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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 요나의 애국심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욘 4:5-11]


 ‘하나님의 사랑, 요나의 애국심’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앗수르’라는 나라는 이스라엘을 매우 괴롭히던 이스라엘 북방에 있는 강대한 국가였습니다. 그래서 요나는 애국심 때문에 앗수르가 망한다면 어떻게 해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판단은 인간적인 생각을 하나님의 뜻을 뛰어 넘은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만 잘 살면 되지, 이스라엘을 괴롭히는 망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그 마음의 생각은 하나님 생각을 뛰어 넘은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자기 뜻을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 명령을 어기고 배를 타고 도망을 치다가 태풍에 걸려서 물속에 빠지게 되고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게 되기까지 했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어긴 요나

 요나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 쳤습니다. 요나는 이스라엘의 선지자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서 북방 앗수르가 망할 것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야훼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요나가 야훼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야훼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 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요나 1장 1절~3절) 다시스는 북방으로 가는 반대방향인 것입니다. 배를 파선시킬 대풍랑이 북방으로 가지 않고 남쪽으로 도망을 치는 요나가 탄 배에 휘몰아 쳤습니다. “야훼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요나 1장 4절)” 제비를 뽑아서 이 화가 누구 때문에 미치는지 선원들과 승객들이 알기를 원했었습니다. “그들이 서로 이르되 자 우리가 제비를 뽑아 이 재앙이 누구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임하였나 알아보자하고 곧 제비를 뽑으니 제비가 요나에게 뽑힌지라(요나 1장 7절)”, “그가 대답하되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 그리하면 바다가 너희를 위하여 잔잔하리라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 때문인 줄을 내가 아노라 하니라 그러나 그 사람들이 힘써 노를 저어 배를 육지로 돌리고자 하다가 바다가 그들을 향하여 점점 더 흉용하므로 능히 못한지라 무리가 야훼께 부르짖어 이르되 야훼여 구하고 구하오니 이 사람의 생명 때문에 우리를 멸망시키지 마옵소서 무죄한 피를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주 야훼께서는 주의 뜻대로 행하심이니이다 하고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매 바다가 뛰노는 것이 곧 그친지라(요나 1장 12절~15절)” 요나를 들어 하나, 둘, 셋 하고 던졌습니다. 요란스러운 폭풍을 몰고 오던 바다가 요나를 받아들였으니 바다가 잠잠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바다에 던져진 요나에게 피할 길을 주셨습니다. 물에 빠져 죽을 것인데, 하나님은 요나에게 사명을 다하도록 하시고 물에 빠져 죽도록 내버려두지 않았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13절에 보면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그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고난을 당할 때, 두려워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내사 우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피난처

 하나님께서 피난처를 예비해놓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 던져지기 전에 물고기를 미리 예비해놓았었습니다. 하나님이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감당할 수 있도록 피난처를 준비해놓으신 것입니다. 밤낮 3일을 물고기 뱃속에서 요나는 회개했습니다. 물고기 뱃속에 들어가서 심장소리만 덜컥덜컥 들리고, 물고기가 파도에서 피해가려고 이리저리 물 위에 떴다가 내렸다가 하니 어지럽기 짝이 없고, 3일 동안 정신이 없었습니다. “야훼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느니라(요나 1장 17절)” 요사이 사람들은 물고기가 어떻게 사람을 뱃속에 넣고서 돌아다닐 수가 있느냐고 비웃을 것입니다. 물고기 뱃속에 요나가 타고 있는 것은 요사이 잠수함 속에 수많은 군인들이 타고 돌아다니는 거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고자 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시는 것입니다.

 1장 17절에 “야훼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읽을 때, ‘물고기 뱃속에서 삼일 동안이나 있었다니,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이런 생각을 할 것입니다. 우리는 어머니 뱃속에서 10개월을 있었는데, 요나가 다 큰 사람이 하나님 예비한 물고기 뱃속에 3일 동안 있게 한 것은 아무것도 아닌 것입니다. 나는 물고기 뱃속에 있어본 적은 없습니다만, 큰 물고기로 예비해서 뱃속에서 많이 괴롭지 않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잘못된 길을 가는 요나를 돌이키기 위해 하나님께서 풍랑을 보내셨지만, 풍랑을 보내실 때 이미 요나를 위해 물고기를 예비해놓은 것입니다. 너무 과도한 풍랑에 고통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물고기를 예비해놓은 것입니다.

