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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중복음(2) - 성령충만의 복음

 순복음 신앙의 교리적 근간이며 핵심적인 신앙 체계인 ‘오중복음’에 대해 살펴보고자 한다. 오중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이 우리에게 가져다 준 하나님의 구원의 기쁜 소식(복음)을 다섯 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제시한 것으로 순복음 신앙을 객관적이고 이론적으로 정리한 신앙 체계이다. 이 오중복음은 ①중생 ②성령충만 ③신유 ④축복 ⑤재림으로 분류된다. 우리가 오중복음을 잘 이해할 때 순복음 신앙의 특징적인 면을 보다 잘 파악하게 된다.<편집자 주>

중생한 우리, 성령침례 체험하고 성령 충만한 삶 살아가야

 오중복음의 두 번째에 해당되는 ‘성령충만의 복음’은 순복음 신앙의 특색을 가장 잘 드러낸다. 성령충만은 중생을 체험한 성도들이 성령으로 침례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능력 있는 신앙생활을 위해 반드시 지녀야 할 영적 체험이다. 이번 주에는 중생과 성경침례는 어떻게 구분되며 성령침례는 어떤 의미를 지니며 그리고 성령충만한 신앙생활은 어떻게 영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1. 중생과 성령침례

 성령의 사역이 없다면 구원은 이루어질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 성령은 그리스도의 구원의 사역을 재림의 때까지 계속해서 이루시고 있다. 성령은 중생의 모든 과정을 이끄시는 주체이다. 중생을 위한 성령의 사역은 첫째, 죄인을 그리스도께 이끄는 역할을 한다(요 16:13). 둘째, 인간의 죄와 그리스도의 의를 깨닫게 한다(요 16:8). 셋째,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한다(고전 12:3). 성령은 ‘살리는 영’(요 6:63)으로서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께 인도하여 구원에 이르게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중생은 성령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구원에 관한 사역은 성령의 여러 사역들 가운데 가장 우선 되는 사역이다.

  중생과 성령침례의 체험은 동시에 일어날 수도 있으나 본질적으로 다른 체험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게 하는 성령의 구원론적 사역과, 성령의 은사를 각 사람에게 부어주고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능력을 부어주는 은사적 사역은 별개의 사역이다. 중생과 성령침례는 동시에 일어날 수는 있다. 하지만 동시에 일어난다고 해도 중생과 성령침례의 순서가 뒤바뀔 수는 없다. 다시 말해 성령침례가 중생을 앞서거나, 중생 없이 성령침례가 이루어 질 수는 없는 것이다. 또한 중생은 믿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지지만, 중생한 모든 사람들이 성령침례와 성령충만을 받는 것은 아니다(행 8:14∼17; 19:2). 


 2. 성령침례의 의미

 보혜사 성령의 강림은 예수 그리스도의 약속의 성취이다(요 14:16). 중생이 인간의 노력이나 공로와 상관없는 것처럼, 성령침례 또한 인간의 노력의 결과로 주어진 것은 아니다. 성령침례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적인 목적이나 사람에게 과시하려는 의도로 성령을 받으려 하는 시도는 정죄되었다(행 8:17∼23). 성령침례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나 성령침례는 신앙의 적극성을 필요로 한다.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침례를 받은 증거가 성령의 은사를 통해 나타난다고 이해하였다. 그들은 성령의 은사들 가운데 특별히 방언을 성령침례에 대한 외적인 증거로 받아들였다. 오순절주의자들이 성령의 은사와 성령침례를 직접적으로 연결시키고, 성령의 여러 은사들 가운데 특별히 방언을 성령침례의 외적증거로 받아들인 이유는 바로 그 명료성 때문이었다. 성령침례는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를 통해 임하는 영적인 체험으로, 사람이 그것을 받았을 때 확실하고 명료하게 알 수 있게 된다. 이러므로 성령침례는 연약한 신앙을 새롭게 하여 구원의 확신과 복음 증거에 대한 강렬한 열정을 품게 한다. 

 
3. 성령침례와 성령충만
 
 오순절주의자들에게 있어 ‘성령침례’에 대한 관심은 ‘성령충만’으로 확대되었는데 이는 지속적인 성령의 충만을 통한 ‘능력 있는 삶’을 추구하려는 동기에서 비롯되었다. 무엇보다 성경은 ‘성령침례’(행 1:5)와 ‘성령충만’(엡 5:18)을 구분하고 있는데, 이로부터 오순절주의자들은 성령침례를 ‘성령의 체험’ 혹은 ‘성령의 임재’로, 성령충만을 ‘성령의 지배 아래 있는 상태’로 각각 구별하여 이해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성령충만은 성령께서 당신의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 성도들의 삶과 마음을 온전히 지배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따라서 성령충만은 성도의 사역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삶의 영역에서도 성령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이며, 이러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게는 복음 증거를 위한 ‘영적인 능력’과 ‘예배를 위한 헌신’, 그리고 ‘봉사와 섬김’과 같은 참 신앙인의 모습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지속적으로 나타난 영적 상태이다. 먼저 성령충만은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도록 이끈다(롬 12:3∼8; 고전 12:8∼31; 14:1∼40; 엡 4;11∼12). 성령의 은사는 개인에게 주어지는 것으로 단지 영적인 우월함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 아닌 교회 전체를 이롭게 하는 모든 사역을 위한 것이다. 이러므로 성령충만한 성도들은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를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성도가 남과 다른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불공평한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어떤 것이든지 성령충만을 통해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은사는 성도 개인뿐만 아니라 그가 속한 교회 공동체 전체를 위한 능력이기 때문이다.

 성령충만은 성령의 은사와 같은 외적인 것뿐만 아니라 성령의 열매와 같은 내적인 신앙의 성숙으로도 나타난다. 이를 가리켜 ‘성령의 열매’라고 한다(갈 5:22∼23). 따라서 성령의 열매는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성품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 사람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충만의 산물이다. 성도가 성령으로 충만하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성품과 인격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이다.

 중생을 체험한 성도들은 성령으로 침례 받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한 성령충만을 위해 성도는 말씀과 기도 안에서 매일 성령의 뜻을 구하고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 이러할 때 성도는 성령의 은사와 열매가 충만한 상태에 이르게 된다. 성령충만한 성도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며, 은사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앞장서게 된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로 중생한 성도는 성령침례를 체험하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아감으로써 그리스도를 온전히 드러내는 능력의 삶을 살게 된다.

국제신학교육연구원

 

기사입력 : 2018.02.11. am 10:55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