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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


“오직 말씀 오직 성령”을 통한 “절대긍정 절대감사!”
조용기 목사의 순복음 신학 체계화 발전
4대째 신앙 명문가의 유산 받은 이영훈 목사
신앙 양심으로 나라 지킨 독립유공자의 후손

   
이영훈 목사의 어린 시절

 이영훈 목사는 1954년 11월 19일 아버지 이경선 장로와 어머니 김선실 목사의 4남 1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이영훈 목사는 증조부 이재식 선생에서부터 이어 내려오는 4대째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났다.  외가 쪽으로도 3대째 신앙을 물려받았다. 어머니 김선실 목사는 신실한 목회자의 자녀로서 이영훈 목사의 외할아버지 김종삼 목사는 황해도 장연에서 일곱 곳의 교회를 돌보며 목회를 했다.  
 이영훈 목사의 증조부인 이재식 선생은 평양에서 베어드(한국명 배위량) 선교사를 만나 복음을 받아들이고 앞장서서 교회 건축에 헌신했다. 이런 그의 신앙은 이영훈 목사의 조부 이원근 장로에게 전해졌다. 서문밖교회 장로였던 이원근 장로는 독립운동을 지원하다 1918년 3월 만세사건으로 인해 6개월의 옥고를 치르는 등 어려운 상황에도 굴복하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였다. 이원근 장로는 독립운동과 교회재건운동 공로를 인정받아 2016년 3·1절 기념식에서 독립유공자 포상을 받았다. 



신앙을 위해 남한으로 이주

 이영훈 목사의 일가는 북한에 김일성 정권이 들어서자 기독교인이 숙청의 대상이 되는 등 암울한 정세 속에 오직 신앙의 자유를 찾아 모든 재산을 북에 내려놓고 떠났다. 조부 이원근 장로는 1948년 6월 가족들과 함께 황해도 해주에서 통통배를 한 척 빌려 위에는 생선으로 위장을 하고 가족들은 배 밑 바닥에 몸을 숨기고 38도선을 넘어 서울에 도착했다.
 서울 도착 당시 가족들은 북한에서 월남한 성도들을 위해 영락교회 마당에 마련된 천막에서 약 한달 동안을 머문 후 서울 원효로에 거처를 정하고 남영동교회를 세워 월남한 성도들을 돌봤다. 이어 이원근 장로는 1949년 8월에 광주 미국 남장로교 선교본부에서 만난 탈미지(한국명 타요한) 선교사의 부탁으로 제주도에 내려가 4·3사건으로 황폐해진 남원교회를 재건하고 남원중학교를 인수 운영했고 위미와 표선에 기도처를 세웠다.
 이원근 장로는 하나님 제일주의신앙을 이영훈 목사에게 가르쳤다. 이영훈 목사는 모태신앙인으로서 어릴 적부터 매일 가정예배를 드리고 토요일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신앙생활의 기본을 가정에서부터 배웠다.
 

장로교에서 순복음으로

 1964년 이원근 장로는 가족들과 함께 서울 서대문구 냉천동 45번지로 이사했다. 장로교 명문가에서 자란 이원근 장로는 북한에서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다리가 불편해 집에서부터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순복음중앙교회(현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로 새벽예배를 다니게 됐다. 약 3개월 후 가족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은 이원근 장로는 “이번 주부터 우리 가족은 모두 순복음교회에 출석한다. 그 교회에 젊은 목사님이 매우 성령이 충만하고 말씀이 살아있어 은혜를 많이 체험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1964년 4월 이원근 장로와 가족들은 순복음교회에 출석하게 됐다.
 이영훈 목사는 교회에서 예배마다 성령침례의 중요성을 강조하자 성령침례와 방언을 간절히 사모하게 됐고 1966년 2월 조용기 목사의 부흥성회에서 성령침례를 받았다. 대광고등학교를 졸업한 이영훈 목사는 연세대학교 신학과에 입학했고, 졸업 후 지금의 한세대학교인 순복음신학교의 신학과에 편입했다. 졸업 후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전도사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시작했다. 

