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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명순 권사(장애인대교구) - 죽어가던 아이 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


절망에도 더 감사하며 기도에 매진  
주님 은혜로 살아나 찬양으로 봉사


 1988년 10월 7살 된 아들 웅선이를 데리고 산 기도를 갔다 돌아오는 길에 웅선이가 교통사고를 당했다. 수술실로 들어간 웅선이를 기다리는 시간은 피를 말리는 것 같았다. 수술이 끝나고 중환자실로 옮겼는데 의사 선생님이 웅선이 머리가 수박을 땅바닥에 던져서 깨진 것처럼 뼈가 박살이 나서 머릿속 골들에 다 박혔다며 뇌압이 오를 경우 살 가망은 희박하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날 밤이 새도록 눈물을 흘리며 기도를 했고 울부짖으며 “감사합니다”를 되풀이했다. 새벽 즈음에 급한 호출이 와서 달려갔더니 웅선이 머리를 감싼 붕대를 다 풀어 놓았는데 수술한 머리가 다 찢어지면서 머릿속에서 더 큰 덩어리가 나와서 급히 망사 같은 걸로 아이를 뒤집어 씌워놓은 상태였다. 나는 그만 그 자리에 쓰러져 정신을 잃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밤늦은 시간이었다. 희미한 정신으로 “주님 감사합니다. 우리 웅선이 살려 주실 줄 믿습니다”라고 기도를 하면서 통곡하고 부르짖고 울고 또 울었다. 교통사고 가해자가 병원에 500만원을 들고 찾아왔다. 나는 이 돈을 받지 않을 것이니 대신 교회에 다니라고 말했다. 교회에 가본 적이 없다는 가해자는 정말 열심히 다니겠다고 인사하며 자리를 떠났다.

 아침 7시 면회 시간에 중환자실로 들어갔는데 나는 아이를 보고 놀라서 까무라칠 뻔했다. 튀어나온 골들과 함께 붕대를 감아 놓았는데 눈까지 튀어나와 거즈로 막았고 코에는 호스가 달려있고 입은 혀가 쭉 빠져나와 재갈을 물려 놓았고 목에는 큰 호스를 꽂아 기계에 연결해 놓은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어김없이 입술에는 감사 기도가 나왔다. “주님 감사합니다. 데려가지 않으셨군요. 주님 감사합니다” 그때부터 한 달 두 달 오로지 병원 6층을 기도실 삼아 기도하면서 버텼다. 두 달이 지나면서 웅선이 몸은 점점 더 오그라들기 시작했고 면회 시간마다 웅선이 몸을 만져 주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버렸다. 3개월이 될 무렵 의사선생님이 머리 수술을 다시 해야 된다며 혹시 잘못될 경우 뇌사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나는 6층에 가서 오로지 기도로 울부짖었다. 그날 밤이 새도록 기도하며 눈물을 흘리던 중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더니 밝은 빛과 푸른 잔디가 눈앞에 펼쳐졌다. 찬란한 빛에 이끌려 앞으로 나아갔는데 유난히 빛나는 무덤이 갈라지면서 온몸을 붕대로 감은 웅선이가 우뚝 서 있는 것이었다. 달려가서 아이를 끌어안고 “살려주셨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가슴이 터지도록 흐느껴 울며 감사하다고 외쳤다. 깨어보니 강대상을 끌어안고 있었고 무릎에서는 피가 흘렀다. 아이를 일반 병실로 옮기고 팔과 다리를 따뜻한 물로 찜질해주었다. 여러 가지 견과류와 야채를 절구로 찧어서 체에 받쳐서 콧줄로 먹이고 늘 감사 기도를 주님께 드렸다. 그렇게 6개월 정도 되자 눈은 못 보지만 얼굴과 몸에 살이 붙어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후 웅선이는1991년 2월 퇴원을 했다.

 집으로 와서 큰 고무통을 사서 물을 데워 따뜻한 물로 늘 마사지를 해주고 업고 다니며 높은 산에 올라 샘물을 받아 먹였다. 그 후로 점차 걷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앞을 보지 못해 허리에 끈을 묶어서 붙잡고 같이 병원을 다녔다. 1993년 12월 왼쪽 눈을 이식 받았고 2006년 11월 오른쪽 눈도 이식 받아 두 눈을 볼 수 있게 됐다. 웅선이 몸은 사고 후유증으로 불편한 부분이 많이 남아 있지만 그래도 죽은 것과 다름없던 아이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늘 감사드린다. 웅선이는 우리 교회 장애인대교구 소망부 예배 찬양대원으로 열심히 주님을 찬양하고 있다.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린다.    
정리=이미나 기자

 

기사입력 : 2018.04.22. am 11:30 (입력)
이미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