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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사임당《초충도》

위대한 유산은 자기완성에서 시작 된다
진정한 성공은 부와 명성에 있지 않아
삶의 큰 부분 이루려면 작은 부분부터 실천

 부와 명성을 쌓는 세속적인 성공은 진정한 성공이라 할 수 없다. 부와 명성이 인간의 마음 속 깊이 잠겨 있는 갈망이나 삶의 근본에 해답을 제시할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인간으로서 진정한 성공은 주어진 사명을 충실하게 이행하고 그 안에서 보람과 행복을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오랜 지인 대륭그룹 이환근 회장을 좋아하는 것은 그가 늘 부지런하고 성실하다는데 그 이유가 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완벽하게 해내기 위해 열심히 뛰어다닌다. 나 역시 이 회장처럼 평생을 가족과 직원을 부양하기 위해 지금껏 열심히 일했다. 내가 걸어왔던 과거를 되돌아보면 평생을 두 가지 목표를 이루고자 뛰었다. 두 가지를 시간으로 나눠 생각해보면 지금까지는 주로 가족과 직원을 부양하기 위해 열심히 일해 왔다. 그리고 이웃을 돌보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고 서울미술관을 만들고 운영의 기초를 닦는 일은 후자에 해당된다. 나는 사명에 보다 집중하고 싶다.
 나의 이런 생각에 힘을 실어준 분이 신사임당이다. 내가 처음 신사임당이 그린 《초충도》 10점을 구입했을 때 가졌던 생각은 그녀가 평생 나비, 맨드라미, 원추리, 잠자리, 사마귀, 메꽃, 도마뱀, 갑충, 개구리, 여뀌, 나방, 벌, 개미, 방아깨비, 오이, 가지, 수박, 들쥐, 패랭이꽃과 같은 자기 주변에 있는 소소한 사물에 관심을 가졌던 것처럼 나도 내 가족, 내 이웃에 조금 더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바라보고 대화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눈에 보이는 일이라 여긴다. 이를테면 집을 짓고 휴대전화를 만들고 옷을 만들어 파는 경제적인 일들 말이다. 반대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일 즉, 정신적인 활동을 하찮게 여기기도 한다. 사색하거나 식물을 키우거나 사랑을 나누는 감성적인 일을 우리는 여유를 부리거나 사치스러운 일로 여긴다. 그러나 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일이 우리의 영혼을 살찌우는 가장 중요한 일이다.

  신사임당이 《초충도》를 통해 보여 준 탁월한 통찰은 노벨상을 받은 폴링의 말처럼 오랫동안 몰두한 뒤에야 나올 수 있는 경지이다. 우리가 어떤 일에 몰두한다고 해서 즉시 효과를 보지는 못한다. 보고 듣고 읽은 작은 알갱이들이 뭉치고 뭉쳐지는 과정을 겪어야 추운 날을 꼬박 버티는 눈사람이 되는 것이다.

 신사임당이야말로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성성이라 할 만하다. 스스로 증진하고 남편, 자녀, 가족을 위해 뒤에서 묵묵히 지원한 그녀의 삶은 오늘까지고 미덕으로 빛나고 있다. 그녀는 조선 600년을 대표하는 여류 문인답게 실력과 철학, 삶이 일체가 된 인생을 살았다. 우리나라 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현모양처이면서 그림, 자수, 문장에 뛰어났다. 그의 예술세계는 모두가 인정하듯 관찰력이 뛰어나고 그 기록도 세밀하다. 율곡 선생은 어려서부터 이런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신사임당을 현모양처의 대명사라 칭송하는 것은 정갈하고 고상한 그녀의 삶이 자녀와 남편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내가 《초충도》를 좋아하는 이유는 바로 작품에 그녀가 가진 삶의 철학이 고스란히 스민 까닭이다. 《초충도》를 곁에 두면서 나도 내 아이들에게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한 적이 있다. 큰아이가 음악가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나는 음악에 관심을 가졌고, 둘째가 경영인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나는 사회적으로 좀 더 본을 보일 수 있는 CEO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그리고 셋째 아이가 의사의 길을 선택했을 때 나는 다시 한번 나의 본업에 충실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초충도》를 그린 화가들은 여럿 있으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모두 신사임당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신사임당은 조선 초기 《초충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우리는 모두 자신이 희망하는 길로 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우리가 진짜 희망하는 길은 어디에 있는가를 반문할 때만 더 멀리 갈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그 길은 자연의 이치와 닮아서 삶의 큰 부분을 이루려면 작은 부분부터 바꾸고 실천할 때만이 다다를 수 있다. 신사임당이 걸었던 길처럼 말이다.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2.18. am 11:30 (편집)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