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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의 <예수의 생애>


풍속화로 탄생 된 예수, 독일에서 화제  
청각 장애 딛고 세상과의 소통에 나서 

 종교개혁 500주년의 해를 기념해 종교개혁이 시작됐던 독일 베를린 독일역사박물관에서 ‘루터 효과, 기독교 500년 기획전’(4월 12일∼11월 5일)이 개최됐다. 독일 연방정부가 주최했던 전시에서는 주요 섹션으로 한국의 개신교 전파 과정이 상세히 소개됐는데 서울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운보 김기창 화백의 <예수의 생애> 전작 30점이 초청작으로 전시되면서 화제를 모았다.

 개막 행사 때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은 “한국 기독교의 전파와 한국미술의 저력을 동시에 그림으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하며 “동아시아 최대 기독교 국가인 한국의 발전을 생각할 때 종교개혁이야말로 세계 역사 속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감동적인 찬사였다.

 사실 예수님을 그림으로 표현한 미술가는 세계 여러 나라에 많다. 하지만 김기창 화백처럼 표현하지는 못했다. 또 이렇게 많은 연작으로 그린 예도 찾아보기 드물다. 나라마다 고유한 문화가 있고, 작가마다 화풍이 있지만 김기창 화백의 예수는 삿갓을 쓰고, 마리아는 우리의 한복을 입고 있다. 예수를 비롯한 등장인물도 전형적인 한국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김기창 화백이 6.25전쟁 때 군산으로 피난해 있을 때 평소 친분이 있던 미국인 선교사 젠슨이 찾아와 예수의 생애를 풍속화로 그려볼 것을 권유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대작의 시작이었다.

 김기창 화백은 고백했다. “그것은 마음 괴로운 순간이었다. 어두운 동굴 속에서 한줄기 빛이 어디에선가 비켜 들어오고 있었고 나는 그 빛줄기 아래에서 예수의 시체를 부둥켜안고 통곡하고 있었다. 통곡을 끝내고 문득 정신을 차리니, 나는 동굴이 아닌 햇살이 눈부신 방에 앉아 화필을 들고 있었다. 그림을 그리다가 깜빡 졸았고, 졸다가 예수의 꿈을 꾼 것이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은 것이다”

 김기창 화백은 전쟁으로 온 국민이 고통 받고 있던 시기, 우리나라에 예수가 재림한 듯 온 힘을 다해 1년여에 걸쳐 풍속화 29점을 완성했다고 한다. 어려운 시절 제대로 된 미술 도구도 없이 대작을 제작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어렵게 그린 이 작품들은 1954년 4월 종로 화신백화점에 있는 화신 화랑에서 첫 전시를 했다. 그 뒤 세계 25개국 나라에서 전시해 많은 호응을 받았다. 첫 전시를 한 뒤 한 독일 신부가 예수의 부활 장면이 빠졌다며 1점 더 그리기를 권해 3년 뒤 <부활>이 완성되면서 마구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가 고난의 여정을 넘어 부활하는 모습까지를 표현한 전체 30점이 완성되었다고 한다. 김기창 화백은 종교의 힘으로 미술가로 성공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신앙심이 깊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나는 어려서부터 독실한 믿음을 가진 신자였다. 그런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면서부터 신에게 선택받은 몸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곱 살이란 어린 내가 열병을 앓아 귀를 먹었겠는가. 어쨌든 나는 세상의 온갖 좋고 나쁜 소리와 단절된 적막의 세계로 유기되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버려진 인간이란 것을 절감했다. 그러나 나는 소외된 나를 찾기 위해 한 가지 길을 택했다. 그것은 예술가가 되는 것이며 나는 화가가 되었다”

 어려서 청력을 잃은 김기창 화백. 그에게 그림은 단순한 ‘종교화’라는 예술의 하나가 아니었다. 그는 예수의 모습을 그리며 자신의 신앙을 고백했고, 그 고백의 표현으로 세상 모두와 소통하고자 마음의 문을 열었다. 닫힌 귀를 대신한 그의 그림은 세상의 많은 이야기가 오고가는 통로였으며 절망의 순간 누구나 찬란한 희망의 싹을 틔울 수 있도록 한 그의 생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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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안병광 서울미술관 대표는 여의도순복음교회 장로다. 문화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다리로 모든 사람들이 함께 누려야 한다는 생각에 30여 년간 모은 그림 전시를 위해 사재를 털어 서울미술관을 설립했다.

 

기사입력 : 2017.11.19. am 11:49 (편집)
오정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