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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의 60주년을 향하여> 영광의 창립 20주년


단기간 급속성장에 세계 최대 교회로 ‘우뚝’
성도 10만 달성, 2년 후 20만으로 두 배 성장  
늘어나는 성도 관리 위해 교구 및 조직 강화
성도들 일꾼 돼 국내 복음화·세계 선교 감당 


1979년 교회 창립 20주년, 세계가 주목  

 우리 교회는 여의도 이전 후 1979년에 창립 20주년을 맞았다. 조용기 목사와 최자실 목사 그리고 성도들은 기도와 눈물로 성장한 영광의 역사를 돌아보고 앞으로의 복음과 선교를 굳게 다짐하는 시간을 가졌다. 교회 창립 예배는 6월 25일에 있었다. 교회 창립 20주년을 기념해 77년 7월 지금의 십자가탑 위치에 기념관을 건립하고 체육관 겸 강당으로 사용했다. 당시 교회 안에 체육관을 뒀다는 것은 시대를 앞선 발상이었다.
 창립 20년이 됐을 때 우리 교회는 성도수 10만을 넘어섰다. 교회는 성도수 10만 돌파를 기념해 11월 4일 기념예배를 드렸다. 강사는 당시 미국 TV 선교방송 중 가장 큰 ‘700 클럽’ 창시자 팻 로버슨 목사였다. 로버슨 목사는 “10만 성도가 1년에 한 명씩만 전도하면 20여 년 후에는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영접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한 크리스천 신문에서는 우리 교회에 대한 기사를 게재하며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순복음교회가 10만 성도 돌파 기념예배를 드렸다. 이는 세계교회사에 있어서 단일교회가 수립한 것으로는 최고의 기록으로 평가되고 있다. 순복음교회는 서대문에서 여의도로 이전 후 부흥의 속도를 더해왔다. 해마다 평균 40% 이상 성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리고 10만 성도를 달성한 지 2년만인 1981년 교세가 두 배로 성장해 20만 성도를 돌파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했다. 조용기 목사는 “우리가 성장하게 된 것은 결코 사람이 잘해서 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충성하는 교회를 하나님께서 들어 쓰시기 때문에 된 일임을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회 성도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남에 따라 교회는 그 만큼 많은 사역을 감당하기 시작했다. 

효율적 교구제 실시

 우리 교회는 성도를 보다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제반 교무 능률을 높이기 위해 1971년 1월부터 교구제를 도입했다. 교구제는 지역을 일정하게 분할해 각 지역 담당 교역자가 지역을 관할하는 목회제도다. 급속하게 늘어나는 성도들의 신앙성장과 전도를 위해 우리 교회는 교구제 도입이 절실했다. 당시 1교구(관악·영등포구) 2교구(마포·용산·중구) 3교구(서대문구) 4교구(동대문·성동구) 5교구(종로·성북·도봉구) 총 5개 대교구가 조직됐다. 81년 7월에는 12개 대교구로 확장돼 대교구별로 전도의 사명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구역조직의 활성화와 구역장들의 교육을 위해 75년부터는 구역장 세미나가 실시됐다.
 78년 우리 교회는 5000구역을 돌파했다. 당시 여성 4206구역, 남성 372구역, 청년 29구역, 아동 372구역을 기록했고, 세대수는 2만7946세대였다. 이는 전년도 대비 구역수는 68.1%, 세대 수는 51.9% 증가한 수치였다. 만 2년이 지난 1980년 11월에는 각 대교구 및 교사 교구 산하 1만 구역을 돌파했다. 전년도 6696구역이 1년 동안 3406구역이 더 증가하면서 50%가 넘는 성장률을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급성장은 전세계 기독교 역사상 유래를 찾아 볼 수 없는 일이었다.
 교회는 오순절 신학의 정립과 확산, 성도들의 영적 성장을 위해 1978년 12월 순복음교육연구소를 설립했다. 평신도 성경학교와 성경대학이 개설돼 1980년 12월 첫 졸업생 670명이 배출됐다. 

