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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드 ‘눈물의 샘’-하나님의 눈물을 보다

 이스라엘 네게브에는 커다란 도시가 없다.  브엘세바가 제일 큰 도시이며 그 외는 핵연구소가 있는 디모나, 이스라엘 개국 초기에 소외된 정착민들만이 몰려들었던 여로함 그리고 동쪽 사해로 가는 길에 광야 한 가운데 자리잡은 오아시스 같은 도시 아라드가 있다.
 아라드는 우리말 성경에서 ‘아랏’이라고 불리운다. 고대 가나안 시절부터 존재했던 도시국가인 아랏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후에도 계속 살았다. 그 후 유다지파에게 속한 땅으로 주어지게 되었지만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아라드는 가시 같은 곳이 되었다. 지금도 아라드는 브엘세바에서 사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중형도시이다. 광야 한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마사다(Masada)요새와 사해로 향하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아라드는 인구 약 2만6000명이 사는 도시이다. 이스라엘의 도시들 중 결코 작지 않는 규모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도시에는 40%이상이 러시아계 유대인들이다. 이스라엘로 ‘알리야’(유대인의 이민)를 오게 된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다. 그리고 나머지 유대인들은 세속 유대인들과 종교 유대인들이 섞여 사는 일반적인 이스라엘의 도시였다. 하지만 10년 전부터 종교유대인들이 남부 네게브 도시들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모여드는 종교유대인들은 대부분 남방 네게브 인근 도시들, 여로함이나 디모나 그리고 아라드로 유입이 된다. 아라드는 유다지파의 땅이었던만큼 그곳에 의미를 둔 종교유대인들이 모여들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 곳에 사는 다른 유대인들, 즉 세속 유대인들과 메시아닉 유대인들과의 충돌을 빚고 있다.

 조용하기만 했던 광야의 도시 아라드는 하루가 멀다하고 종교인들과 세속인 그리고 종교인들과 메시아닉 유대인들의 충돌이 잦아졌다. 그들은 자신들을 지지하는 정치세력과 종교 세력을 바탕으로 도시를 비판하거나 다른 유대인들을 비방하기도 한다. 그런 가운데 ‘회복’이라는 영화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행해진 테러와 방해를 보여주게 된다. 이들이 목숨을 걸어야 하는 상황까지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라 종교 유대인들은 다른 세속 유대인들과도 충돌이 심하게 일어나곤 한다.


 이런 도시에 하나님께서는 한 예술가를 통해서 갈등하는 유대인들과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그 분의 마음을 표현하게 하셨다. 아라드 도시는 예술가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도시 전체를 하나의 조형물처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 가운데 캐나다인 조형가를 통해서 탄생한 ‘눈물의 샘’(Fountain of Tears)이라는 작품은 이 작은 도시 아라드로 많은 순례객들과 여행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그는 이스라엘 키부츠에 살면서 신약성경을 읽고 그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그로 인해 키부츠 사람들과 충돌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 그가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과 고백을 표현하는 길은 자신이 가장 잘하는 조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그 조각을 통해서 복음을 전할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그런 그에게 유대인과 그들의 아픔을 이해하는 작품으로 그를 인도하신다. 수 많은 고민과 번민 그리고 방황 끝에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과 홀로코스트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작품인 ‘눈물의 샘’(Fountain of Tears)을 만들게 된다.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의 말과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겪었던 고통과 번민은 너무나도 흡사하면서 연결되어 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유대인들에게 홀로코스트는 그저 고난이고 고통이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작품에는 예수님의 고통과 홀로코스트 당시 유대인들이 겪어야 했던 고통은 결국 같은 선상에서 볼 수 있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십자가 상에서 용서함을 구했던 예수님과 자신들을 억압하고 핍박하는 이들을 용서해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는 유대인들, 자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요한에게 맡기는 예수님과 같이 평생 홀로코스트의 희생자들의 아픔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유대인들의 고통 그리고 ‘다 이루었다’며 숨을 거두시는 예수님 앞에서 자신들의 죽음의 고통을 벗어날 수 없음에 절망하는 유대인들의 모습까지 작가는 작품을 통해서 죽어간 유대인들과 아직 남은 유대인들을 향한 희망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기둥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는 선지자 예레미야의 고백을 담고 있다.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렘 9:1)
 광야에 위치한 오아시스 같은 도시이지만 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갈등은 이 도시가 가진 아픔과 슬픔을 보여준다. 아라드는 브엘세바에서 사해로 가는 관문의 도시이다. 이 도시는 본의 아니게 광야를 거쳐서 생명이 없는 바다로 가는 길에 놓여 있다. 삼삼오오 아라드를 찾아오는 순례객들과 여행객들을 보면서 다른 유대인들은 의문을 가질 것이다. 무엇이 이들을 여기로 오게 한 것일까? 광야? 사해? 이런 의문들이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담은 작품을 보게 하고 결국 복음을 보게 할 것이다.
 광야에 세워진 작은 도시에 만들어진 조각품. 그리고 그 조각품에서 흐르는 눈물은 이 곳 이스라엘을 향하여 흘리신 예수님 곧 하나님의 눈물인 것이다. 한번쯤 이스라엘에 오면 이곳 아라드를 방문하여 이 작품을 감상하고 광야를 둘러보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풍성해 질 것이다.  

김동구 목사

 

기사입력 : 2018.02.18. am 10:4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