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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유익하므로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몬 1:10~12)

 오늘은 빌레몬서 1장 10절로 12절의 말씀을 본문으로 해서 “이제는 유익하므로”라는 제목으로 함께 말씀 나누겠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난 다음 그 삶이 변화되어서 축복받은 삶을 살았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고 할지라도 예수님을 만난 다음 주님의 은혜가 임하니까, 그 삶이 완전히 달라져서 나중에는 사람들에게 존경과 칭찬받는 사람으로 살아간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도 그와 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주인의 것을 훔쳐서 도망간 도둑이 예수 믿고 변화되어서 아주 훌륭한 주님의 일꾼이 된 이야기가 바로 빌레몬서입니다.

 1. 변화된 인생

먼저, 변화된 인생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기 원합니다. 빌레몬서 1장 8절로 10절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서 사도 바울의 동역자요, 훌륭한 교회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간곡히 요청하는 내용입니다. 이 편지 내용에는 빌레몬의 종이였던 오네시모를 용서해줄 것과, 또한 오네시모가 자신과 함께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줄 것을 요청하는 그러한 내용을 편지에 담아 보낸 것입니다.

 빌레몬은 사도 바울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 믿게 하고 주의 종으로 만든 제자와도 다름없는 훌륭한 동역자였는데, 사도 바울 위치에서 명령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라.” 그런데 이 오네시모에 대해서만은 간곡히 요청을 합니다. “내가 사랑으로서 간곡히 요청한다. 나도 나이가 이렇게 많이 들었고 지금 이 감옥에서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내가 간청하니 잘 들어달라!” 이러한 내용을 담아 보냅니다.

 도대체 오네시모가 누구인가? 오네시모가 누구길래 사도 바울이 제자에게 간곡히 요청하고 있는 가를 우리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이 오네시모는 원래 빌레몬의 집에서 일하던 노예입니다, 노예. 우리나라 옛날의 하인들이죠. 종이고 노비였습니다. 그런데 아마 빌레몬이 굉장히 부자였던가 봐요. 어느 날 사람들이 보지 않는 것을 살펴보았다가 주인의 물건을 도둑질해가지고 도망을 가버렸어요.

 당시 노예가 주인의 것을 훔쳐 달아나다가 잡히면 큰 형벌을 당했습니다. 로마법에 의하면 아주 가혹하게 채찍질을 하고, 얼굴에 낙인을 찍기도 하고, 쇠사슬에 묶어놓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다리를 부러뜨리기도 했어요. 매를 맞다가 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는 안 붙잡히려고 도망을 가고, 멀리 멀리 멀리 로마까지 갔다가 거기서 사도 바울을 만나가지고 예수 믿게 된 것입니다.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그가 변화되었는지 사도 바울을 열심히 섬기는 주님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사도 바울은 로마 시민권자였기 때문에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가택 연금 상태의 그러한 그 제한을 받고 감옥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는 형이 확정되기 전에도 막 집어넣는데, 로마법이 우리나라 법보다 훨씬 더 앞서있는 것 같아요. 형이 확정될 때까지 가택 연금 상태로 거기서 있으면서 마음껏 사람도 만나고 거기서 복음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28장 마지막 부분에 이러한 설명이 나옵니다. 30절, 31절에,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이 표현은 그가 죄수로 끌려가서 형 확정되기 전까지 한곳에 머물러있으면서 마음껏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지마는 밖으로 나가서 활동할 수는 없는 그런 연금 상태에 있었던 것을 설명합니다. 여기서 오네시모를 만납니다. 오네시모를 만나서 복음을 전할 때 오네시모가 회개하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신실한 크리스천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사도 바울을 옆에서 열심히 잘 섬기는지, 아들과 같은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빌레몬서 1장 11절에 설명하기를,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이렇게 사도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원래 오네시모란 이름이 ‘유익하다’는 뜻입니다. 종들에게 이름을 붙일 때, “너는 유익한 종이다” “쓸모 있는 종이다” 그래서 이렇게 오네시모란 이름을 붙입니다. 우리나라 말로 표현하면, “너는 오늘부터 이름이 ‘유익’이다”, “너는 내게 유익을 끼쳐야 된다”, “유익아. 유익아!” 이렇게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름은 오네시모인데, 유익한 자인데, 무익한 자가 되어서 주인의 물건을 훔쳐 도망가서 이렇게 멀리 멀리까지 간 그러한 사람이었는데, 예수 믿고 나서 이름 그대로 다시 유익한 자가 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오네시모가 우리들의 옛 모습이 아닌가’ 그런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 믿기 전에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다 무익한 자였습니다. 원래 하나님이 우리를 매우 귀한 하나님의 존재로, 유익한 존재로 창조하셨는데, 죄짓고 불의하고 타락해서 무익한 존재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남에게 해를 끼치고 상처를 입히고 분노하고 미워하고 갈등하고 다투며 살아왔던 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예수님 믿고 나서 삶이 변화되어서 다시 유익한 종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난 다음 원래 지음받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 유익한 존재들이 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은혜입니다. 무익한 종이 유익한 종이 된 것을 갖다가 은혜라고 표현합니다. 에베소서 2장 8절과 9절은 설명합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예수님 믿고 나서 ‘내가, 내가’ 이렇게 하지 못하도록, 주님이 갚으려야 갚을 수 없는 은혜, 하나님의 절대주권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를 택하여 구원하셨다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미국의 폴 워셔 목사님께서 ‘복음(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란 책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우리와 그때에 우리가 마땅히 받았어야 할 형벌을 생각하면, 복음의 위대함을 더욱 크게 찬양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본성으로나 행위로나 영락없는 죄인이었다. 영원한 정죄와 죽음을 당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무기력한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였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아들의 피가 우리를 구원한다!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다! 우리는 그분 안에서, 그분의 피를 통해,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다!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분의 자녀로서 그분과 교제를 나누게 되었다!