국내·해외 복음화 열정 일어나

 교회 안에 일꾼이 많아지면서 우리 교회는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막 16:15)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 국내 및 해외 선교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1974년 창설된 순복음실업인선교연합회는 실업인, 전문직 종사자들로 구성돼 그들의 열정을 전도와 선교 활동으로 연결시켰다. 국내와 해외를 돕는 선교회들이 구성되면서 국내 지선교회는 지역별, 직종별, 군·교도소 등 특수 영역으로 나눠 복음화 사역에 나섰다. 또 ‘사랑의 손길’ 전파라는 목적아래 어려운 이웃 돌보기에 적극 나섰다.
 1970∼8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서 민족복음화를 위한 대규모 성회 및 전도대회를 개최했다. 1975년 6월 조용기 목사를 강사로 열린 서울대전도대회로 ‘국가안보와 민족복음화’를 주제로 열려 3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1980년 6월에는 진주 지역 복음화대성회가 진주시 경남학생체육관에서 열려 17만 진주 시민들에게 그리스도의 소망을 심어줬다. 81년 7월에는 울산복음화대성회를 인도, 울산종합체육관의 수용인원인 5000명을 두 배 넘은 1만명이 참석해 놀라운 기적의 역사를 이뤘다.
 해외지선교회는 지역별로 나눠 해외선교사 지원 및 조용기 목사의 해외성회 후원에 적극 나섰다. 

 세계선교의 기틀 마련

 우리 교회의 해외선교 활동은 1964년 9월 미국 하나님의성회 총회에 초청받은 조용기 목사가 1개월 동안 미국을 순회하며 부흥성회를 인도해 큰 성과를 거두면서 시작됐다. 1973년 제10차 세계오순절대회를 서울에서 치른 조용기 목사가 세계 선교의 막중한 사명을 절감하면서 조용기 목사는 1975년 4월 정식으로 세계선교회를 발족시켜 본격적인 해외 선교에 나섰다. 5월에는 16명의 선교사들이 모인 가운데 순복음북미연합회를 결성하고 이듬해 하와이에서 선교사와 가족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처럼 선교사들을 위로한 것이 확대돼 순복음세계선교대회가 됐고, 3회(1976년 5월 31일∼6월 4일)부터는 서울에서 진행하게 됐다. 이 때부터 성도들은 해외 선교사역에 관심을 갖고 선교사들을 위한 중보와 선교헌금을 작정하며 세계선교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우리 교회는 또 1976년 9월 미국 LA에 순복음 최초의 해외 신학교인 순복음중앙신학교를 설립해 해외 현지에서 사역할 수 있는 목회자 양성에 힘을 쏟았다.
 순복음 선교사들을 통한 해외 선교 뿐 아니라 1976년 11월 CGI(Church Growth International)를 설립해 세계 교회 목회자들과의 교류를 시작했다. CGI는 미국 영국 호주 일본 등 전세계에 지부를 두고 매년 서울과 세계 주요 도시에서 콘퍼런스를 개최하며 세계 교회 성장과 부흥은 물론 지역사회 발전과 더불어 세계 선교 사명을 완수하는데 세계 목회자와 협력하고 있다.

 우리 교회의 선교 행보는 갈수록 불타올랐다. 1976년 4월 29일 베를린에 순복음세계선교회 유럽지구연합회가 조직됐고, 1978년 4월 27일 독일 칼스루헤에서 조용기 목사를 강사로 한 개신교 최대 집회가 열렸다. 강한 신유의 역사가 일어났던 성회를 통해 유럽에서 조용기 목사와 우리 교회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복음의 불모지라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일본 전체 국민의 10%인 일천만 명을 복음화하자는 취지로 ‘일본 일천만 구령운동’이 전개돼 성령의 강한 역사가 일어났다. 80년 7월부터 매주일 오전 일본 깅끼 TV를 통해 우리 교회 예배 실황 및 조용기 목사의 설교 방송 ‘행복에의 초대’가 일본 전역에 방송되면서 큰 호응을 얻었다.
 순복음의 복음은 유럽과 아시아를 넘어 남미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조용기 목사는 1979년 1월 중남미 코스타리카에서 중남미 사상 최대 성회와 교역자 세미나를 인도했다. 이어 엘살바도르에서도 성회를 이끌며 남미 지역에 오순절 성령의 불씨를 심어 놓았다.

 

기사입력 : 2017.11.12. am 12:03 (입력)
오정선기자