 요나는 풍랑을 만나자 니느웨로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우리는 유턴을 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U자로 방향을 바꿔야 되는 것입니다. 인생도 유턴을 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고 가다가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 유턴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방향을 바꾸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된 길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풍랑입니다. 기독교 작가 C.S.루이스는 “고통은 하나님의 확성기”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계속 가면, 하나님께서 고통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외로 심신의 고통을 당하고 있을 때, ‘하나님께 잘못하고 하나님 뜻을 거역하고 있지 않나?’를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 앞에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회개할 때까지 괴롭히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나오도록 복음을 전했는데 성령이 역사해서 말씀을 듣는 자마다 통곡을 하고 회개를 하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았습니다. 평민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 왕실이 그 소식을 듣고 임금님이, “그 일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위에 앉으니라(요나 3장 6절)” 재위에 앉았습니다. 대단한 일인 것입니다. 짐승까지 금식을 하게 된 것입니다. “왕과 그의 대신들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이르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요나 3장 7절~8절)” 금식은 괴로운 것입니다. 더구나 물조차 마시지 않으니까 얼마나 고통스러울 것입니까. 하나님께서는 금식기도를 불쌍히 봐주시는 것입니다. 보통기도보다도 답답할 때는 금식기도 하는 것이 참 좋습니다. 그 고통을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시고 난 다음에 자기 심판을 중지시켰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이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보시고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요나 3장 10절)”

 니느웨 사람들이 진심으로 회개하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시고 심판을 거두셨습니다. 하지만 요나는 계속해서 정죄와 심판을 주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의 심판을 중지하겠다고 선포를 했는데도, 요나는 “하나님 기어코 그들을 심판해야 된다”고 따로 성 동편에 움막을 짓고 앉아서 하나님이 심판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나는 의롭고 너는 악하다’ 그러한 마음으로 ‘나는 심판을 면하지만 너희들은 심판을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는 의롭고 너는 죄가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도토리 키 재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물에 돌멩이를 던지면 굵은 돌도 가라앉고 작은 돌도 가라앉습니다. 굵은 돌은 풍덩하고 가라앉고, 작은 돌은 퐁당하고 가라앉는 것입니다. 소리만 다르지 가라앉기는 다 가라앉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지으면 하나님 앞에 다 죄인입니다. 큰 죄가 있고 적은 죄가 있지만 하나님께 심판받고 지옥으로 내려가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몇 번까지 지을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을 종종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나가서 “주님 우리가 죄 지은 자를 몇 번이나 용서해야 됩니까? 죄 지은 자가 하루에 일곱 번씩 죄를 회개하고 오면 용서해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하루에 죄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을 지어도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를 해줘라”는 것입니다. 죄는 용서해줄 수 있는 대로 용서를 해주면 좋습니다. 하나님은 용서를 해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정죄와 심판을 주장하는 요나에게 하나님이 교훈을 가르치길 원했습니다. 움막집을 짓고 있는데 하루저녁 사이에 넝쿨이 움막을 덮었습니다. 움막을 덮는 넝쿨은 하루저녁에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루저녁에 그 움막을 풀이 넓적 넙적한 넝쿨이 움막을 덮었습니다. 하나님이 넝쿨 농사를 하신 것입니다. 요나가 아침에 일어나고 보니 “아 하루저녁에 넝쿨이 내 움막을 덮었네. 아 시원하고 좋다. 그거 참 좋다.” 넝쿨 밑에서 머리를 쓰다듬고 넝쿨 잎사귀로 부채를 삼아 부치면서 하나님 심판이 임하기를 기다리는데, 밤에 하나님이 벌레하고 의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시려면 사람들과는 의논하는 게 아니라 벌레하고도 의논을 해요. “벌레야 가서 넝쿨 줄기를 갉아 먹어라.” 벌레가 “그렇게 많은 것을 하루저녁에 다 먹어요?”, “가서 먹어라” 벌레가 가서 밤새도록 갉아 먹었습니다. 아침에 보니깐 덤불이 벌레가 와서 먹어가지고서 시들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그렇게 시원하던 그늘을 주던 넝쿨을 벌레가 먹어버리면 어떻게 하냐. 이놈의 벌레 가만두나 봐라!” 그런데 하나님께서 햇빛을 뜨겁게 비추고 동풍을 불어오게 하니 뜨겁고 더운 곳에 더구나 움막도 덤불이 다 죽어버리고 그러니 요나가 하나님 앞에 와가지고 통곡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박넝쿨 사건을 통해서 회개와 용서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친 것입니다. 


