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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산에 밤은 깊고 ③(113)


 양곤이 오랫동안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서양의 문물을 받아들인 도시이기는 했으나 갑자기 각국의 많은 아이들을 받을만한 숙박 업소가 충분하게 준비되어 있지는 않아서 정부가 민박을 많이 권하고 있었다.
 “홈 스테이의 경우, 숙박객 등록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거든요”
 “숙박은 그렇다 치고, 낮에는 어디서 뭘 하는 걸까?”
 “그야, 물론 테러 계획이겠지요”
 열차는 이미 양곤 역에 들어서고 있었다. 시간이 00시 45분이어서 시계의 날짜는 벌써 목요일로 넘어가 있었다. 토요일 오전 10시에 대회가 있기 때문에 그 때까지는 이틀 남짓이 남아 있는 셈이었다. 이미 한 밤중인데도 양곤 역에는 한국에서 온 이정선 목사와 EW 317기 희생자의 유가족들이 나와 있었다.
 “깜보야”
 할머니가 다가와 깜보를 껴안았고,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도 그의 손을 잡으며 눈물을 닦았다. 미얀마의 양곤 구를 비롯, 남부의 각 주에서 온 칼레 쿠미의 회장들이 니니를 마중했고, 니니는 그들에게 까친 주의 회장 망가우와 사가잉 구의 회장 메이소 그리고  만달레이 구와 마궤 구의 회장들을 소개했다.  
 “일단 야영장으로 가야겠지요?”
 야영장 관리를 담당하고 있던 SRD의 싼슈이가 쪼야웅 대표에게 물었다. 쪼야웅 대표가 김제규 박사와 우방젠 박사에게 확인을 한 후 말했다.
 “그래야겠지. 차량은 준비 되었나?”
 “관광 버스가 10대이고, 나머지는 저희 SRD의 차량들이 지원합니다”
 열차에서 내린 아이들은 모두 역 광장에 대기 중이던 10대의 버스와 SRD 차량에 나눠 타고 엑스포 야영장을 향해 출발했다. 김제규 박사와 우방젠 병원장 그리고 틴또와 백승기 참사관은 선도차 역할을 맡은 SRD의 밴에 탔고, 깜보도 오래간만에 운전하는 쪼야웅 대표의 옆 자리에 앉았다.  
 “깜보, 그동안 고생이 많았다”
 열차 안에서 따로 이야기할 기회가 없었던 쪼야웅 대표가 깜보를 팔에 깁스를 한 채로 샨 주에 보냈던 것이 미안한 듯 말했다. 깜보가 힛죽 웃었다.
 “삼촌 덕분에… 고생 좀 했지요”
 “고생은 했어도 그 동안 깁스를 풀었으니 다행이야”
 “할 일을 다 할 수 있었던 것도 다행이구요”
 “네가 할 일은 너를 보내신 분이 오셔야 다 끝나는 것 아닌가?”  
 “그건 그렇네요”
 자정이 지난 시간이지만 엑스포 기간이기 때문인지 야간 조명이 거리를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 양곤 중앙역에서 출발한 차량들의 행렬은 빤소단 가를 따라 올라가다가 깐도지 호수 앞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저게 쉐다곤 파야로군요”
 바한 로를 지날 때 양곤에 처음 온 깜보가 앞 쪽에 보이는 황금 빛 파야를 가리켰다. 미얀마어로 ‘쉐’는 황금이고 ‘다곤’은 언덕의 의미로 사용되는 말이었다. 양곤은 본래 해변의 작은 어촌 마을이었는데 바다를 건너온 몬 족이 해변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무슨 까닭인지 그 이름을 ‘다곤’ 마을이라고 했던 것이다.
 “왜 몬 족이 이곳을 다곤이라고 했을까요?”
 깜보가 그렇게 묻는 이유를 쪼야웅 대표는 알고 있었다.
 “바다의 신을 생각했겠지”
 가나안 사람들이 거주하던 땅에 들어와 살던 해양 민족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이라는 신을 섬기고 있었다. 그들에게 사로잡혔던 삼손이 맨 손으로 기둥을 꺾어 무너뜨렸던 신전이 바로 다곤의 신전이었던 것이다.

<계속>

 

기사입력 : 2018.02.04. am 12:00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