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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누카, 영원히 꺼지지 않는 하나님의 빛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

 12월이 되면 찾아오는 절기가 있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예수님이 탄생하신 크리스마스가 그리고 유대인에게는 하누카가 있다. 겨울이 되면 다가오는 이 두 절기, 크리스마스와 하누카 무언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이 두 절기는 과연 어떤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을까?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상징에는 메노라(촛대), 일곱 촛대가 있다. 관공서나 기타 정부를 표시하는 문건에는 동그라미 안에 자리잡은 메노라(촛대)의 상징이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하누키아라고 하는 메노라(촛대)가 하나 더 존재한다. 하나는 성경에 나오는 일곱 촛대라고 하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유대인의 상징인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것과 하누카(수전절)란 절기에 불을 밝히는 아홉 개의 가지를 가진 촛대이다. 왜 이 촛대는 하나는 일곱 개를 그리고 하나는 아홉 개의 가지를 가지고 있을까?

 성경에서 일곱 촛대라고 하는 것은 출애굽에 등장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막을 지으라고 하시면서 그 성막 안을 밝힐 촛대를 만들게 하신다. 금으로 제작된 촛대는 일곱 개의 가지를 가진 촛대이다. 이것은 성서에서 하나님의 빛을 상징하고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빛 되심을 상징한다. 그런데 하누카에 밝히는 촛대는 이 성경의 촛대와 다르게 두 가지가 더 추가되어 있다. 왜 그럴까? 하누카의 기원은 약 2200년전인 BC 2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누카는 우리나라말로 성전을 바침 즉 봉헌, 수전이라는 의미이다. 성경에 보면 수전절은 신약성경에만 언급되어 있으며 예수님도 수전절을 지키셨다고 기록되어 있다. 구약에 수전절이 언급되지 않은 이유는 말라기와 마태복음 사이의 400년간의 침묵기라고 불리우는 시기에 생겼기 때문이다. 이 하누카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에 대해서 많은 이야기가 전해 오지만 신앙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많은 의미를 찾을 수가 있다.  

 먼저 유대인들에게 성전이 가지는 의미이다. 유대인들에게 성전은 하나님의 거하시는 처소, 임재의 장소다. 그 성전은 정결해야 하며 하나님이 주신 율법으로 그 정결함을 유지하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그리고 소중하게 여겼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성전은 자신들의 정결함과 거룩함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둘째로 성전을 향한 그들의 열정이다. 성전이 이방인들의 제사, 그것도 율법에 어긋난 제사로 인해 더럽혀지자 그들은 죽음을 불사한 항쟁을 하게 된다. 다른 것은 용납 되어도 하나님에 대한 예배의 처소,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에 대한 모독은 참을 수 없다는 것이다. 내 목숨을 다해서 지켜야 할 거룩함의 상징이었던 것이기 때문이다. 비록 그 성전이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성전의 거룩함에 대한 그들의 분노는 어찌보면 우리도 마땅히 가져야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우리가 성령이 거하시는 곳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우리의 몸과 생각이 더럽혀져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이런 거룩한 분노가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셋째로 그들이 바라는 하나님에 대한 모습이다. 성전이 수복된 이후 성전 촛대에 불을 붙일 수 있는 기름의 양은 하루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불이 기적적으로 8일 동안 타올랐다고 전해진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함을 위해서 자신들을 내어 던질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알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함을 지켰을 때 하나님이 자신들을 돌아보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것이 하누카 촛대에 전해지는 전설이 가지는 의미라고 본다.

 매년마다 크리스마스와 하누카는 교묘하게 겹치거나 날짜가 따라오는 것을 우리는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종종 성경학자들 중에는 하누카(수전절)와 크리스마스를 이해할 때 예수님이 수전절을 통해서 이 땅에 성전을 회복하기 위해 오신 것으로 해석 할 때가 있다. 하지만 하누카와 크리스마스에 중요한 점은 비단 그것만이 아닐 것이다. 하누카는 야훼의 절기에 속해 있지는 않다. 그렇기에 하누카와 하나님의 역사를 결부지어서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은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인간의 생각으로는 하루 밖에 타오를 수 없는 불이었지만 하나님의 기적으로 8일 동안 타 올랐던 것처럼 인간의 관점으로 보기에는 목수의 아들로 오신 예수가 어떻게 구원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했던 유대인들의 불신을 하나님이 자신의 아들임을 증명함으로 영원한 구원의 빛으로 만드신 것과 같은 의미가 될 수 있다.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한다. 그 빛이 우리 가운데 왔으나 어둠이 그 빛을 못 알아보고 세상은 그 빛을 거부하였다고 한다. 그 빛은 꺼져버리고 사라져 버린 것처럼 여겨졌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을 때 그 빛은 꺼져버린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빛을 다시금 타오르게 하신 이가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그 빛을 영원한 빛으로 만드셨다.
 이런 기적과 같은 은혜를 유대인들이 깨닫게 되면 전혀 연관이 없을 거 같은 하누카와 크리스마스를 통해 구원의 빛, 기적의 빛, 세상을 비추는 영원한 빛이신 예수아라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기사입력 : 2017.12.24. pm 14:48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