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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박해의 시작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회가 주류사회의 변방에 머물러 있을 때는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교회가 급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주의를 끌고, 주변 사회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게 되면, 주류사회는 이를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제거해 나가고자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반발이 결코 교회의 성장과 복음 전파를 잠재우지 못했다는 사실을 지난 2000년 동안의 교회의 역사가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복음에 대한 잔인하고 무자비한 박해가 심하면 심할수록 오히려 구원의 메시지는 더욱 멀리, 더욱 광범위하고 강력하게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오순절 날 성령 충만함을 받은 사도들을 통해 구원의 메시지가 전파되고, 기적과 이사가 나타나게 되자, 하루에 3000명씩 회개하고 구원받는 역사가 일어남으로써 초대교회는 초창기부터 폭발적으로 성장해나갔다. 그러자 유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은 이를 중대한 위협으로 받아들였다.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배해왔던 백성들이 새롭게 등장한 초대교회에 매력을 느끼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을 보고 이를 더 방관했다가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고, 그것은 곧 자신들이 누려왔던 지위를 잃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사도들을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날이 밝는 대로 그들을 당시 유대 사회의 최고 기관인 ‘공회’(산헤드린)에서 심문하기로 했다(행 4:1∼3).   이들이 얼마나 사태를 심각하게 받아들였는가 하는 것은 이날 공회에 모인 사람들의 면면을 살펴보기만 해도 잘 알 수 있다. 관리들, 장로들, 서기관들뿐만 아니라 대제사장 안나스, 가야바, 요한, 알렉산더 및 “대제사장의 문중이 다 참여”했을 정도였다(행 4:5∼6). 한 마디로 이스라엘 최고위 지도자들이 모두 모여 초대교회 지도자들이 도대체 어떤 자들이기에 온 예루살렘을 들썩이고 있는가를 조사하고자 한 것이다.

 그들은 사도들을 가운데 세우고 “너희가 무슨 권세와 누구의 이름으로 이 일을 행하였느냐?”라고 겁박했다. 여기서 “이 일”이란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나면서부터 못 걸은 사람을 성전 미문 앞에서 고쳐준 기적을 말한다. 성전으로 들어가던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눈앞에서 펼쳐진 이 놀라운 광경을 보고 사도들 주위로 몰려들자, 베드로가 ‘솔로몬의 행각’에서 그들을 향해 “예수로 말미암아 난 믿음이 너희 모든 사람 앞에서 이같이 완전히 낫게 하였느니라,”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담대히 외치자(행 3:16, 19), 남자만 5000 명이 믿는 역사가 일어났고(행 4:4), 이것이 유대 정치 종교 지도자들의 심기를 건드린 것이다.

 갈릴리 어부 출신들이 이스라엘의 최고 권력자들이 모두 모인 곳에 끌려왔으니 얼마나 무섭고 떨렸겠는가? 사실 우리 주님께서도 얼마 전에 바로 그 곳에 끌려와서 심문 당하신 후에 십자가에 못 박히시지 않았는가? 그러나 그들은 이미 이전의 제자들이 아니었다. 주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하고, 오순절 날에 성령 충만함을 받고 나자 완전히 새 사람이 된 것이다. 그리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의 순간에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담대하게 그들 앞에서도 복음을 선포한 것이다.

 놀랍게도 이러한 상황을 예수님께서는 미리 내다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이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눅 21:12∼13).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a)는 말씀처럼 박해의 순간에도 흔들리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복음 전파의 기회로 삼는 사도들의 그 담대함과 용기가 사도행전 전체에 나타나 있고, 2000년의 교회사를 통해 우리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복음 전파의 입을 막으려는 박해는 아무런 효과가 없는 흑암의 세력들의 헛수고일 뿐이다.

김호성 목사(국제신학교육연구원장)

 

기사입력 : 2018.02.11. am 10:40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