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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황소>

안으로 마르지 않는 삶의 에너지 샘솟게 한 작품


그림이 생존과 생활의 전부였던 천재 화가 대향(大鄕·이중섭의 호)
점으로 묘사되는 인생, 굵은 선으로 엮일 때 삶의 그림 완성 

 “지금 여러분은 미래를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현재와 과거의 사건만을 연관지어 볼 수 있을 뿐이죠. 그러므로 여러분은 현재가 미래와 어떻게든 연결된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가 미래로 연결된다는 믿음이 여러분의 가슴을 따라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험한 길이라 하더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생의 모든 차이를 빚어냅니다”
 스티브 잡스가 2005년 6월 스탠포드대학교 졸업식에서 한 말이다.

 옛날 한 점의 그림과 만나 오늘날 미술관을 만들었으니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라는 시간의 연속성 안에서 인연의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서울미술관을 개관하게 된 것도 따지고 보면 1983년 이중섭의 <황소>와 처음 인연을 맺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 스티브 잡스의 연설을 듣고 새삼 무뎌진 가슴이 옛 기억에 두근거렸는지도 모르겠다.

 1983년 9월 중순, 태풍 포레스트가 많은 비를 뿌리며 한반도를 지나고 있었다. 명동 성모병원에서 일을 마친 뒤 비를 피하려고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비가 너무 많이 내려 멀리 가지 못하고 병원 맞은편 액자가게 처마 밑에 멈춰 섰다. 바로 그때 처음 액자가게 안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는 이중섭의 <황소>와 만났다.

 ‘참 못 그렸다. 내가 초등학교 때 그린 소랑 닮았네’ 내 눈에 <황소>는 크레용 같은 것으로 성의 없이 그린 그림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30분을 그렇게 서 있는 동안 그림을 자꾸 보니 못난 소가 화가 난 소로 보이기도 하고, 어딘가로 막 도망치는 모습처럼도 보였다. 사방을 퍼붓는 비로 도시가 축 늘어진 짙은 회색빛이었으나 그 소만 어깨를 허옇게 드러내고 있었다. 힘이 팔팔했다. 잔뜩 어깨에 힘을 주고 있는 모습이 그림 밖 어디에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대상을 향해 경계하는 태세로 보였다.

 액자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주인은 내 눈길이 머문 그림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1만원’이라 말했다. 그림의 가격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제야 주인은 유화가 아니라 사진으로 액자를 만든 것이라 말해주었다. 흥정을 해 7000원을 주고 그 소를 집으로 데려왔다. 자꾸 볼수록 친근한 마음이 들었다.

 <황소>라는 그림을 통해 나는 이중섭이라는 작가에 대해 처음 알게 됐다. 후에 구상 선생을 통해 이중섭과의 인연이 더 가까워지기도 했다. 시인 구상 선생은 나와 한 아파트에서 10년 가까이 아래위층에 살았던 소중한 이웃이었다. 선생은 이중섭의 천재성을 높이 평가하며 그의 성장과정이나 인간성에 얽힌 에피소드를 들려주셨다.

 천재화가였던 대향(大鄕) 이중섭. 그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 대학시절에는 시인이자 평론가인 다키구치 슈조, 하세가와 사부로, 화가 김환기와 진환이 극찬할 정도로 주변에서 인정을 받았다. 하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림을 그릴 수 있는 환경이 되지 않아 합판이나 맨 종이, 담뱃갑 은종이에 그림을 그려야 했다. 유학 시절 야마모토 마사코, 한국 이름 이남덕과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만 행복한 시절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6.25 전쟁이 일어나 두 아들과 함께 원산과 부산을 거쳐 제주도로 피난을 가야 했다. 피난길 내내 가난은 그들을 따라다녔고 결국 아내는 극심한 생활고를 벗어나기 위해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 친정으로 건너갔다. 이중섭의 오랜 지인 구상 선생은 “중섭에게 있어 그림은 그의 생존과 생활과 생애 전부였다. 그 만큼 그림과 인간이, 예술과 진실이 일치한 예술가를 보지 못했다”고 회상했다.

 사진으로 모사한 작품 <황소>를 본 뒤 나는 진품을 가지고 싶다는 강한 욕구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그 길은 쉽지 않았다. 30년의 세월이 흘러 <황소>는 우여곡절 끝에 우직하고 용맹스러운 위용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나에게 달려와 주었다. 더 기막힌 사연은 그 옛날 이중섭이 애지중지 여겼던 <길 떠나는 가족> 작품을 건네고 대신 <황소>를 받았던 청년이 머리가 희끗희끗한 아흔 살 노신사가 돼 내가 가지게 된 <길 떠나는 가족>을 건네받고 내가 그리 원하던 <황소>를 나에게 넘겨줬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늘 곁에 있는 것에 대해 소중함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하지만 늘 곁에 있어 불편을 주지 않는 것들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면 그제야 부재의 허전함을 몸소 깨닫게 된다. 어쩌면 우리 삶에 예술이 그러한 존재일지 모르겠다.

 예술은 우리의 일상을 선명하게 바라볼 수 있게 하는 돋보기와 같은 존재이다. 삶을 새로이 하는 발견이다. 나에게 <황소>는 미술품 수집가의 길을 터준 운명적인, 하나의 선명한 점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의미의 발견은 예술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주어지지 않는 경험이다. <황소>는 안으로는 마르지 않는 삶의 에너지를 샘솟게 하는 우물이며, 밖으로는 내가 어느 나라,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지를 명확히 해주는 나의 정체성에 다름없다.

 인생은 여러 끊어진 사건들이 점이 되어 찍혀 있는 한 장의 도화지와 같다. 그 점들을 이중섭처럼 굵은 선 몇 가닥으로 엮을 수 있다면 지금껏 자신이 이루었던 과거가 그림으로 그려져 나타날 것이다.

 그림이 어디에 쓰이는지 알지 못했던 내가 이중섭의 <황소>가 매개가 되어 그림에 눈을 뜨고, 그림을 통해 추억과 기억, 기대와 소원을 쌓아올려 오늘날 서울미술관을 열었다. 이 또한 하나의 점이 되어 나의 도화지에 찍힐 터. 오늘 찍은 이 점이 내일 찍힐 어느 점과 연결되어 하나의 선을 이룬다고 생각하면 한 점 한 점 신중하지 않을 수없다. 긴 호흡을 멈추고 마음을 한데 모아 찍은 점. 채 마르지 않은 그 점이 그려낼 내 생의 그림을 어찌 달뜬 마음으로 기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8.01.21. am 12:18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