정통 신학자이자 개척 목회자

 이영훈 목사는 영산출판사(현 서울말씀사)의 편집부장, 순복음뉴스(현 순복음가족신문)의 초대 편집장을 역임했다. 1978년 순복음교육연구소(현 국제신학연구원)의 창립멤버로서 신학연구실장을 거쳐 1981년 순복음교육연구소 제2대 소장에 취임했다.   1982년 이영훈 목사는 안수를 받고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의 요청을 받아 공부와 사역을 병행하며 1985년 2월 워싱톤순복음제일교회에 부임해 6년 만에 교회 건축을 이뤘다. 성전 완공 후 1992년 5월 조용기 목사의 부름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국제신학연구원 원장으로 부임했다. 이때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신앙과 신학’ 1,2권을 편찬하는 등 순복음 신학의 정립에 주력해 예장통합 측과 10년간 불거진 이단 시비를 잠재우는데 일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2000년 동경순복음교회 담임으로 부임했다. 당시 물가 높기로 유명한 일본의 수도에서 기도와 믿음의 역사로 매일 새벽제단을 쌓았고 1년 반 후 약 200억 규모의 8층 빌딩을 동경 한복판에 매입하는 기적이 일어났다. 이어 조용기 목사의 뜻에 따라 교무부목사에 임명돼 우리 교회를 섬기다가 2005년 미국 LA 나성순복음교회로 파송됐다. 이영훈 목사는 나성순복음교회 담임목사로 시무하던 중 2006년 우리 교회 운영위원회와 당회 2차 투표를 거쳐 2대 담임목사로 선출되어 귀국 후 담임목사 서리로 사역했다. 이후 2007년  7월 공동의회를 거쳐 담임목사로 인준을 받고 2008년 5월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취임했다. 이영훈 목사가 제2대 담임목사 승계와 정착과정을 순조로이 이끌어갈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조용기 목사의 영적 유산을 잘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영훈 목사는 누구보다도 조용기 목사의 신학과 목회 철학을 잘 알았고 국제신학연구원장 재임 중 조용기 목사의 3박자 축복과 성령운동을 신학적으로 체계화한 당사자였다. 무엇보다 조용기 목사는 영적인 아들이자 제자인 이영훈 목사가 여의도순복음교회 제2대 담임목사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영훈 목사의 신앙과 신학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은 이영훈 담임목사의 신앙과 신학의 근간이다. 이는 성도들이 삶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풍성한 믿음의 결실을 맺게 한다. 이영훈 목사는 절대긍정 절대감사의 신앙을 소유하기 위해 “첫째, 절대긍정의 언어를 선포하여 긍정적인 미래를 창조해야한다. 둘째, 감사로 무장하여 삶 가운데 절대긍정의 능력이 넘치게 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 날마다 기도로 무장되어야 한다. 넷째, 말씀을 가까이하여 말씀의 능력이 마음 가운데 뿌리 내리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훈 목사는 성도들에게 작은 예수의 영성을 지니고 작은 예수로 살아갈 것을 늘 권면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성도는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기독교 영성은 철저히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어야 한다.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말씀을 믿는 것이다”라며 그러므로 성도는 규칙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공부하고 암송하고 실천해야 한다는 방법을 제시한다.
 전도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받은 사랑의 실천이다’라고 정의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은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전하게 된다는 전도의 원리를 전하고 있다. 또한 성경에 근거하여 “전도는 하나님께 영광이 될 뿐 아니라 천국에서 큰 상을 받게 한다. 예수님은 부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모든 민족을 제자 삼으라고 하셨다. 성령이 성도에게 능력을 주시며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게 하신다”라고 당부한다.  
 이영훈 목사는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에 기초를 둔 기도의 영성을 주창하며 순복음의 정체성을 확고히 고백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8.02.11. am 11:21 (편집)
복순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