 할렐루야! 죄 가운데 살던 우리가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7절, 18절은 설명합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할렐루야! 새사람이 되었습니다.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한 자신의 정체성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는 유익한 존재가 되었다’, ‘나의 남은 여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 것이다’ 믿음의 결단을 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용서의 은혜

 둘째로, 용서의 은혜에 대해서 함께 은혜 나누기 원합니다. 1장 13절 14절은 설명합니다.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오네시모를 다시 그 주인에게 보냅니다. ‘내가 당신의 물건을 훔쳐가지고 도망쳐왔던 당신의 노예인 종을 다시 돌려보내는데, 억지로 용서하지 말고 진정으로 우러나는 마음으로 그를 용서하고 사랑해주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네시모 같은, 도둑 같은 우리들을 무조건 용서하시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아무리 큰 죄를 지었다고 하더라도 예수를 믿고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그는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예수님을 믿고 반드시 오네시모와 같이 주님 앞에서 유익한 존재로 변화되어야만 합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말씀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것이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이고 용서입니다. 용서받을 자격이 없는데 무조건 용서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는 조건이 없는 무조건적인 용서입니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을 돌로 치려할 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돌로 쳐라." 돌을 들고 그 여인을 치려던 저들이 자신의 모습을 바라볼 때,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죄의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 둘, 돌을 내려놓고 그 자리를 떠나갔던 것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이것이 주님의 용서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어떡해서든지 뭔가 이렇게 파헤쳐서 죄가 나오면 그를 정죄하려고 합니다. 온 사방에 알려서 그를 심판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사랑의 모습이 아닙니다. 세상 법정에서는 죄에 대해서 그렇게 할 수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의 법정에서는 사랑과 용서뿐인 것 입니다. 로마서 2장 1절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누구를 막론하고 네가 핑계하지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이 세상에 재판장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으십니다. 우리가 누가 거짓말한다고 그를 데려다가 재판장에 세워서 심판하고 벌을 준다면 우리도 언젠가 거짓말을 원치 않게 할 수 있고, 또 해왔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나도 그 재판장에 설 수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아 알아야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심지어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사람들까지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면서 용서하십니다. 누가복음 23장 34절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이것이 예수님의 용서의 기준입니다.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을 주님이 용서하시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절대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겠다고 하는 그런 마음으로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그러고 말합니다. "절대 용서 못해.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용서 못해" 그래서 부모 자식 간에 원수가 되기도 하고, 부부 간에 헤어지기도 하고,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원수가 되어서 다투기도 합니다. 이렇게 되어서는 온 세상이 싸움판이 되고 말 것입니다.

