하와이로 향하는 선상에서 매일 예배를 드렸다.


 이들에 이어 1903년 10월말까지 하와이에는 총 752명의 한인들이 이민을 와 하와이 곳곳 사탕수수농장에 배치돼 일을 했다. 북태평양에 위치한 섬, 하와이는 미국인들의 설탕 수요가 늘면서 19세기 사탕수수 농장이 본격적으로 들어섰다. 값싼 노동력이 필요했던 농장주들이 아시아에서 일꾼들을 모으면서 하와이 이민자들은 뜨거운 태양 아래 드넓게 펼쳐진 사탕수수밭에서 땀과 눈물을 흘리며 아메리칸 드림을 일궈냈다. 인천 내리감리교회 교인을 포함해 하와이에서 생활하는 이들에게 고단한 삶의 위로는 ‘예배’였다. 그리고 이들을 통해 만들어진 교회가 바로 호놀룰루에 위치한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다. 1903년 11월에 세워진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하와이 최초의 한인 교회다.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교회 창립자는 인천 내리감리교회 출신의 안정수, 윤병구였다. 초기 윤병구 목사에 이어 한국 서부지방 감리사였던 홍승하가 전도사로 사역을 이어받았다.

 홍승하는 동족단결, 민지계발, 국정쇄신을 목적으로 설립한 신민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과 하와이 한인들의 권익보호를 위해 앞장섰다. 1904년 11월부터는 하와이 감리교선교부와 함께 『포와한인교보』라는 월간 한글 교회소식지를 만들어 하와이 각지의 한인교회에 배포하기도 했다. 소식지는 논설, 주일성경공과, 교회소식, 한국소식, 호놀룰루 소식 등이 실려 있었다. 하와이 한인들에게 성경 지식은 물론 다양한 정보를 전달하는 교육 매체로도 활용됐으며 1929년부터 1945년 1월까지는 한·영 이중 언어로 발간됐다. 한인선교회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교회는 1905년 4월 교회로 승격되면서 호놀룰루 한인감리교회(전신)가 됐고 같은 해 12월 담임 교역자로 민찬호가 부임했다.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하와이에서 종교적인 역할뿐만 아니라 민족운동의 선구자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뿐만 아니라 교육에도 힘썼다. 연령제한으로 공립 초·중학교를 다닐 수 없었던 청년들이 신(新)학문과 영어를 배울 수 있도록 학교를 설립한 것이다. 1913년 가을학기에 이승만이 교장으로 임명되면서 학교이름은 한인중앙학교(흔히 중앙학원이라 부름)로 바뀌었다. 이승만은 한인학교 교장으로 임명되면서 감리교회 지도자가 됐다.


 그리고 담임교역자가 교체되는 공백기간에 매주일 교회에서 설교를 맡기도 했다. 이처럼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하와이 이민자들에게 기독교를 통한 올바른 신앙을 전하고 미국사회로부터 원만한 유대관계를 도모하는 한편 한인들의 결속과 단결을 증진시켜 민족 정체성을 강화·확립시키는데 헌신했다. 그 결과 러일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가 포츠머스에서 회의를 주재하려고 할 때, 하와이의 한인들이 한인교회를 중심으로 대한제국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외교활동을 추진하기도 했다. 신앙심 고취 뿐 아니라 하와이 이민 초기부터 한인들의 애국심, 단결 도모에 힘써왔던 그리스도연합감리교회는 오늘날 역시 민족 구심체로의 역할을 담당하며 가족 무숙자 및 무숙자 급식지원, 병원 선교, 양로원 선교, 한인사회학교(한글학교) 운영에 나서고 있다. 또 미국내 선교 및 국내 미자립교회 지원 제3지역 선교 사역 등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현재는 한의준 목사가 담임목사로 시무하며 이민 사회 복음화에 주력하고 있다. 교회는 호놀룰루 키오모쿠 스트리트 1639에 위치해 있다.

호놀룰루(하와이)=글 사진 오정선 기자

 

기사입력 : 2018.05.06. pm 14:12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