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기획ㆍ특집 > 마침내 미술관
피카소 <인물화>

모든 이의 삶에서 마주하는 기쁨과 슬픔
치기어린 시절의 실패, 그러나 행복도 찾아와 

 27살에 ○○상사 대표가 됐다. 하지만 2년도 채 되지 않아 문을 닫으면서 가슴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며칠이고 그저 집에만 있던 어느 날, 작고 낮은 목소리가 문밖에서 들렸다. 지금의 아내였다. 걱정이 돼 왔다고 했다. 당시 안양에 살고 있던 그녀가 나를 위로해 주기 위해 버스를 타고 마포까지 와 준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아니 그럴 처지가 되지 않았다. 방문을 반쯤 열어 놓고 돌아앉아 아무 말 없이 방바닥만 내려다보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서 좀 걷자”는 그녀의 설득이 결국 나를 밖으로 끌어냈다.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의 존재감을 그때만큼 크게 느껴본 적이 없었다. 내가 문이 닫힌 어두운 방이라면 그녀는 햇빛 찬란한 창문과도 같았다.

 생활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어느 때보다 행복함에 충만했던 1982년 가을, ‘서유진’ 그녀는 나의 아내가 되어주었다. 내 절망의 순간에 그녀를 만나 사랑의 꽃을 피워낸 것처럼 하늘은 언제나 기쁜 곳에 슬픔도 있게 하고 슬픈 곳에 기쁨도 있게 하는 공평함을 가졌다. 마치 피카소의 <인물화>처럼 말이다.

 나에게는 두 개의 얼굴이 겹쳐져 하나의 얼굴로 완성된 피카소 드로잉 작품이 있다. 그가 그린 다른 수많은 초상화가 그렇듯 1939년에 그린 이 작품도 두 얼굴이 겹쳐져 있다. 당시 피카소는 마리 테레즈(Marie Therese)와 도라 마르(Dora Maar)라는 두 개의 얼굴 사이에 서 있었다. 피카소 뒤에 마리 테레즈가 서 있고, 앞에 도라 마르가 서 있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인 사진작가 도라 마르는 피카소의 모국어인 스페인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 고국에 강한 연민을 가졌던 피카소는 도라 마르의 초상을 여러 점 그렸는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 그림도 연도나 형태로 봐서 도라 마르의 초상화와 닮은 점이 많다. 피키소는 스페인 내전을 다룬 작품 <게르니카>를 그리면서 오직 도라 마르만이 자신의 작업과정을 촬영할 수 있게 했다.

 1936년에서 1939년에 일어난 스페인 내전은 스페인 전 지역을 황폐하게 했다. 작고 평화로운 마을 게르니카도 예외는 아니었다. 게다가 나치는 이 지역에 폭격 실험을 자행했다. 결과는 참혹했다. 전쟁에서 군인이 아닌 민간인이 한꺼번에 1600명 이상이 희생되는 어처구니없는 광경이 세상을 분노케 했다. 물론 피카소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붓을 잡은 사람은 세상에 참여해야 한다’고 믿었던 피카소는 35일 동안 밤낮 가리지 않고 <게르니카>작업에 매달려 1937년 6월 3일 완성했다. 절규하는 여인 등 전쟁터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 그의 그림 안에 뒤엉켜 있다. 20세기 모든 작가가 그의 이름 뒤로 나열될 수 밖에 없는 것은 그의 천부적 재능 뿐 아니라 다채로운 작품 세계, 무한한 실험 정신, 작가로서의 현실참여 등이 미술사를 넘어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까닭이 아닌가 싶다. 그는 <게르니카>에 이어 1951년 <한국의 학살>이라는 작품을 통해 반전 메시지를 담아냈다. 이는 당시 민간인 학살이 자행된 6·25전쟁의 보도를 접하고 그린 작품이다. 전쟁과 평화 사랑의 화두를 끊임없이 캔버스에 옮겨 예술적인 승화 안에 안에서 참다운 메시지를 전한 피카소는 영혼이 살아있는 진정한 예술가이다.

 그림에 대한 사랑과 여인에 대한 사랑은 피카소에게 기쁨과 행복만을 주지 않았다. 좌절과 슬픔, 고독이 언제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녔다. 하지만 그는 사회 혼란과 자기 파괴의 감정을 고스란히 역작으로 승화시켰다.

 나는 치기 어렸던 지난날, 첫 실패를 맛보았고 대신 그때 지금의 아내의 사랑을 확인했다. 충분히 돌아서고자 마음먹을 수 있던 나의 암흑기를 그녀는 곁에 머물러 버텨 주었다. 현실을 사는 우리는 때때로 기쁨과 슬픔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무한한 기쁨이 문득 나락으로 떨어질 듯한 두려움을 낳기도 하고, 한없이 깊은 슬픔이 투명하고 차분하게 내면을 들여다볼 수 있는 우연한 계기를 마련하기도 한다. 인생을 후회 없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행복을 대하듯 불행을 대하고, 성공에 감사하듯 좌절에 감사하고, 기쁨을 맞이하듯 슬픔을 맞이해야 한다. 낮과 밤을 당연히 받아들이듯 삶이 가진 동전 같은 양면성을 관조할 수 있는 태도가 필요하다.


안병광 장로(서울미술관 설립자)

 

기사입력 : 2017.12.24. pm 14:03 (입력)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