 저는 정치하는 분들이 다 예수를 잘 믿었으면 좋겠어요. 제발 좀 싸우지 말았으면 좋겠어요. 너무나 싸우는 것 때문에 국민들이 마음이 아픕니다. 북한은 자꾸 쏘아올리고, 뭐 터뜨리고. 중국은 중국대로 막 밀고 들어오고, 일본은 군국주의가 부활하고. 완전히 우리나라가 이렇게 어려운데 정치인들만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거 같아요. 주여, 저들이 예수 잘 믿게 하여주셔서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하나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골로새서 3장 13절, 14절은 말씀합니다.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우리가 예배 때마다 주기도문 찬송을 드립니다. 그 찬송의 그 내용이 이것입니다. 그 찬송 내용 속에 용서에 대한 부분이 이 내용입니다. 마태복음 6장 14절, 15절을 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용서를 하면 좋고, 안 하면 할 수 없고 그것이 아닙니다. 무조건적으로 용서를 해야 되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용서받을 수 없는 사람입니다’라고 하는 기준을 만들지 말고, 예수님을 본받아서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까지 용서하는 그 사랑으로 여러분을 힘들게 하고 어렵게 했던 사람들을 다 용서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여러분의 마음 가운데 평안과 자유함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상처가 왜 옵니까?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오는 것입니다. 마음에 왜 자꾸 미움과 분노가 생각납니까?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예수님의 용서함을 본받아서 무조건 용서해버리면 그 용서로 말미암아 내가 자유함을 받게 되고 기쁘고 즐겁고 보람되고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 마음속에 있는 모든 미움의 사슬을 다 풀어버리고 진정한 용서로 거듭나는 여러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3. 사랑받는 형제의 삶

 세 번째로 사랑받는 형제의 삶에 대해서 말씀드리기 원합니다. 1장 16절, 17절입니다.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오네시모에 대한 설명입니다.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얼마나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가 변화된 모습에 감동되었던지, ‘전에는 네가 그 노예의 주인이었고 상관이었지만, 나 사도 바울이 너에게 간청하니 사랑받는 형제로 대해달라. 옛날처럼 종으로 부리지 말고 사랑하는 형제로 동역자로 오네시모를 받아달라’고 편지를 보냅니다. 골로새 교회에 보낸 편지도 동일한 내용이 나옵니다. 골로새서 4장 9절에 보니까,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그들이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려 주리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얼마나 오네시모가 변화되었으면 이렇게 사도 바울을 감동시켰고 그리고, 이렇게 간곡하게 그의 제자와 다름없는 빌레몬에게 구구절절이 간청하고 또 간청하고 간청합니다. “전에는 너에게 노예였고 너의 하인이었고 너의 물건을 도둑질한 도망자였고 도둑놈이었지만, 다 용서하고 나를 대하는 것 같이 그를 동역자로 대해 달라.” 할렐루야!

 예수 믿고 이렇게 달라져야 됩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이 오네시모가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서 귀히 쓰임받는 하나님의 종이 되었어요. 우리의 삶이 이렇게 드라마틱하게 정말 사람을 감동시키는 그러한 모습으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빌레몬 재산을 훔쳐 도망갔잖아요. 그래서 또 갚아주겠다고까지 말합니다. 빌레몬 1장 18절에,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다 갚아 줄게.” 1장 20절입니다.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이렇게 간곡하게 “오네시모를 받아주면 내가 참 기쁘겠다. 간곡히 간곡히 부탁한다.” 사실 빌레몬은 오네시모에 대해서 아주 분노가 가득해있었을 것입니다. ‘내가 사랑하고 아껴줬더니 내 물건을 훔쳐 도망을 가? 그래? 어디 두고 보자.’하고 벼르고 있었는데, 글쎄 이런 편지가 온 거예요. 오네시모가 그 멀리 로마까지 가서 예수 믿게 되고 자기 스승이신 사도 바울의 오른팔과 같이 일하는 훌륭한 일꾼이 되어서 편지를 들려 보내면서, 이 편지를 갖고 가니까 나를 만난 것처럼 맞아주고 용서하고 형제처럼 대하라. 그래서 이 오네시모는 나중에 에베소 교회의 감독이 되어서 귀하게 쓰임받고 역사에 기록 가운데 남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십자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사랑의 결과요, 용서의 결과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오네시모처럼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어둠의 자식으로 살았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에베소서 5장 8절에서 9절입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모든 어둠이었을 때의 모습을 벗어버리고, 오네시모처럼 새사람의 옷을 입고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분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를 믿기 전에는 이웃에게 손가락질 당하고, 가족에게도 인정받지 못하고, 친구들에게도 인정받지 못했던 그러한 모습으로 살았지만, 예수 믿고 나서 날마다 날마다 달라져서 가족에게 사랑받고, 이웃에게 존경받고, 친구들에게 칭찬받는 그와 같은 주님의 귀한 일꾼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이것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만난 다음 달라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때, 우리가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주님의 일꾼들이 되는 것입니다.