3. 니느웨의 심판을 원한 요나

 성 동쪽에 초막을 치고 거기서 심판이 오기를 기다리는 요나.
“요나가 성읍에서 나가서 그 성읍 동쪽에 앉아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초막을 짓고 그 성읍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를 보려고 그 그늘 아래에 앉았더라(요나 4장 5절)”.
“하나님 야훼께서 박넝쿨을 예비하사 요나를 가리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였더니(요나 4장 6절)”
이것을 하루 밤 사이에 벌레가 먹고 말게 한 것입니다. 벌레사건이 일어나서 이튿날 새벽에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니 시들어 버리고 만 것입니다. “하나님이 벌레를 예비하사 이튿날 새벽에 그 박넝쿨을 갉아먹게 하시매 시드니라(요나 4장 7절)” “해가 뜰 때에 하나님이 뜨거운 동풍을 예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에 쪼이매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이르되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이 내게 나으니이다 하니라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나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에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요나 4장 8절~9절)”

4. 니느웨를 용서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로 니느웨를 용서하신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야훼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요나 4장 10절~11절)”, “야훼의 말씀에 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고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하셨나니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너희 하나님 야훼께로 돌아올지어다 그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나니(요엘 2장 12절~13절)”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고 구원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에스겔서 18장 23절에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을 어찌 기뻐하지 아니하겠느냐”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요한복음 3장 16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나오면, 하나님께서 그를 용서하시고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새해가 시작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런 저런 계획들을 세웁니다. 하지만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잠언 16장 9절)이십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꿈과 희망을 주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 29장 11절에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새해를 시작하면서, 꿈과 희망을 마음속에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멋진 미래를 계획하고 계셔도, 우리 마음에 꿈이 없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인생이 제자리에 멈춰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꿈과 희망을 품고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올 한 해 동안 놀라운 변화와 발전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서 순종하면,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역사하사 여러분이 꿈꾸는 것을 이루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꿈을 꾸는 것은 희망을 마음에 갖는 것이고, 믿는다는 것은 내가 적게 믿으면 적게 이루어지고, 많이 믿으면 많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꿈을 작게 믿으면 조그마하게 이루어져요. 많이 믿으면 크게 이루어져요. 우리는 우리 마음속에 긍정적인 마음을 품고 하나님은 용서하시고 축복을 주시기 원하시는 좋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좋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이 용서받고 의를 마음에 품고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이 하나님에게 심판받아 멸망받기를 원했으나, 하나님은 큰 풍랑을 잠잠케 하시기까지 하시면서 회개할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태복음 3장 2절)’ 회개하고 나오는 사람은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할 것 없이 하나님은 용서하여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용서해주시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담대하게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죄를 회개하고 마음에 용서를 받고 하나님 앞에 나가면 아무도 하나님이 물리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해주시면 하나님은 우리의 생활에 영광이 다가오기를 원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의 마음이 무엇을 하든지 집중을 하십시오. 그것을 중심으로 목적을 가지고 집중을 해야 하나님 성령이 함께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이것하고 저것하고, 이것하고 저것하고 하지 말고, 집중을 하고, 그 다음 꿈을 품으십시오. 꿈이라는 것은 여행가방과 같습니다. 여행가방이 있어야 여행할 때 무엇을 담아서 가져가기도 하고 가져 오기도 하는 것인데, 여러분이 무엇을 갖기 원하면 꿈을 품어야 되는 것입니다. 꿈을 가졌으면 여러분께서 그 꿈을 믿을 것이냐 믿지 않을 것이냐 마음속에 결정을 해야 되는 것입니다. 조금 믿으면 조그마한 일이 일어나고, 많이 믿으면 많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네 믿음대로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입술로 하나님께서 나와 같이 계시므로 일이 이루어진다고 늘 시인하십시오.

 우리 머릿속에 원수마귀가 부정적인 것을 심어 놓으려고 노력을 많이 합니다. 까치가 둥지를 치듯이 여러분 머리에 둥지를 치고 마귀가 새끼를 놓고 우리를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머리에 생각이 있으면 늘 부정적인 말을 하는데, 그 부정적인 것을 무엇으로 쫓아내느냐? 말로써 쫓아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물러갈 지어다! 예수님의 보혈로 명하노니 물러갈 지어다! 그리스도의 권세를 가지고 명하노니 물러갈지어다.” 입술의 말로써 내쫓으면 공중에 빙글빙글 돌다가 떠나가 버리는 것입니다. 둥지를 치지 못하게 하고, 머릿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둥지를 치게 해야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말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시리라, 저가 채찍에 맞음으로 네가 나음을 얻었느니라, 주가 줄 것이요 곧 후히 되어 눌러 흔들어 넘치게 담겨주리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그렇게 외우고 선포하면 그 열매가 주렁주렁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성령의 도우심으로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에 잘되며 강건하고 생명을 얻되 넘치게 얻도록 살게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사입력 : 2018.01.07. pm 17:13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