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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 <젖먹이는 여인>

잠깐의 기척에도 쉬이 꺼져버릴 것 같은 어머니
어지러운 현실에서도 꿋꿋이 현실을 이겨낸 강인한 모성


 아침 일찍 서울 아산병원에서 출발한 운구차가 점심 때가 지나서 용인 선영에 도착했다. 짙게 깔린 구름에 해가 가려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이 어딘가에서 불어와 먹먹한 가슴에 도달했다. 휑한 가슴을 가른 그 바람이 어머니를 태운 차를 한 차례 휘감고 사라지는 것도 같았다. 미지근한 눈물이 목줄기를 타고 옷깃 안으로 파고들었다. 어머니가 내게 베푸신 사랑의 십분의 일도 되돌려 드리지 못했는데, 아들의 마음은 아랑곳없이 어머니가 소천하시고 말았다. 눈물이 끝도 없이 흘렀다. 평생 일만 하셨던 어머니. 환갑이 지나면서 몸 여기저기에 병이 들기 시작했다. 결국 몸이 약해지시면서 심장병에 걸리셨다. 병원을 오래 다니셨지만 차도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협심증 같은 이런저런 합병증이 찾아왔다. 1년에 3개월은 입원해 계셨을 정도였으니 당신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곁에 있는 사람이라 해도 헤아릴 수 없었을 것이다.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는 하루에 먹는 약이 20알이 넘을 정도로 약에 의존하여 하루하루를 지내셨다. 자식이 약을 파는 사람인데 병을 고쳐드리지 못하다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고작 알약의 개수를 줄여드리는 정도였다.

 자식으로서, 약 때문에 늘 몸이 부어오르고 정신이 몽롱한 상태의 어머니를 바라다보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몸이 지칠 때도 있었고 그래서 마음을 지나칠 때도 많았다. 하지만 힘없이 떨궈진 어머니의 손을 끝내 놓는 일만은 없길 바랐었다.

 이토록 무능하게 속수무책으로 죽음이라는 놈에게 어머니를 보내고 싶지는 않았었다. 다만 이대로도 좋으니, 조금만 더 이 못난 자식 곁에 머물다 가시기를, 어머니와 아들의 인연으로 살아온 생애를 하루씩 더 이어나갈 수 있다면, 그래서 같이 맛있는 것도 먹으러 가고 볕 좋은날 바람도 쐬러 갈 수 있다면. 하지만 간절한 바람은 바람으로 끝이 났고 2007년 11월 10일, 내 어머니는 세상을 뜨셨다. 내가 발을 디딘 온전한 세계 하나가 한꺼번에 무너져 내린 날이기도 했다.

 박수근의 그림 속 인물은 평생을 일로 보내셨던 내 어머니와 많이 닮았다. 지아비의 다정한 보살핌 없이, 눈을 뜨면 밭에 나가고 점심이 되면 상을 차리고 저녁이 되면 아이들을 돌보며 하루를 마감하던 여인. 우는 새소리도 구슬펐던 어지러운 현실에서도 박수근의 그림속 인물들은 마치 내 어머니처럼 꿋꿋이 현실을 인내하고 있다. 지금 되돌아보면 내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숨을 제대로 살리고 새로이 희망의 불을 지필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에 대한 기억 때문이다. 어머니와 함께 보냈던, 보잘것없던 나의 어릴 적 일상이 평생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내 안에 빛나는 별로 자리하고 있다. 진실로 내 마음속 별 가운데 가장 빛나는 별은 여전히 어머니별이다.

 무심히 지나는 새의 날갯짓에도 어머니 생각이 나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무릎에서는 응석받이, 무덤에서는 눈물받이라는 말이 있다. 아마도 이 세상 모든 자식을 두고 하는 말일 게다. 아니 나를 두고 하는 말이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어머니가 진정 그리워진 불효자가 되고 말았으니.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4.22. am 11:57 (편집)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