 원래 그의 주인 빌레몬도 예수 믿는 사람이고 주의 종이니까, 그 집에 찾아오는 크리스천들은 많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빌레몬 안에 있을 때는 그가 변화되지 못했어요. 우리가 예수 믿고 나서도 한동안은 변화되지 못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냥 교회를 왔다 갔다 하는데도 집에 가면 옛 모습 그대로 소리 지르고 싸우고 미워하고 주일날 교회 와서는 “주여!” 한 번 하고 또 돌아가고, 이랬던 모습으로 살았던 경우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네시모가 사도 바울 만나서 완전히 변화된 것 같이, 그러한 강력한 은혜의 체험을 우리가 반드시 해서 달라져야 합니다. 어제보다 오늘이 낫고 오늘보다 내일이 나은 모습으로 달라져야 되는 것입니다. 늘 원점으로 돌아가는 그러한 옛 사람의 모습은 이제는 다 내던져버리고 변화된 모습으로 앞으로 남은 삶을 살아가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 하면서도 변화되지 못했다면 우리는 부끄러운 삶을 살아온 것입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을 오네시모를 변화시킨 사도 바울처럼 변화시키지 못했다면 우리가 그것도 주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사도 바울이 오네시모를 변화시킨 것처럼 이제도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을 변화시켜야 됩니다. 우리에게 해를 입힌 사람까지도 변화시켜서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만들 책임이 우리 모두에게 있는 것입니다. 내가 달라지지 않으면서 남이 안 달라졌다고 남을 손가락질하는 일이 한사람도 없게 되길 바랍니다. 남을 얘기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화되어서 나를 만난 모든 사람을 변화시키고 그리고 하나님 영광을 나타내는 주님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들은 공부 못 하는 게 굉장히 스트레스가 될 경우가 있습니다. 제가 학교 다닐 때도요, 저희 반에 수학 선생님 아들이 있었는데 반에서도 늘 맨 아래 꼴지 근처에 왔다 갔다 해요. 선생님 아들인데 그 선생님이 늘 아들 때문에 막 속상해하고 하셨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을 하는데도 성적이 안 나와요. 그래서 나중에 아이큐를 조사해 보니까 아이큐가 80인가밖에 안 나왔어요. 100은 넘어야 되는데, 그래가지고 남이 10분 공부할 것 3시간씩 하는데도 시험을 보면 성적이 별로 점수가 안 나와요. 그와 같았던 한 사람이 위대한 하나님의 일꾼으로 변화된 간증으로 오늘 말씀 마무리합니다.

 아시아 지역의 최고의 에이즈 전문가로 알려진 건국대 생명과학특성학과 조명환 교수님. 금호성결교회 장로님이신데요. 전 세계의 에이즈 예방과 퇴치에 앞장서는 세계적인 학자요, 사회운동가였지만, 늘 학창시절에는 반에서 꼴찌를 할 만큼 열등생입니다. 열심히 공부해도 성적은 늘 바닥이고 아무리 가르쳐줘도 늘 이해력이 늦어서 별명이 형광등입니다, 형광등. 깜빡 깜빡 깜박하는 형광등. 그런데 그 주위에 기도하는 분들이 있었어요. 모태신앙으로 자란 그를 위해 기도해주는 외할머니, 부모님, 또 한 분의 어머니가 계셨는데, 한국전쟁 직후에 태어난 그는 태어날 때부터 국제구호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세이브 더 칠드런’이라고 하는 단체를 통해서 자매결연을 맺어갖고 미국의 한 어머니가, 에드나 넬슨이라는 분이 매달 15달러, 15불을 보내면서 이런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God loves you, Trust his love. I pray for you. (하나님은 너를 사랑한다. 그의 사랑을 믿어라. 나는 너를 위해 기도한다.)”
그런데 그 미국 어머니가 얼마나 대단한지 104세 천국 갈 때까지 45년 동안 계속 매달 15불씩 보내준 거예요. 참 미국 사람들의 이 선교, 또 자선하는 모습은 정말 우리가 배워야 합니다. 이러한 기도와 격려가 그 어려울 때마다 다시 믿음으로 일어나게 만드는 계기가 되었는데, 고등학교 3학년 때 갈 대학이 없어요. 그 성적을 가지고 어디도 갈 수가 없었는데, 아버지 지인인 건국대학교 교수님이 한 분 집에 오셔서 물었습니다. “너 대학 갈 때 되지 않았니?” “근데요, 갈 때가 됐는데 갈 데가 없어요.” “너 꿈이 뭐니?”  엉겁결에 그분이 교수니까, “교수요.” “아! 그러면, 우리학교 미생물공학과에 와라. 생물공학과가 미달됐다.”

 아! 그래가지고, 미달은 원서만 넣으면 붙어요. 그래서 여러분 자녀 때매 자녀들 중에 혹시 이렇게 성적 때매 스트레스 받는 학생 있으면 미달을 찾아서 보내시면 됩니다.
대학을 갔는데 어머니가 한 봉투를 주셔서 ‘야! 금일봉인가’하고 열어보았더니 편지가 들어있었어요. 성경 말씀이 들어있었어요. “야훼의 눈은 온 땅을 두루 감찰하사 전심으로 자기에게 향하는 자들을 위하여 능력을 베푸시나니”(대하 16:9). 그러면서 어머니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아들아, 너에게 좋은 머리를 주지 못해 정말 미안하다. 이렇게 말해서 미안하지만 너의 머리로는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지금부터 주님이 네 안에 들어오게 하셔서 주님이 능력을 베푸시도록 해라. 주님을 네 인생에 적극적으로 끌어들여라!”

 열심히 열심히 공부를 해서 미국 유학을 갔는데, 처음에 미국 오하이오 주립대학에 갔는데 일 년 만에 성적이 나빠서 쫓겨났어요. 그래가지고 다른 대학을 갈라고 다 원서를 내도 다 입학을 거절당합니다. 일 년 동안 공원 벤치에 앉아서 울면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미국 어머니 그 에드나 어머니가 매일같이 ‘하나님이 너를 사랑하신다. God loves you. God loves you. 염려하지 말고 걱정하지 말고 주님만 믿고 의지하고 나아가라’ 편지가 옵니다. 애리조나주립대학에서 편지가 왔습니다. 그런데 거기서도 다 그 거절하는데 한 명의 교수가 그를 받아줍니다. 에이즈를 연구했던 찰스 스털링 교순데, 당시는 에이즈라는 것을 잘 모를 땝니다. 사람들이 에이즈가 에이즈란 말이 처음 나왔을 그때에 이 스털링 교수 밑에 들어가서 참, 훌륭한 교수님을 만났어요. 이분이 잘 지도해서 박사 학위를 받고 건국대학교 교수가 됩니다.

 에이즈를 연구하지 않았을 때 제일 먼저 연구해서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에 그가 이 아시아태평양 에이즈학회 회장이 되고 그리고, 개인과 정부의 도움을 받아서 가난한 나라의 에이즈 환자를 돌보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돼서, 현재 8개국에서 2조원을 거둬들여 가지고 에이즈 환자들을 돕고 있습니다. 일 년에 에이즈 치료비가 2천에서 4천만원 정도의 약값이 든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 일 년에 2조씩을 모금해가지고 에이즈 환자를 도와주는데, 글쎄, 매달 15불씩 미국에서 지원받던 이 꼴찌였던 학생이 35세에 교수가 되고 지금은 매년 2조원을 거둬들여서 수많은 에이즈 환자의 생명을 연장시켜주고 있는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많은 상도 받았어요. 그는 고백합니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스스로 내 인생 경로를 결정해본 적이 없어서 자랑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머리가 나쁘니 하나님이 일일이 다 해주셨어요. 꼴찌에서 대학을 입학한 것부터 국제무대에서 에이즈 퇴치 운동을 하게 되기까지 이 모든 것이 내가 계획하고 간 길이 아니었어요. 단 한 가지라도 당당히 내 힘으로 계획하고 성취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나에게 자랑할 게 있다면 그것은 오직 나의 하나님뿐입니다. 남은 인생 저의 기도는 ‘아버지, 감사합니다!’로 충분할 것 같습니다!”

 할렐루야! 무익하고 쓸모없었던 그러한 존재가 예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이렇게 복을 받아서 유익한 존재가 되고 하나님의 위대한 일꾼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자녀들이 머리 나쁘다고 구박하지 마세요. 다 부모가 물려준 거지, 왜 구박합니까? 그러니까 오늘 설교를 가서 전해주세요. 꼴찌한 애도 미달된 곳에 들어가서 교수가 되었다더라. 열심히 미달 학과 찾아보자. 기도 같이하고 격려하고 수능시험 좀 안 나와도 “그래, 괜찮아. 너 갈 데 많다.” 그래가지고 용기를 북돋아주고 꿈과 희망을 불어넣어주는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한때 오네시모처럼 무익한 종이었지만 하나님 은혜로 말미암아 유익한 존재가 되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면서 앞으로 남은 여생이 유익한 존재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가는 주님의 귀한 일꾼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무익한 종과 같았던 오네시모가 변화되어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그와 같은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기사입력 : 2017.11.26. pm 17:01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